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717_월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11:00pm / 일요일_11:00am~08:00pm
카페 두잉 Gallery Doing 서울 강남구 삼성로 654 B01호 Tel. +82.(0)2.544.5752 facebook/bookcafedoing
서울대학교에서 미술과 스페인 문학을 전공한 이수지 작가의 작품에는 스페인 예술 특유의 독특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녹아있다. 그것은 자신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시인이자 극작가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의 작품세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출신인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의 붉은 태양과 척박한 대지에 스며있는 집시들의 애환과 예술혼을 시와 희곡으로 승화시킨 스페인의 천재적인 작가이다. 마드리드 대학의 기숙사에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과 절친한 친구로 지냈던 로르카는 이들과 교류하며 정신분석학, 초현실주의 예술에도 눈을 뜨게 된다. 또한 자신이 동성애자였던 탓에 여성에 대한 전통사회의 성적 억압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로르카는 그의 시 「아담Adá́n」에서 아담과 하와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갓 태어난 여인-하와-은 피 가득한 나무 아래에서 쓰러져 신음하고 있다. 아담은 그 순간 쓰려져있는 하와를 구하는 대신 몽상을 한다. 생기 가득 달려오는 소년의 심장박동 소리를 꿈꾸고, 푸른 달빛 아래 타들어가는 소년을 꿈꾼다. 아담은 하와를 욕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대상을 욕망하고 있다. 태초에 아담이 하와를 거부한 격이라서 일종의 멈춤 상태,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작가가 욕망하는 것, 그 욕망의 대상은 타자화되지 못하고, 지정되지 않는다. 그 대상은 지속적으로 미끄러진다. 그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옮겨 다니며 하나의 지도를 그리게 된다. 즉, 욕망의 대상은 하나의 타자가 아니라 작가와 작가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인간적, 사회적 관계의 유기적인 관계망이다. 이 모든 관계망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체들은 그 대체들의 특질을 욕구하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작가의 파편적인 모습일 뿐 그 개체로 온전히 작가와 관계 맺지 않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작가는 결국 타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작가의 모습이 반영된 파편 속에서 나르시시즘적 관계 맺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반영적 구조를 지닌 서사, 메타적 형식을 지니고 있는 내러티브. 그림 속에서 작가를 만지는 작가의 손, 작가를 바라보는 눈은 서술자가 되어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텍스트 속에서 만나는 문자화된 이미지를 다시 추상화하고, 그 추상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다. 이 작업 과정은 타자를 대상화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욕구하게 되는 작가의 욕망 구도와 유비적인 관계를 맺는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 텍스트의 직접적 의미와 대면하지 못하고, 그 의미를 통해 작가가 추상화한 이미지와 관계를 맺는다.
작가의 그림은 크게 두 가지 시리즈로 나뉜다. 다육식물을 그린 시리즈, 텍스트를 바탕으로 그린 드로잉 시리즈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다육 식물은 사막이나 높은 산 등 수분이 적고 건조한 날씨의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땅 위의 줄기나 잎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을 말한다. 번식은 종자로만 하지 않고 잎가장자리에서 어린 식물이 나와 새롭게 번식하기도 한다. 작가는 식물 몸 안에 스스로 수분을 많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 강한 이 식물의 그 만개한 모양이 묘하게 생식기를 연상시키는 점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다육식물들을 그렸다. 한 잎에 여러 가지 색이 존재하고, 그 잎사귀에서 새로 번식을 하기도 하는 다육식물은 작가의 관계망과 닮아있다. 한 잎 한 잎 그릴 때마다 같은 잎을 복제한 듯이 그리지만, 모든 잎이 다 다르게 생겼고, 작가와 다른 종류의 관계를 맺는다.
시, 에세이, 드라마 텍스트, 비평 등 장르를 망라한 텍스트를 읽다가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에서 만난 인상들을 그려낸 것이 두 번째 분류이다. 수천 수만 개의 표면들이 전부 합쳐지면 어쩌면 본질을 담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각기 다른 텍스트들에서 파편적인 텍스트의 조각들로 그려낸 드로잉 역시 하나의 큰 퍼즐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관계망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수지 작가의 작품은 문학적 영감에서 출발하여 욕망구조의 퍼즐을 맞춰가는 정신분석적 상상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작가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나르시즘적 반영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가 문학과 미술의 만남에 대한 흥미로운 시도가 되리라고 믿는다. ■ 임호준
Vol.20170717b | 이수지展 / LEESOOJIE / 李修知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