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711_화요일_04:00pm
기획 / 이윤서
관람시간 / 11:00am~04:00pm / 일요일 휴관
한스갤러리 HANS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로10길 127(정릉동 918번지) Tel. +82.(0)2.914.1142 www.hansgallery.co.kr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도구를 다룰 줄 안다는 점, 집단을 이룰 줄 알고 개인적으로도 활동이 가능하며 유형의 또는 무형의 가치를 만든다는 점, 언어와 상징 체계를 사용한다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가상의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도 인간의 고유 능력 중 하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인간은 오지 않은 일이나 시간, 즉 '미래'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다른 동물은 미래를 생각하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인간의 언어에는 이미 '만약 ~라면'이라는 말이 만들어져 있다. 이 말은 '가정법'이라 칭해지며 가정법을 사용하는 인간의 언어는 허구나 미래에 대해 상상하는 인간의 의식활동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가정'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거나 또는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임시로 인정함.' 이라는 뜻을 가진다. '가정'이라는 것은 어쩌면 미래를 위한 언어같지만 우리는 본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정에 전부 포함 시킨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 들다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미 우리는 가정이 만든 세계에 살고 있다. 가정으로 시작한 미래에대한 인식과 예측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과학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 가정법이 만든 과학의 등장으로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며 근대가 시작됐다. 중세 인간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지배했고 신의 섭리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은 인간의 바람과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최고의 생명체로 올려주었다. 지난 시대의 주술적 예언과 종교적 믿음은 과학적 데이터와 객관적 예측으로 대체 되었으며 인간은 자기운명의 주인이고 스스로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 된 것이다. 이렇게 '가정'이라는 것은 믿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가끔 우리의 가정법은 필요의 선을 넘어 불필요한 걱정으로 태도가 변하기도 한다. 선택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 흔적이 남지 않는 건 없다. 우연이던 필연이던 모든 것은 흔적이 남아버린다. 사람들은 특히 자신의 선택에 굉장히 예민하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잔인하거나 행복한 상상들을 1부터 10까지 늘어 놓으며 세세하고 집요하게 가정하고 상상한다. 아마 '어떤 선택이 가장 더럽지않고 깔끔하고 깨끗한 선택 일까?' 고민하는 가정일 것이다. 우리는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끊임 없이 가정해 걱정이 되게 만들까. 이전에 내가 본 영화중에 '우리도 사랑 일까' 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속 주인공 마고는 "비행기를 놓치는 것은 두렵지 않아. 비행기를 놓칠까 두려워하는게 두렵지."라고 말한다. 고민거리가 많을 때 우리가 가정해서 걱정하는 상황들은 걱정한 상황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어쩌면 걱정이 되어버린 가정 그 자체일지 모른다. 오히려 막상 그 일이 벌어지고 나면 우리는 차라리 걱정에서 해방될 것이다. 비행기를 놓치면 속은 상하겠지만 마음은 편할 것이다. 이미 비행기는 떠나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아직 기다리고 있는 한 가정으로 부터 시작되는 걱정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즉, 가정이 걱정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해방되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진보는 더더욱 기대해 볼 수 없다.
가정법은 어쩌면 꿈을 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쓸데없이 더이상 가정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면 한다. 세상은 아직도 어떠한 일에 대해 꿈을 꾸는 사람들을 바보같이 여기곤 한다. 아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현실의 손을 들어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꿈꾸는 바보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바보들.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만약~라면'이라는 가정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꿈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가정하는 순간들이 곧 내가 선택한 미래이며 내가 살아가는 흐름이 되어주기 때문에 모두가 걱정없이 꿈을 꾸었으면 한다. 이게 바로 내가 꿈이던 사랑이던 놓쳐버리거나 도망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가정'이란 것을 적극 권하고 싶은 이유일 것이다. ■ 이윤서
Vol.20170711d | 이윤서展 / LEEYOUNSER / 李侖書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