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혹은 하찮은 Trivial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은 2016년부터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질문과 실천 방법을 참여 작가들과 함께 모색하고, 동시대 미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과 미적 감수성을 공유하기 위해 『2017 대청호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2017 대청호 프로젝트』는 대청호미술관의 장소 특성을 활용한 현장설치 공모에 선정된 STUDIO 1750+정혜숙팀과 성정원·이지연팀 그리고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한 주제전시 공모에 선정된 박한샘, 박용선, 류현숙, 조동광 등 총 6팀의 그룹 및 작가가 2017년 4월부터 9월 까지 1, 2부로 나눠 전시를 진행한다. ● 이 6팀의 전시가 한 팀씩 소개되었던 2016년과 달리 각 공간의 환경이 다르고 각각 가진 주제의식과 재료의 특성이 다른 3팀의 전시가 각 전시실에서 동시에 개최되면서, 각 공간에서 펼치는 예술적 담론들과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혹은 하나의 전시로써 확장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층적인 전시가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구축되기까지 예술가와 학예팀 간의 긴밀한 소통과 조형연구가 뒷받침이 되었으며, '대청호 프로젝트'는 단순히 공모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작가 본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와 그 행위를 조명하는 창작산실이 되는 것이다.

박용선_반식물_나뭇잎_120×70cm×3_2017

『사소한 혹은 하찮은』展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형상들의 의미와 조건에 관한 탐구에 관심을 가지며, 평면,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박용선 작가의 개인 전시다. 이번 전시 '사소한 혹은 하찮은'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자연을 바라보는 하나의 단상을 의미한다. 그는 자연의 일부를 채집하거나 그 현상을 기록하여, 자연과 삶의 지속적인 순환, 그리고 찰나의 순간들을 사유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용선의 대표작 중 낙엽과 죽은 식물을 모은 뒤 찢겨진 부분을 바느질하여 꿰매는 「반식물」 작품과 깨진 유리조각들을 모아 해의 이동시간에 따라 반사되는 빛의 이동을 기록한 영상작품 「유사한 시선」 시리즈를 선보이며, 우리가 평소 지나치고 인지하지 못했던, 즉 사소하거나 하찮다고 느낄지 몰라도 엄연히 존재하고 소멸해가는 가치들을 재경험하게 한다. ● 박용선 작가는 간결하면서도 치밀하다. 전시장 한 벽면을 가득채운'유사한 시선'시리즈는 창에서 쏘아내리는 햇빛이 이동하는 하루의 시간을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외부로부터 건물내벽의 보호해주는 창의 유리가 깨짐으로써, 창의 역할이 소멸되고, 보호막이었던 유리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파편으로 깨져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쓰임과 용도가 끝난 유리파편들을 하나씩 주워 모아 깨진 창 아래에 가지런히 모아두고 창 너머로 내리쬐는 햇빛이 유리파편에 부딪쳐 반사되는 찰나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였다. 극히 일상적이고, 허나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긴 침묵의 시간이 담긴 작가의 시선 속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람자는 소멸되기 전 그 빛나는 순간의 변화들이 깊은 울림과 진동을 가져다주며, 작가의 예술적 언표에서 드러나는 사유의 시간을 통해 삶에 대한 의미를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박용선_유사한시선-B_단채널 영상_00:02:30_2013 박용선_유사한시선-G_단채널 영상_00:02:40_2011 박용선_유사한시선-M_단채널 영상_00:03:25_2013

찢겨지거나 헤진 나뭇잎을 주워 모은다. 바스락대는 나뭇잎을 그늘에 말리고 찢겨지고 헤진 부분을 살펴 조심스레 꿰매거나 얽어준다.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다루면 쉽게 부서지거나 찢겨지고 만다. 연약하고 민감한 물건을 다루듯이 정성으로 어루만져야 나뭇잎은 그것들의 살갗을 내어놓는다. 여미는 손과 나뭇잎은 그렇게 조심스런 대화를 이어간다. 죽거나 헤지고 찢겨진 나뭇잎의 간극을 이어주는 것은 온전한 나뭇잎의 복원이며, 치유이자 자연과 미지의 세계와의 경계를 잇는 것이다. ● 햇빛이 창으로 들이닥치는 순간의 형상. 형상에 맞게 유리가루를 배치하여 빛이 드는 순간의 움직임을 담는 것. 햇빛이 닿는 순간의 황홀함, 그리고 순간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깨진 유리파편들. 자연현상의 극적인 부분, 하지만 거기에 숨은 치명적인 이질적 속성들. "치명적"이란 단어는 아름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자연 현상 속에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그 속에 치명적인 독소들을 품고 있다. 또 그 반대로 치명적인 요소는 아름다움을 발한다. 아마도 그것이 자연이 품고 있는 양면의 질서다. ● 나의 관심은 사물이나 인간과 자연, 사소한 현상들의 관찰에서 찾은 이미지들의 흔적에 있다. 나에게는 작품이 실체로써의 대상, 개별 예술로써의 파악이기보다는 상황과 공간, 지각에서 경험하는 특정한 신체적, 감각적 경험이 중요하다. 대상이 갖는 본래의 의미와 의지를 견고한 조형적 언어로 추상하기 보다는 대상 이미지를 관찰하는 방식과 태도에서 반영되는 이미지를 쫓는다. 세련된 시각 성보다는 원초적인 감각에 더 의지한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예술의 구조적 언어에서 소외되는 그늘의 언어들을 살피고 채집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흥미로운 일이다. "사소한 혹은 하찮은"은 자연에 관한 하나의 단상이다. 자연에 관한 사소하거나 하찮은 '간섭'은 자연(自然)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기위한 일종의 시선이자 언어다. 어쩌면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불완전한 재료들, 하찮은 자연 재료들은 그 보잘 것 없음으로 인해 자연을 더욱 선명하고 민감하게 완성한다. ■ 박용선

Vol.20170709a | 박용선展 / PARKYONGSEON / 朴容宣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