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하이퍼 리얼리즘 특별기획展   2017_0721 ▶ 2017_09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7_0721_금요일_04:00pm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월요일 휴관 7월28일~8월19일 매주 금,토,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09:00pm까지 야간개장

내설악 예술인촌 공공미술관 ARTIST VILLAGE IN NAESEORAK PUBLIC ART GALLERY 강원도 인제군 북면 예술인촌길 66-12(한계리 1191-12번지) Tel. +82.(0)33.463.4081 www.inama.co.kr

2017년 특별기획전 " human" 은 인간을 주제로 한 극사실주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인간에 대한 재해석과 우리가 육안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추악함, 이를테면 모발에 가려진 점이나 미세한 흉터까지도 부각되어,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인간의 모습이며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 이번 전시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시간에 제약 받지 않는 순수한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김용석 작가의 누드화, 순수하기에 혼돈의 모습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을 극사실로 표현한 김현수 작가의 조각, 인간의 신체를 통해 전달하는 상징적 표현을 묘사한 오흥배 작가의 회화, 인간의 신체를 통해 환경과 실존의 역학관계를 탐구한 정수용 작가의 조각, 젊은 작가의 눈으로 본 인간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홍승태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내설악 예술인촌 공공미술관

김용석_The body_캔버스에 유채_130×82cm

누드는 화가라면 한번쯤 마주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과거 수많은 미술사조에 등장하는 만큼 미의 관점과 포즈는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화가의 눈을 유혹했다. 하지만 미술의 소재로써 누드는 현대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소재이기도 하다.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재현적인 측면으로 인체의 긴 학습시간을 화가는 감안해야한다. 또한 작품에 녹여낼 수 있는 모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재현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는 오랜 시간 모델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 누드화에는 의복이 보이지 않는다. 옷을 걸치지 않았기에 어느 시대, 어떤 지역의 인물인지 화가는 밝히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에 대한 서술이 없다. 누드화에는 스타일이 없다. 각종 귀금속이나 화장으로 인체를 꾸미지 않는다. 몸 그 자체만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인물의 취향에 대한 서술이 없다. 시간과 지역, 취향이 분명하지 않을 때 캔바스를 채워 나가는 건 오롯이 화가의 연출된 포즈와 재현능력, 조형언어의 호소력이다. ● " 시간" 이라는 것으로부터 제약받지 않는 인체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긴 시간동안 존재해 오면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괴로움을 삼키는 삶을 그리고 싶었다. ■ 김용석

김현수_Antler_혼합재료_200×300×203cm

아이들은 혼돈의 존재이다. 아이들은 때론 천진하고 순수하며 순백의 천사 같기도 하지만 때론 매우 이기적이고 괴팍하고 사악하며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혼돈의 상태이기 때문 이며 어른들의 제어를 받기 이전에는 원초적 상태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인간(자아 또는 초자아)으로 성장하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쩌면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상태이기에 이러한 혼돈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 김현수

오흥배_bodyscape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

인간의 신체는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생물학적인 껍데기의 기능만을 갖지 않는다. 신체는 개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전달체이며 욕망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인 것 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동시에 많은 상황에 놓이게 되고 신체는 세상과 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수단이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신체는 사라짐과 만들어짐이 반복되며 흔적을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로 신체는 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기록하며 지나온 시간과 현재의자아를 연결하는 것 이다. 즉 신체에서 볼 수 있는 흔적들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내면의 흔적인 것 이다. 본인은 이런 육체에 남겨진 흔적과 몸짓을 통해 지나온 세월을 환기시키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 최근 관심을 갖는 주제는 이런 신체에서 볼 수 있는 무언의 욕망이나 원초적 의미를 내포하는 몸짓에 있다. 몸짓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말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데에는 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몸짓을 함으로써 그 뜻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몸짓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기능은 '상징'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몸짓 언어는 단순한 손짓 하나로 단어 혹은 문장을 상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몸짓 언어는 " 말을 하지 않고 신체적 동작이나 신호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뜻을 나타내는 방법" 혹은 " 말보다는 신체의 부위나 동작으로써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남에게 보이는 수단" 으로서 흔히 body language라고 불린다. 이처럼 몸짓언어(gesture language)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무의식중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 할 수 있는 다른 표현수단에 비해 훨씬 본능적이며 원초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특히 확대된 신체는 각기 다른 무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손이다. 손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외에 간접 혹은 직접적으로 여러 의미들을 표현할 수 있으며 여러 신체기관 중에서도 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내포 하는 기관이다. 또 손은 다른 신체 기관들에 비해 활동 범위가 넓고 다양하며 그 모습만으로도 약속, 화해, 평화, 바램 등 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손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많은 상징성을 내포 하고 있으며 많은 역사와 표정과 인성이 담겨있다. ● 또 다른 주재는 신체의 다른 부분인 발이다. 발 중에서도 구두를 신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포착한 작업인데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 의 끝없는 욕망을 보여주는 대표하는 모습 이라 생각한다. 최근 여성들이 즐겨 신는 하이힐은 원래 17세기 하수도가 없어 오물 천지였던 유럽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신기 시작 되었다 고 한다. 그러나 최근 하이힐은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는 욕망의 자화상이 되었다. 남성인 본인이 본 여성의 하이힐은 인간의 욕망, 환상, 자아만족, 과시욕이 불러온 대표적인 결과물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발의 변형과 신체의 고통을 감수 하면서 신는 하이힐은 최근 그 이름을 킬힐(kill hill) 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기 도 하며 끝없이 높아만 가는 인간의 욕망과 과시욕에 일종의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있다. 하이힐은 신체 여러 부위에 고통을 가져다주며 특히 발의 고통과 변형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하이힐을 신은 아슬아슬한 모습은 남성인 본인의 시각을 통해 해석 되고, 일그러지고 변형되어진 신체와 함께 그려진다. ●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메스미디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본질적인 모습보다는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을 정하고 획일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제각기 다른 존재로 태어났다.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 이 아닌 서로 다는 개체로서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죽는 날까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신체에 기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오흥배

정수용_The Guest_혼합재료_가변크기, 60×60cm×6

정수용은 인간의 신체를 통해 환경과 실존의 역학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퇴행의 몸짓과 기형의 신체를 통해 인간의 실존적 형상을 조형화한 작업으로 일상적 삶의 부조리한 환경과 불안한 심리의 현대인의 소외된 심연을 들여다본다. 현대적 삶의 기형적 환경과 인간의 심리 양자 간의 관계를 추적하는 그의 작품은 불안에 곪은 개인의 내면을 신체의 외상으로 시각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같은 외상을 그저 상흔에 한정하지 않고 상처와 불안의 심리를 외부로 향하게 함으로써 해소와 회복, 치유의 시선을 잊지 않는다. ■

홍승태_행복의 묘약_실리콘, 유채, 섬유유리, 머리카락_150×110×110cm

5000년 전에도 미의 기준인 비너스가 존재하고 3000년 전에도 비너스가 존재했다. 앞으로도 시간은 분명 흐를 것이다 500년 뒤, 1000년 뒤 21세기 아시아 대한민국에도 비너스 작품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나의 비너스 작품은 21세기 여성의 아름다움을 조금은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21세기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돈과 성의 상품화로 연관되었다. 작품으로 보여 지는 상황은 한 손엔 돈다발을 부여잡고 있는 비너스라던가 아름다움만을 쫒아, 과도한 성형에 찌들어진 비너스 이런 비너스 시리즈로 공간을 채울 것이다. ■ 홍승태

Vol.20170722b | human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