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629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세움 아트스페이스 SEUM ART SPAC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소격동 73번지) Tel. +82.(0)2.733.1943 www.seumartspace.com
하나의 처음을 이야기 할 때 ● 방수연에게 어떠한 처음을 내어놓는 일은 하나의 사실을 확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의 것이 처음이며 사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어나갈 이야기의 단초를 밝히기 위해 작가는 그동안 여러 사실을 골라왔다. 작가는 일상을 매운 다양한 현실의 뒤를 따르기보단 자신에게 사실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눈을 두고 찬찬히 응시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주된 볼 것은 풍경이었다. 하늘과 지면, 수면을 보았고 건축물과 이동수단, 그 사이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곳에서 재생되는 장면들이 곧바로 작가의 사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화면으로 불러들여 되새기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되새기는 방법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기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기도 했고 다시 그리고 덧그리는 행위의 반복으로 공을 들이는 일이기도 했다. 이같은 과정은 보고 옮기는 재현의 정도를 높이기 위함이라기 보단 작가가 다루고 있는 풍경 속에 실마리처럼 남아있을지 모르는 어느 사실에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방수연은 외현적인 표현의 습득보다 내정에 솔직한 시기를 지나왔다. 이러한 시간동안 작가가 사실로서 마주해온 것은 풍경을 기억하는 자신의 정서다. 특정한 장면이 작가를 자극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적이라고 여겨졌던 순간을 불러오기 위해 긴 시간 공을 들여 풍경을 좇아왔다. 누군가에겐 쉽게 여겨지는 풍경 중에서도 작가에게 결코 쉽지 않았던 순간들을 불러올 수 있었을 때 하나의 사실이 확정되곤 했다. 그것이 불안과 초조, 조금 더 짙은 정서에 가 닿더라도 사실임을 호소하는 순간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작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Between」시리즈는 크게 인물과 인물이 자리하는 장소, 그 장소의 주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데 이 역시 방수연이 마주해온 하나의 사실에 해당한다. 여기서 인물의 외형은 대부분 왜곡 되어 그들이 있었던 위치와 형태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함께 화면의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긁히고 흩어진 장면으로 하나의 사실에 대한 성격을 유추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결'이라고 했다. 화면에서 다루어지는 이러한 결의 정도와 종류에 따라 풍경의 성격은 달라진다. 풍경 속 인물들이 자리하는 장소와 장소의 주변은 가시도 높게 구현되어 있기도 하지만 화면 속 그 밖의 표면에선 결을 형성하며 종과 횡으로 뻗어나가 오히려 그 형상을 흩뜨리기도 한다. 풍경을 이루는 요소들의 관계가 원만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데 각각의 요소가 서로 다른 결로서 자신의 위치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라는 결과에 이르지 못한 화면은 방수연이 풍경을 마주하는 기분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에게 그림으로 " 기록해 나가는 일은 어찌되었건 기분을 이어나가는 일" 이다. 풍경을 기록하며 되새기는 일은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풍경의 주인공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단숨에 찾아진 순간이 아니었으며 여러 번의 처음을 지나더라도 섞이지 않는 경계를 유지하고 또 풀어헤치는 과정을 수반하고 있다. '사실의 추구'라는 자신만의 공정을 위해 작가는 가시도 높게 구현된 풍경을 흩뜨리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방수연의 지속된 천착은 논리적인 화면을 구성해 타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실에 최대한 집중하며 풍경을 마치는 것이다.
「Liminal zone」은 6개의 이어진 화면들이 하나의 큰 풍경을 이룬다. 대도시의 모습이라는 전체적인 주제를 가늠할 수 있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최소한의 형상만을 남긴 채 흩뜨린 구조물들을 찾을 수 있다. 이어진 화면 각각의 관계 역시 높은 정도로 유기적이진 않지만 화면을 채우고 있는 분위기의 유사함에서 내용의 공백 가늠할 수 있다. 「Between」시리즈가 일부분 흩뜨린 풍경을 드러냈다면 「Liminal zone」은 화면의 전반에서 그러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작가가 자신과 경험했던 풍경 사이의 괴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어쩌면 다가갈 수 없다고 확정된 풍경이 작가에게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가갈 수 없는 풍경이기 보다 작가 스스로 다가가지 않는 풍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이다. 풍경과의 이러한 관계와 더불어 형상과의 균형으로 유지되는 것이 방수연의 화면이다.
「Liminal zone」에서 한 가지 더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화면의 상단에서 건물을 타고 흘러내리는 빛 혹은 어둠이다. 방수연의 작업 전반에 드리운 낮은 명도는 주로 낮밤과 기후 혹은 구조물들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의 조도를 보장할 뿐이다. 하지만 내어놓는 풍경과는 별개로 빛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꾸준한 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Shallow signals」각각에 맺혀있는 빛은 작가의 풍경에서 새어나온 빛으로 근원을 유추할 수 있다. 풍경 속 미미했던 빛이 상으로 맺힌 것이자 작가에게서 풍경으로 진입하지 못한 빛이 가시화된 것인데 언젠가는 작가의 풍경 속에서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명과 암을 라이트모티프로 펼쳐놓았다. 작가 자신이 각 작업에서 다루어왔던 빛을 옮기고 또 옮겨낼 빛을 준비하는 것은 풍경의 외현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중에 얻어질 사실들 역시 새로운 확신으로서 작가의 화면에 하나의 결을 더해줄 것이다. ■ 이주희
Vol.20170629d | 방수연展 / BANGSOOYEON / 方秀姸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