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본 □.Just seen □.

김수진展 / KIMSUJIN / 金守眞 / painting   2017_0725 ▶ 2017_0731

김수진_□꽃 과 □풀_순지에 채색_145×76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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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01:00pm~06:30pm

사이아트 도큐먼트 CYART DOCUMENT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Tel. +82.(0)2.3141.8842 www.cyartgallery.com

그냥 본다는 것에 대하여 ● 김수진 작가는 이번 전시 주제를 '그냥 본다'이라 하였다. 어떻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이 명제는 작업에서 그의 시각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냥'이라는 말은 어떤 의도나 조건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어떤 선입견이나 전제가 없는 순수시각으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고자 하였고 그것을 작업을 통해 표현해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본다'라는 행위는 이전에 보았던 경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짧게는 잔상으로 길게는 기억이란 방식으로 보는 행위는 시간적 층위가 서로 간섭하게 되거나 겹쳐질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본다'라는 행위는 카메라에서처럼 분할된 컷에 의해 또는 프레임의 틀에 의해 시공간이 분할되거나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유작용이나 관념과 같은 시각으로부터의 관점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작동되고 연장된다. 그러므로 보는 행위에는 잔상과 기억 혹은 사유와 관념과 같은 지각작용이 관계하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상 회화작업에 있어서 아무것도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시각을 기록한다는 것은 본래 불가능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말이다.

김수진_□꽃 과 □풀_순지에 채색_145×76cm_2016
김수진_□꽃 과 □풀_순지에 채색_145×76cm_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진 작가는 순수하게 사물을 보려 하고 그것을 그려내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각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지향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를 아무 얽매임 없이 소풍 온 듯한 여유로움을 의미하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 비유하였다. 자연과 달리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은 조건과 전제가 선행되어 관계할 수 밖에 없고 여러 일들에 얽매이기 쉽다. 이는 결국 그 인간사회를 살아가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나타나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이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작가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향해, 그리고 인위적인 제약을 벗어난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고 멈춰 서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자연은 포착한다는 것은 시간을 잡으려는 것처럼 무모한 것일 수 있다. 자연은 물이 흐르듯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므로 본질상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연을 향해 바라보는 그 한 순간에 멈춰 서서 자연이 흘러가고 있고, 변화하고 있는 시간의 흐름을 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화폭에 담아 느껴보고자 한다. 인간의 시각 프레임 안에 다 들어올 수 없는 그 거대한 자연은 늘 그러하듯 무심히 흘러가고 있지만 작가는 한정된 화면 프레임 안에 한 순간이나마 담아 봄으로써 오히려 그 대자연의 무한함을 역설적으로 느껴보고자 하는 것이다.

김수진_□꽃 과 □풀_순지에 채색_144×39cm_2016
김수진_□꽃 과 □풀, 144×39cm, 순지에 채색_2016

작가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이를 각성하게 되면서 자연과 인간 사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정된 조건과 제한을 가지고 대상을 접하게 되는 인간의 관습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이에 작가는 자연을 닮아가는 방법으로 조건과 제안을 넘어선 '그냥'이라는 수식어에 주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냥 자연을 보고 있을 때 인위적인 제약들을 넘어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그냥 본 그 자연에서 쉼을 발견하였고 여유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김수진_□한 날_장지에 혼합재료_144×39cm_2017
김수진_이 화 ㄴ –창한 コ 봄날에_장지에 혼합재료_225×525cm_2017

그런데 작가가 '그냥' 바라보게 된 이 자연의 순수를 향한 시각을 그의 화폭에 담아내는 일은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 왔을 것 같다. 조건과 제약을 벗어난 자연의 순수를 발견하고 그 순간을 인간이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순간으로 변환하여 하나의 프레임 안의 화폭에 제한해서 담아내고자 하였을 때에는 마치 무지개가 멀리 달아나듯 자연은 멀찍이 달아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전시 주제에서 '그냥 본□'이라고 지칭하며 알 수 없는 '□'의 기표를 추가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 '□'에 대하여 작가노트에서 '비어 있는 칸 부분', '서로 맺는 관계', '사이에 생기는 거리',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적인 여유나 겨를' 등으로 언급하였다. 이는 자연을 그리고자 하였으나 자연이 화폭 안에 그대로 담길 수 없음에 대한 대리 보충의 기표로 읽혀진다. 사람이 거울을 볼 때 그 안에 보이는 이미지가 자신이 아님에도 자기 자신을 각성하게 되듯 작가는 거울에서처럼 하나의 순간,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 자연을 화폭 안에 그려내는 행위를 통해서는 잡을 수 없고, 멈출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자연을 이 비워진 네모칸을 통해 지시하고자 하였다는 말이다.

김수진_□개의 드로잉_매트지에 색연필_가변설치_사이아트 도큐먼트_2017

작가는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인간의 제한된 한계를 넘어서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것은 '그냥'이라는 매우 단순한 방식이지만 매우 단순한 것 안에 무한하고 다양한 세계가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 세계를 탐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그려낸 화폭의 자연들은 매우 단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시각은 대자연을 향해 무한히 넓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자연이 그의 화폭 안에 혹은 '□'라고 표기된 모양처럼 제한된 프레임 안에 멈춰선 채 있을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멈춰 서서 한정된 공간에 가두어야 그때 비로소 그 흘러가는 대자연의 일부라도 각성할 수 있음을 발견하면서 그 순간들을 그의 화폭 안으로 가져오고 있으며 또 여백처럼 비워놓고 있다. 작가는 그의 작업에서 이처럼 자연 앞에서 멈춰 서서 '그냥' 바라보기를 반복하고 그 각성의 순간들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시에서 그의 작업을 '그냥' 바라봐 주기를 바라며 작품을 그리고 한 켠에는 여백을 비워놓고 기다리고 있다. ■ 이승훈

Vol.20170725e | 김수진展 / KIMSUJIN / 金守眞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