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 T h e S t r o k e s l o w e r t h a n W a l k i n g

조동광展 / JODONGKWANG / 趙東光 / installation   2017_0707 ▶ 2017_0903 / 월,공휴일 휴관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초대일시 / 2017_0707_금요일_05:00pm

2017 대청호 프로젝트 2부

작가와의 대화 / 2017_0830_수요일_04:00pm

후원 / 청주시_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관람료 / 문의문화재단지 입장객에 한해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CMOA Daecheongho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제2전시실 Tel. +82.(0)43.201.0911 cmoa.cheongju.go.kr/daecheongho/index.do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은 2016년부터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질문과 실천 방법을 참여 작가들과 함께 모색하고, 동시대 미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담론과 미적 감수성을 공유하기 위해 『2017 대청호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2017 대청호 프로젝트』는 대청호미술관의 장소 특성을 활용한 현장설치 공모에 선정된 STUDIO 1750+정혜숙팀과 성정원·이지연팀 그리고 '자연과 생명'을 주제로 한 주제전시 공모에 선정된 박한샘, 박용선, 류현숙, 조동광 등 총 6팀의 그룹 및 작가가 2017년 4월부터 9월 까지 1, 2부로 나눠 전시를 진행한다. ● 이 6팀의 전시가 한 팀씩 소개되었던 2016년과 달리 각 공간의 환경이 다르고 각각 가진 주제의식과 재료의 특성이 다른 3팀의 전시가 각 전시실에서 동시에 개최되면서, 각 공간에서 펼치는 예술적 담론들과 이미지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혹은 하나의 전시로써 확장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층적인 전시가 한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구축되기까지 예술가와 학예팀 간의 긴밀한 소통과 조형연구가 뒷받침이 되었으며, '대청호 프로젝트'는 단순히 공모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작가 본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와 그 행위를 조명하는 창작산실이 되는 것이다.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조동광은 일상에서 버려진 폐기물이나 사물을 수집한다. 직접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발견된 사물들을 가지고 그만의 조형감각을 발휘하여 마치 퍼즐을 맞추듯 재구성한다. 대청호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전시『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展 또한 작가의 그동안의 근작과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주로 자연의 이미지를 차용한 인공물 혹은 자연을 닮은 인공적인 상황과 사물들을 기록하고 수집한 뒤에, 특유의 조형감각으로 놀이하듯 설계하고 재구성한다. 그가 선택하고 조립한 사물들은 그 쓰임과 용도가 이미 끝나 주인을 잃어 갈 곳 없는 유목적 사물들이다. 마치 바다 위에 떠다니는 유리병처럼 도시 곳곳을 유영을 하듯, 작가 본인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서 느끼는 자연스럽지 않은풍경, 자연스럽지 않은 사물들을 느린 속도로 채집하였다. 이 익명의 사물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 가공된 도시의 자연물들, 혹은 자연물의 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공물들이며, 작가는 이것에 현대 도시사회의 자연의 모습이자 자연물과 인공물의 묘한 대립 속에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디스토피아적인 풍경을 그려냈다고 말한다. ● 한편, 조동광의 작업은 우리의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 충돌을 일으키고 관람객에게 이것 또한 과연 예술인가? 라는 물음을 되묻게 한다. 버려진 그 상태 그대로의 사물을 조심스럽게 전시장으로 옮겨오거나, 오랜 시간 모은 사물들을 그의 방식대로 설치하지만 전시가 끝난 뒤에는 다시 폐기된다. 결국 남은 것은 마지막 기록으로 남긴 사진이요, 물질로 시작하여 비 물질로 끝나는 그의 행위는 일정기간 안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난다. 아마도 사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형태와 물질의 특성이 그의 작업에 주요한 형식과 재료이겠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물을 발견하고 채집하기까지의 상황, 즉 당시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사물과 교감된 감성의 범주 또한 그의 작업의 주요 지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익명의 사물들이 만나 병치되거나 중첩된 그 형태의 합은, 그들끼리 미묘한 대립과 균형을 이루며 사물 본래의 속성을 해체하고 변용된 이미지들을 생산해낸다. 이 사물들 간 긴장된 상태를 바라보는 관람자들은 조립된 퍼즐들을 하나씩 풀어내듯이 병치된 사물들의 조합 속에 숨겨놓은 작가의 흔적과 불언한 화법들을 읽어내는 것이 이 전시의 묘미이며, 우리가 조동광식 사물작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 : 망막의 저편과 사물의 질서"이 예언가들(초현실주의자들)은...이러한 사물들 속에 숨겨진' 분위기'의 엄청난 괴력을 폭발시킨다." (벤야민) 1. 색채와 형태는 미술사의 오래된 범주였다. 둘 간의 관계는 시대마다 엎치락뒤치락 하였다. 친숙한 동료일 때도 있었고 지고의 적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동료일 때라도 둘의 지위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개념을 지향하는 형태가 색채를 다스리고 억누르는 관계였다. 이것은 그림이 오랫동안 글자에 종속됐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역시 확인된다.' 시는 회화와 함께 ut pictura poesis'라는 테제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일러준다. 그림은 글자를 닮고 싶어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술에서' 선적인 것'이 점차 물러나고' 회화적인 것'이 득세를 하였기 때문이 다. 렘브란트가 이러한 양상의 시작이라면 인상주의는 완성일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색채에게 마냥 유리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얼마 후 현대미술은' 망막 너머의 세계' 를 본격적으로 지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곳은 대체 어떠한 곳일까. 조동광의 『걸음보다 느린 배영』이 흥미로운 것은 그 세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곳의 간과하기 어려운 문제를 살며시 들추기 때문이다. 색채의 작은 반란, 혹은 감추기 힘든 욕망을 말이다.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2. 조동광은 사물의 변용(기능변화)을 작업의 원칙으로 삼는다. 이 방법은 첫 번째 개인전 『트로피아』(2010) 때부터 견지한 것으로, 주로' 발견된 사물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재조립한다. 『걸음보다 느린 배영』도 이러한 방법이 역력히 작동한다. 고무호수, 철망, 솜, 화분, 밥상, 벽돌, 입간판이 모여서 생소한 설치가 구성된다. ● 서로가 어디서 구한 것들인지 모를 사물들이 조동광의 규칙에 따라 기묘한' 사물의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동광이 선택한 질료와 방법은 언어와 비슷하다. 여기서 질료는 낱말이고 방법은 문법에 해당될 것이다. 자의적인 규칙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고 서로 간에 관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러한 경향은 일찍이 아상블라주가 지향한 것이다. 제 1의 자연이 아니라 제 2의 자연(문화)에서 질료를 구하고, 조형의 의지를 버리고 문법과 같은 규칙을 따르는 것. 자연을 모방한 소리에서 문화의 찌꺼기 같은 소음을 수집해' 연주'를 했던 현대음악과 동일한 태도다. (자연적인) 조화가 아니라 (인공적인) 혼돈이 펼쳐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역시 현대미술과 동일한 결과다.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38.5×49×53cm_2017

3. 하지만 작가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사실 그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무엇보다 『걸음보다 느린 배영』에서' 조형의지'가 확실하게 약화됐다. 『트로피아』의 작품들은 기능이 변하더라도 애초의 형태를 견지했고, 둘 간의 긴장이 작품의 핵심으로 작동했다. ● 트로피를 질료로 삼았던 작품이 대표적이다. 트로피를 뼈대로 여러 가지 소품을 재조립했는데, 적어도 트로피의 외형은 온전히 유지됐다. 그러나 『걸음보다 느린 배영』에서 이와 같은 형태의 의지는 찾기 어렵다. 모든 작업들이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바닥에 옆으로 펼쳐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갤러리 벽면에 판자 몇 개를 수평으로 몇 개 이어붙인 작업이 있지만, 딱히 구성의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분홍빛 색감 때문에 평면의 성격이 강조될 따름이다. 즉 자의적인 단어에 자의적인 문법에 따르는 언어에 전보다 훨씬 가까워지고, 위로 솟구치는 조형의지에서 옆으로 펼쳐지는 문법으로 확실하게 다가간 것이다." 인상주의에서 수립된 망막적인 경계들을 뚫고 언어·사유· 시각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재스퍼 존스) 현대미술의 진앙인 뒤샹이 그랬던 것처럼, 조동광은 확실하고 착실하게' 망막 너머의 세계'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7

4. 현대미술에서 색채와 형태는 유효한 범주가 아닐 것이며, 다양한 양식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러한 범주를 해체했다. 신고전주의 등 몇 차례 주기적으로 전통적 범주의 욕망이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현대미술이란 맥락에서 반동이나 이단처럼 간주되는 게보통이었다. 조동광 역시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바탕은 (언어적) 개념을 지향하는 현대미술의 경향을 고스란히 따른다. 그런데 말이다. 약화됐다고 해서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색감의 욕망을 감추지 못한 작업이 있기 때문이다. 벽면에 파란색 계통의 평면이 배경처럼 자리하고, 분홍색 패트병과 노란색 발판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이 작업. 뭐랄까, 기껏 망막을 힘들게 넘었더니, 또 다시 마주친 게 색채라는 것이다. ● 예전과 같은 조형의지는 뒤로 숨었지만, 색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통적 미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조동광_걸 음 보 다 느 린 배 영_혼합재료_230×72×330cm_2017

5.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발칙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발견된 사물에 구애받지 말고, 본인이 인위적으로 구성한 사물의 질서와 색채를' 의식적으로' 충돌시켜 보면 어떨까. 오픈 직전까지 작품의 색감을 맞추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어떠한 결과일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망막 너머의 세계의 너머의 곳일 테니까 말이다. ■ 김상우

Vol.20170707d | 조동광展 / JODONGKWANG / 趙東光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