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1031f | 홍정욱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713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소피스갤러리 SOPHIS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로 218(역삼동 770-6번지) 재승빌딩 B1 Tel. +82.(0)2.555.7706 www.sophisgallery.com
시작은 가느다란 선(線)에서부터였다. 캔버스에 대고 직접 선을 긋는 대신, 철사를 구부려 캔버스 위에 살짝 띄워 보았다. 정면에서 보면 흰 바탕에 검은 선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조명을 비추면 그림자가 지고 공기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철사가 진동하였다. 길게 늘어뜨린 선일뿐이었는데, 이와 마주한 공간이 홀연 존재를 드러냈다. 홍정욱이 첫 개인전 『ball of line』展(갤러리 룩스, 2003)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이다. ● 지난 십여 년간 그 모습은 바뀌어 왔으나, 홍정욱의 작업은 줄곧 조형성과 세상의 원리에 대한 집요한 탐구였다. 그에게 선이란 조형의 근본이자 세상을 감지하는 안테나의 역할이었다. 캔버스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철사로, 캔버스 안쪽에 팽팽하게 당겨진 요철로, 때로는 LED 전구의 광선(光線)으로 뿜어져 나온 작품의 선은 공간으로 뻗어 나와 외부의 세계와 조우하였다. 공간(空間), 문자 그대로 '비어있는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이었기에, 그의 작품이 놓이면 공기로만 가득 찬 줄 알았던 전시장이 작품의 리듬에 따라 또렷이 구획 지어지고,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포착하여 옮겨놓은 듯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실제로도 홍정욱은 중력가속도, 십이진법과 같은 물리 법칙과 수학 원리를 적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규칙성마저 번거로운 사족인 양 서술적인 설명을 줄이고 더욱 기본에 천착하고 있다. ● 그의 새 개인전 『INFILL』展은 선에서 나아가, 선이 구부러져 만들어내는 형태의 기본 요소인 삼각, 사각, 원을 변주한다. 조형예술의 근본을 직시하려는 시도이다. 전부 2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는데, 전시의 도입부에서는 최근 1~2년 사이에 창작한 작품을 중심으로,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비교적 구작과 신작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홍정욱의 작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던 선의 기능이 최소화되고, 다채로운 색상과 면이 빚어내는 구조가 전면에 드러나 이제 그의 작업 세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 사실 홍정욱이 보여주어 온 예리한 공간 설치를 기대하고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적잖게 당혹스럽기도 한데, 회화전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평면적으로 보이는 단색조의 작품이 화이트 큐브의 곳곳에 놓여 있다. 이전에도 종종 그의 작품은 회화로 분류되거나 1) '회화적'으로 읽히곤 하였다. 2) 이는 그의 작업이 캔버스로 만들어지고 못 몇 개 정도로 벽에 걸 수 있을 만큼 간결한 형식이기에 연유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이 덩어리 자체의 양감이나 물성보다는 작품이 공간에 놓이면서 만들어지는 테두리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에서 뻗어 나온 선은 어떻게 주변과 이어지고 끊어지는지, 작품의 요철이 만들어내는 음영은 어떻게 새로운 면을 만들어 가는지, 또 각각의 선과 면이 충돌하며 공간의 지각을 어떻게 확장하는지가 관심사였는데, 그래서 홍정욱에게 공간이란 180° 또는 360°로 둘러진 백지(白紙)이고, 그가 만드는 작품은 어느 각도에서라도 비스듬히 바라볼 수 있는 그림과도 같아 보였다. 이리저리 여러 방향에서 전체 공간을 헤아리며 감상해야 하는 작품이지만, 한결같이 드로잉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주변 환경과의 조응 속에서 완성되어 갔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선으로 포착되었던 날카로운 촉각이 색면의 형태로 완만히 수렴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외부 세상과 연결된 선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면으로만 구성된 작품도 있는데, 변형된 반구 모양의 「○○○」의 일부나 바닥에 놓인 「INFILL」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특히 「INFILL」 연작에서는 전면에 고운 색상이 칠해져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작품의 뒷면에 칠해진 물감의 형광색이, 눈에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공간으로 배어 나오며 선 대신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작품의 존재 양식도 바뀌어 갔는데, 가령 중력가속도를 다루었던 초기작 「-↑g= ↓9.8(㎨)」만 하더라도 홍정욱의 작품은 공간과 힘겨루기 하며 에너지를 확산·분출했던 데 비해, 최근의 작품은 그 에너지의 방향이 내부로 응축되어 개별성을 갖추어 가고 있다. ● 동글동글하고 단단하게, 작품이 제각각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서식하는 것 같기도 한데, 전시장 깊숙한 곳의 한 코너에 설치된 흰색 표면의 「INFILL」은 마치 벽면의 중턱에 뿌리를 박고 기생하는 겨우살이처럼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작가 자신도 본인의 작업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 같다며 자평(自評)을 하는데, 3) 그가 기본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그의 작품은 새로운 종(種)으로서 내적 완결성을 획득해 왔다. 그 모양새만 하더라도 이번 전시에 출품된 「avi-neuron」(2005)이 미생물이나 단세포 생물의 원시적인 형태를 닮았다면, 삐죽삐죽 바깥으로 철사를 내어 보이는 「common」(2008)은 바깥으로 촉수를 뻗고 있는 해양 생물처럼 보이며, 바닥에 설치된「INFILL」(2017)은 튀어나온 선 하나 찾아볼 수 없이 매끈한 모습으로 육지 동물처럼 스스로 우뚝 서 있다.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그의 작품이 점점 유기체의 진화처럼 변화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만은 할 수 없는데, 자연의 패턴만큼 세상의 근원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마치 앵무조개나 해바라기의 씨앗에서도 피보나치의 수열을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기본은 현상의 이면에 내재하여 있기에 그것이 작품에서 발현된다 하여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홍정욱 작품의 실루엣은 삼각, 사각으로 더 단순화되어 왔지만, 그 내부 구조만큼은 전작(前作)을 만들면서 거쳐온 실험의 과정을 포함하는 복잡한 요소로 구축되어 있다. 형태에서 군더더기의 요소를 제거해나가며 보다 압축적이고 심오한 사고와 구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데, 이 과정이 영락없이 조형의 진화이다. 이때 작품을 어디에서 보아도 똑, 떨어지게끔 하는 깔끔한 디테일의 기저에는 홍정욱의 지난한 수공(手工)이 뒷받침하고 있다. 직각으로 교차하는 나무판면의 못 머리를 매끈하게 사포질을 한다거나, 자작나무 합판 사이에 볼펜 선보다도 가는 색을 넣어서 손톱만한 크기의 구슬을 만들거나, 전선 하나도 허투루 늘어뜨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논리뿐만 아니라 제작의 방식에 있어서도 기본에 충실한 작가의 태도이다. ● 선에서부터 면으로, 흑백에서 색채로 조금씩 나아가며 조형의 원리를 찾아가는 홍정욱에게 창작은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데카르트는 "가장 단순한 것을 복잡한 것에서 구별하고, 순서적으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사물의 각 계열에 있어, 즉 여기에서 우리가 어떤 한 진리를 다른 한 진리에서 연역한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단순하고, 또 다른 것들이 이것에서 얼마나 더, 덜 혹은 같은 정도로 떨어져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4) 조형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재조합하는 홍정욱의 작품은 이처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질서를 세우는 탐색자의 행보와도 같다. INFILL, 새로운 연작의 작품명이자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그의 작품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색일까 면일까 공간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채우는 것은 오히려 조형 자체의 논리이자 조형의 자율성이다. 생명을 갖춘 유기체처럼, 내부의 원동력을 확인하는 것은 어쩌면 조형예술가로서의 기본이 아닐까. 우리는 그 기본조차 너무 잊고 지내온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것이 홍정욱의 작품을 주목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 김소라
*주석 1) 박순영, 「힘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 - 어떤 무언극」, 『axis』(노암갤러리, 2006) 전시 서문 2) 강상훈, 「분해된 회화, 흔적의 사이」, 『INTER:VERTIGE』(스페이스 오뉴월, 2016) 전시 서문 3) 작가와의 인터뷰, 2017.6.23 4) 르네 데카르트,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이현복 옮김(서울: 문예출판사, 1997), p. 41; René Descartes, Règles pour la direction de l'esprit: règle sixième, 1628
Vol.20170712h | 홍정욱展 / HONGJUNGOUK / 洪貞旭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