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을 피우다

나웅채展 / NAWOONGCHAE / 羅雄彩 / painting   2017_0705 ▶ 2017_0710

나웅채_정적(靜寂)_한지에 수묵_130×385cm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관훈동 119번지) 3층 Tel. +82.(0)2.734.1333 www.ganaartspace.com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주상절리를 그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내가 생각한 먹의 개념을 말하고자한다. 나는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히려 드로잉개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준법이나 필법에 가리워진 산수화, 일부 수묵화는 정해진 법칙과 규정된 느낌을 주며 심지어 오리엔탈리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준법조차도 드로잉의 일부라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미묘한 인식과 개념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고 때문에 이에 대해 더욱 집요하게 생각하고자했다. 준법과 필법을 결코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드로잉과 전해 내려오는 두 개념의 관계에 대해 정리를 하고 싶을 뿐이다. 태권도에 비유한다면 준법과 필법은 '품새'와 비슷한 것이라 생각했다. 심신수양의 목적으로 정신성에 바탕을 둔 기술체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체계는 올림픽 정식종목인 '겨루기'에서 그리 유용하게 쓰이지 않는다. 딱딱하고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주상절리의 거대한 형상을 드로잉 하듯 그림을 그린 절반의 이유이다.

나웅채_정적(靜寂)_한지에 수묵_243×122cm_2017
나웅채_결_한지에 수묵_130.3×97cm_2016
나웅채_Edge_한지에 수묵_91×182cm_2017

그림을 그리며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은 새로움보단 물성의 깊이였다. 깊이 속에서 새로운 것들은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그림을 그린 이유는 철저히 배우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결코 테크닉이 아닌 나아가려는 방향성과 내 삶과 견주어 기호로써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솔직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사진을 찍고 사생한 것들을 참고하여 실경을 그리고 나름의 구성을 통해 반구상적인 그림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고 반복하며 두 가지 확신이 들었다. 하나는 기초 작업의 중요함이었고 또 하나는 사생을 통해 지루함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생은 매너리즘을 벗어나게 해주는 척도가 되어 작업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면 내 두 눈으로 대상을 직접 봤다는 떳떳함이 있었다. 그런 떳떳함 때문에 형상을 의도적으로 변형시키며 실제보다 덜 그려내도 아무런 자책감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나웅채_바램_한지에 수묵_199×85cm_2017
나웅채_세로_한지에 수묵_135×135cm_2017

무엇인가를 이루고 결실을 맺을 때 상상이상의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실에 대한 감흥은 서서히 사라지고 만약 그것이 영원하지 못한 것 이라면 정작 최선을 다해 느끼기보다 언젠가 소멸할 것이란 걱정을 앞세우게 된다. 일요일저녁이 월요일보다 싫은 것처럼. 학부모가 자녀의 학예회에 육안의 감상이 아닌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영상을 기록하기 급급해 하는 것처럼. 어쩌면 행복의 잣대는 현재가 아닌 미래지향적인관점에서 비롯되고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일을 갈망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꽃을 피우지 않은 6월 초의 어린 연을 보며 너무나 거창한 생각을 한 것 같아 스스로 궁상맞아 보였지만 얼마 뒤 이 연잎들이 꽃이라는 결실을 맺었을 때 이런저런 별다른 염려 없이 순수함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나웅채

Vol.20170705d | 나웅채展 / NAWOONGCHAE / 羅雄彩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