●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305b | 윤성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810_목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스튜디오 148 Studio 148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길 14-8 Tel. +82.(0)43.201.4057~8
불신의 유예 suspension of disbelief ● 예술이란 거짓에 기초를 둔다. 그러므로 작가는 거짓이란 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확고한 거짓 위에 자기의 예술이 되어지도록 해야 한다. 저능한 작가는 작품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대상을 의미하게 모사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의 진실은 어디까지나 가공적인 거짓에 있는 것이고 진실한 거짓만이 예술이다.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철저히 거짓말을 해야 한다.
1958년 우성 김종영 ● '불신의 유예suspension of disbelief'는 영국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가 처음 고안한 개념으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전제를 수용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SF영화나 픽션 소설을 읽을 때 현실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 터무니없음을 인정하며 믿지 않는 것을 유예하는 태도다. 단, 불신이 자발적으로 유예될 때 작품은 '진리의 외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가짜라도 진실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어쩌면 예술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 주술과 종교적 찬양, 또는 선전 수단으로 사용되어온며 이미지/예술에 대한 '불신의 유예'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머리에 인용한 김종영 작가의 말 또한 어쩌면 예술을 수용하는 우리의 태도를 '불신의 유예'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리라.
윤성필은 이번 전시 제목을 '불신의 유예'로 정했다. 이 제목은 자신의 예술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는 의미를 지닌다. 이제껏 삶과 우주, 불교에서 말하는 선, 윤회, 순환 등 거대한 담론에 대한 질문으로 작업을 해왔지만 결국 아파트 평수와 아이의 성적 같은 목전의 현실과 동떨어진 고민을 작품 속에 풀어 놓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작가는 철학서를 읽고 모티프를 구하고 장비가 들어갈 수 있는 작업장을 찾거나 다음 작업의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삶을 산다. 이러한 작업과 삶의 불화는 어쩌면 예술이 내장한 '불신의 유예'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와 자기 반성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전시되는 평면작업 중 일부는 이전부터 실험해오던 것이지만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과감히 기존의 틀을 벗어나 또 다른 조형적 실험을 전개한다. 윤성필은 '조각'이라는 전통적 장르에 사용되는 '철'을 가루 형태로 여전히 사용한다. 하지만 순환하며 움직이거나 원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개념에서 확장하여 평면 캔버스 안에서 기본적인 기하 형태를 구성하며 '흩뿌려' 놓는다. 자석을 이용해 불규칙적 움직임을 드러내는 철가루는 마치 꽃가루가 날리고 냄새가 확산하는 현상을 일컫는 브라운 운동을 연상시키지만 이는 철저히 작가가 창조해낸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작가는 불규칙성과 혼돈의 덩어리로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자성과 중력의 법칙'이 다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설을 표현한다. 그의 기하학적 형태를 띤 조각적 장치는 세계-기계로서 결국 우연과 불규칙의 운동을 생성하는 세계-무대인 셈이다.
작가는 생성의 우주와 인간적 관념의 대립과 갈등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설무대의 제작자를 자임해왔다. 삐걱거리며 힘겹게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동력장치와 그 흔적들의 회화적 결과물, 오브제 등은 감히 일상 너머의 배후와 세계의 비밀을 유출하려 했던 제작자의 성찰적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다시금 불신을 유예하며 예술 내부에서 진리의 외관 구축을 시도한다. 동력장치가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철가루는 가뭇없이 날리고 흘러내려 앙상한 흔적으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작가는 이 작업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시지프를 연상하는 이 헐벗은 전투 앞에서 우리는 작가와 함께 '불신의 유예'에 공모하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가설의 세계무대에 기꺼이 관객을 자청하는 것이다.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카뮈, 『시지프 신화』). ■ 서준호
Vol.20170812c | 윤성필展 / YUNSUNGFEEL / 尹聖弼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