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기억공작소 Ⅲ - running railroad

홍명섭展 / HONGMYUNGSEOP / 洪明燮 / installation   2017_0707 ▶ 2017_0910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 철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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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만남 / 2017_0707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2층 4전시실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기억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 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위대한 해석과 그 또 다른 가능성의 기억을 공작하라!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 철_2017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 철_2017

불화의 유머 - shadowless, artless, mindless ● "본다는 것은 시지각視知覺 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身體的 행위行爲이다. 공간에 노출되거나 포획된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이고 몸의 경험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체를 처단하는 드로잉 속을 배회한다는 것은 우리 의식의 환각적이고 몽상적인 곡예이기도 하다."라는 홍명섭 작가의 명확한 설명을 접하기 전까지, 우리는 대개 뭔가를 눈으로 보고 대상의 형태적 특징이나 존재의 가치, 의미 등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가의 '러닝 레일로드' 전시 또한 이제까지처럼 난해한 개념과 정신의 예술적 승화와 진지한 미학으로 둘러싸인 어렵고 특별한 세계의 무엇으로만 파악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작가의 제안적 설명에서처럼 본다는 것의 신체적 행위는 작품과 관객 사이의 '정신과 신체', '시간과 공간' 관계의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매개적 수행이며, 그 자체로 살아있는 작업의 태도이다. ●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눈높이 정도에서 무심하게 시작되는 길이 27m정도, 폭 5㎝ 정도의 검정색 종이테이프 2가닥을 평행으로 이어 붙여 칼로 그려내는 철길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두 개 선의 철길로 출발하여 흰색 전시실 4벽면을 수평으로 횡단하면서 중간 벽면쯤에서 하나의 철길로 합쳐지고 다시 슬며시 나누어져 두 개의 철길로 마무리되는 이 이미지는 두께가 없으니 그림자를 찾을 수 없고, 별스럽게 가치를 꾸미지 않아 소박하며, 특별히 예술적 작동의 의미를 담은 것 같지 않은 그런 홍명섭만의 유머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는 흑백의 격한 명암대비에 의한 눈의 어른거림과 함께 우리의 기억을 일깨우는 환경으로도 작용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철길 이미지는 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미지에의 동경과 같은, 비약이 없는 미지로의 표면장력, 문명과 혁명, 광야와 개척, 모험과 일탈, 유혹과 외경, 만나고 헤어짐, 심리적 방황 그리고 속도 등을 일깨우는 몽환적 모티브인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운동을 유도하는 이 전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작가의 '생각'과 그 '신체 행위'로 인한 물질적 현실화의 사태로 이루어져있다. 철길 형태의 테이프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시공간 속에서 관객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데, 관객은 작가가 제시한 무거운 '무쇠 슬리퍼'를 스스로 신고 중력의 저항을 감지하며 시각과 몸이 결합된 걷기라는 신체행위를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관객은 더 이상 정신과 영혼만의 주체가 아니라, '몸, 시간, 공간'의 융합체로서 '드로잉'과 '무쇠 슬리퍼'가 되는 변태의 창발적 체험을 경험한다. 이 상황 속에서 시각에 신체가 더해지고 공간에 시간이 개입되며,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식은 총체적으로 해체되고, 사물의 질서정연한 의미들이 교란되어 불화不和하는 것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running railroad'는 1982년부터 진행해온 topological한 공간운영 개념을 기반으로 한 작업, 이 작업은 관객의 시선뿐만 아니라, 관객의 몸 자체; 걸음걸이의 감각, 호흡과 속도, 중력에의 저항 등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외부적 요소들이 작업의 흐름을 창출하는 조건이 된다. 관객의 준비되지 않은 몸의 리듬을, 그래서 몸이 예측하지 못했던 감지력이 촉발하게끔 낯설고 껄끄러움으로 유발되는 중력과 몸의 불화의 감성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면서, 마치 거동이 불편한 환자처럼, 익숙하지 않은 몸 씀의 이질적 흐름들에 맡겨지는 비자발적 감성, 일상적 인식의 틀과 겉도는 지각과 몸 감각의 충돌들, 내 몸의 감각이 새로운 보철을 체험하듯 낯선 변종의 감각을 꿈꾸며, 그래서 우리의 몸의 비자발적 감각의 각성을 통해 또 다른 생명환경의 사유를 도모한다."라고 한다. ● 홍명섭의 작업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업에 대하여 예술 개념의 모호한 경계 제시와 거친 당혹감, 저항과 불편함, 불화를 촉발하는 긴장감을 떠올린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우리의 사유와 지각이 달라지고 새롭게 배열되는 타자적 지점을 향해 고정된 정체성의 인식에 교란을 주어 우리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꿈꾸는 체험을 관객에 의해 더불어 창출하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한다. 그 전략이기도한 작가의 기본적 태도는 우리 의식의 동일성 원칙을 해체하려는 '불화'이다. 작가가 제시하는 이 '불화'는 작업의 내적 불화에서부터 작업이 끼치는 외적 불화까지 포괄하여 작업과 관객 사이는 물론 작업과 작가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이다. 이 때 불화는 사람들 사이가 나빠지는 감정적 대립이나 적대시하는 반목의 유형이 아니라, 동일화되지 않는 이질감의 경험이면서 힘의 밀림과 당김으로, 준비되지 못한 감성의 마찰을 견뎌야하는 그런 '저항'과 '불편함'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결국 삶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확장하게 하는 힘으로서, 개념의 바깥을 지각하고 각성시키고자 하는 생기일 것이다. ●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꿈꾸는 경험의 창출을 염두에 둔 이번 전시, 기억공작소 '러닝 레일로드'에서 작가는 고정된 예술의 경계와 인간 감수성 사이의 불화를 비롯한 그 균형적 대응이 지닌 탁월卓越한 긴장과 공감共感을 드러낸다. 우리는 이를 예술 확장의 충만감이라고 부를 수 있다. ■ 정종구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_설치_1982
홍명섭_horizontality; running railroad_설치_The Korean Culture & Arts Foundation Marronnier Art Center Seoul Korea, 2004. 3. 26 ~ 4. 25_2004

미학적 결정론의 통제를 해체하는 미완의 작업들, 현재만을 살려내는 작업들 ● 내 작업에서 연대기적 순서란 의미가 없다. 새로운 작업과 옛 작업이라는 구분이 무색하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땅에 스며들다가 언젠가는 다시 솟구치듯이, 하나의 작업으로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잠기고 다시 번진다. 이런 시대착오적 흐름들은 한 방향의 시간을 살지 못하고 배회하거나 반복, 분산, 순환한다. 머리와 꼬리가 따로 없는 이러한 생리가 내 작업에서 구작과 신작이라는 개념의 구분을 의미 없게 만들고, 제작의 연대기적 순서와는 무관하게 겉돌게 한다. 내 작업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상황과의 조우를 통해 모든 철학적 결정론(아키즘)들의 미학적 통제를 헤집고 틈을내고 작업 자신의 안과 밖을 헐고 가로지르는 아나키스트적 힘의 실체란 이미 그 자체가 표현 불가능한 비확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 흔히 "작품(作品, works)"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이미 유기적 완성체라는 비평적 명제가 함축된 의미를 알게/모르게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유기적 완성체를 동경하는 "작품"이라는 개념에는 벌써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된 (형이상학적) 예술론이라는 일종의 통제론(아키즘, archism)에 억압당해 있는 것이거나 그런 미적 확정론에 암암리 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성(自家性 auto-affection)의 자폐적 존재로서 "작품"의 개념에 대한 대안적 활성론의 형성계기는 작가 중심이 아닌, 작업의 생성적 작동 구조에서 탄생한다. 내 작업을 통해서 나타나는 개념들 또는, 내가 사용하는 개념들은 내 작업 세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발굴된 개념들을 다시 사용하여 내 작업을 더욱 삐걱거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결국 삶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확장하게 하는 힘으로서, 개념의 바깥을 지각(각성)시키고자 함이다. ● 나는 내 작업이 일종의 불화를 촉발-촉진하기를 바란다. 이 불화는 작업의 내적 불화에서부터 작업이 끼치는 외적인 불화까지 포괄하여 작업과 관객 사이는 물론 작업과 작가와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말한다. 이 때 불화는 사람들 사이가 나빠지는 감정적 대립이나 적대시하는 반목의 유형이 아니라, 동일화되지 않는 이질감의 경험이면서 힘의 밀림과 당김으로, 준비되지 못한 감성의 마찰을 견뎌야 하는 그런 저항과 불편함 일 수 있다. ● 우리의 사유와 지각이 달라지고 새롭게 배치되는 타자적 지점을 향해 고정된 정체성의 인식에 교란을 주어 우리가 "누구인지"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꿈꾸는 체험을 관객에 의해 더불어 창출하고자 한다. ● 또한, 내 작업에는 사회 비판적 관심(반영)이나 정치적 내용이나 현실이 담길 수 있는 내부가 없다. 바깥뿐인 내 작업은 그 자체의 작동 모습과 외부로 작용하는 어떤 감응이나 마찰을 유발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작업의 시대와 세상에 대한 꿈이고 반응일 것이고, 그것이 내 작업의 정치적 모습/이유 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내가 이러한 작업을 한다는 삶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선택 행위인 것이며 반/사회적 활동이며 내 삶의 흥미를 잉태하는 사후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마치, 그레고리 베이트슨(문화 인류학)의 말처럼; 모든 생명체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바로 그 생명체의 생존 이유라는 것, 처럼.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 철_2017
홍명섭_running railroad_테이핑, 철_2017

내 작업을 가로지르는 개념들의 창출 ● 다음 3가지 개념들의 발견은, 결국 내 작업의 형식적 특성들이 되는 것이기도 하면서 가만 보면, 내 작업을 구축하고 이런 작업들을 유지하는 유머러스한 감응들을 뒤늦게 산출하는 내재적 사후원인이 아닐 수 없다. ● 「shadowless, artless, mindless」 ; 두께가 없는 "표면" 뿐인 "creeping pieces"들. 벽은 물론 바닥에의 설치까지도 두께나 높이가 거의 없거나 무시되는 그런 설치물들, 미술품들이 지니는 견고성이나 유일성 따위의 고정된 가치 개념들을 이미 여과해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닐 수 없는 일회적 신체성, 마치 귀신처럼 조각적 실체가 없는, 즉 고정적일 수 없는 작업의 예술적 작동은 미적 오브제 자체가 발산하거나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때그때 창의적 접속들과 그 감응들이 빚어내는 "마당"을 획득하는 것으로, 이는 "temporality"라는 "인연 시스템"이 차이(조건)지우는 것만을 누리거나 그렇게 열어 놓을 수밖에 없다는 처지. 능동적 나레이티브나 의지가 배제된, "익명적 개별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예술의지. 나의 주체를 굴절하고 변용하면서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되어가는 감각들을 촉발한다. 개념들의 저편, 또는 비개념적 발상/발동들. 사회적 이슈와 통념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이질적 사고 형태들의 잠재력을 실험하기. 자기 주체적 시각을 거스르는 타자적 감각들과의 조우를 꿈꾸는 꿍꿍이. 나의 작업은 흔히, 그 의도나 개념의 통제를 벗어나 내 의식으로는 지배되지 않는 어떤 새로운 의도-계기를 잉태하는 것으로 뒤집어져서 나타나곤 한다. 작업의 근거를 배반하는 작업의 됨됨이들. ■ 홍명섭

워크숍 제목 : 홍명섭의 작품세계 일정 : 7월 8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 봉산문화회관 2층 4전시실 대상 : 청소년 및 일반인 참가문의 : 053)661-3526 내용 :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 관객과 대화

Vol.20170708d | 홍명섭展 / HONGMYUNGSEOP / 洪明燮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