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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범 홈페이지_www.black-jaguar.com
초대일시 / 2017_0617_토요일_07:00pm
DJing party / 2017_0617_토요일_07:30pm~09:00pm Line up / ng.ae_Seesea
관람시간 / 07:00pm~12:00am / 월,화요일 휴관
레이져 LASER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721-5번지 B1 Tel. +82.(0)10.7288.1032 blog.naver.com/laserlaserlaser
타인의 세계 ● 나 흑표범은 초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까지는 어렵사리 능력을 숨기며 살아왔으나, 이 전시장을 찾은 이들에게만 고백컨대, 나에게는 비범한 슈퍼파워가 있다. 자, 지금부터 딱 한 번만 간단히 설명할 터이니 잘 들어두어라. 나는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여신, 혹은 슈퍼우먼들을 알아보는 능력을 타고났으며, 그녀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새로운 힘을 북돋아줄 수 있는 부적을 드로잉한다. 그 '슈퍼 우먼' 들이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느냐고? 그녀들은 무기를 최대한 잘 감추고, 평범한 외면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다. 수영장 직원, 슈퍼마켓 점원, 작가, 전시기획자, 편집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각기 다른 파워를 가지고 있다. 귀인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우주에서 중심을 놓친 적이 없는 그녀들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종종 '타자'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며, 시시각각으로 정체성과 여성성이 공격받는 작금의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그런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녀들을 위해 드로잉 부적을 사사한다. 속세에서 나의 직업은 작가이고, 평소에는 오른손잡이지만, 부적을 쓸 때만큼은 왼손으로 드로잉을 한다. 오른손보다 상대적으로 서툰 왼손을 사용하여, 그녀들의 초능력에 좀 더 신체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드로잉 부적은 이렇게 그녀들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내부의 두려움으로부터 지켜낸다. ● 그럼 이제부터 흑표범의 하루 순찰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의 어슬렁거림은 동네 수영장에서부터 시작된다. 날카로운 레이더망에 오늘의 첫 번째 귀인이 포착된다. 바로 「갈월동 수영장 언니」이다. 깡마른 몸, 샤프한 눈매, 짧은 단발머리의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몸처럼 시크한 성격의 소유자로, 쓸데없는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샤워실과 탈의실을 청소하는 그녀의 전생이 내 눈에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는 한 부족을 이끄는 족장이었으며, 친절하고 용맹한 대지의 여신이었다. 그녀를 위한 부적은 오프 숄더 실루엣 드레스로, 금박 입힌 디테일 문양이 그녀 앞길에 똑똑 떨어져 등불처럼 미래를 밝힐 것이다.
수영장을 나와 마트로 들어간다. 여기서 일하는 마트 언니가 바로 오늘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나는 평소부터 그녀를 눈여겨 봐왔다. 짧은 커트머리에 무뚝뚝하고 강한 인상이지만, 손님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씀씀이에 진한 속정이 느껴졌다. 문득 '혹시' 하고 의심한 적이 있는데, 지난 번 목장갑 사이로 보이는 뱀피 손목을 보고 '역시'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버렸다. 역시 그녀도 우리 과였던 것이다! 한국이나 서양의 신화를 살펴보면, 고대 신중에서 유독 여신의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풍요와 번영의 기원으로 추앙받던 그녀들은, 유목과 전쟁 역사를 거치면서 새로운 남성 영웅을 생산하는 역할로 축소되거나, 남성 신들을 훼방 놓고 그들을 두고 여자들 사이에서 질투와 이간질을 하는 치사한 캐릭터로 전락해버렸다. 신화 책에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이나 아담 동산의 뱀처럼 유독 파충류에 빗대어 고대 여신들을 비하하는 맥락이 자주 등장하는데, 뭐 상관없다. 나는 그녀에게 위풍당당한 뱀피 텍스쳐 트렌치코트를 입히고 망사스타킹을 신김으로써 그녀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도록 주문을 걸어두었다. ● 오후에 열린 작가와 기획자 모임에서 우리는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본다. 사운드 아티스트 홍초는 멋진 스타일이다. 사운드 장비를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다져진 조형적 어깨라인과 뿔테안경. 그녀의 힘과 카리스마는 설명이 필요 없지만, 간혹 세간의 무지깽이들로부터 "여성스럽게 좀 입어라"라는 타박을 받곤 한다. 나는 그녀가 본래 스타일을 잃지 않도록 꾸뛰르 테일러 팬츠를 입히되, '남성적' 어깨라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뷔스티에, 그리고 붉은 립스틱을 드로잉해주었다. 기획자 성지언니는 전형적인 '마녀'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했던 유능하고 도도한 마녀인데 어쩌다가 이 시국, 한국 땅에 태어나서 때 아닌 고생을 하고 있다.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에게는 근사한 꾸뛰르 드레스를 입힌다. 섬세한 수제 레이스 러플은 목 위까지 올라오고, 일일이 금박이 수놓인 베일은 어떤 갑옷보다 더 안전하게 그녀의 몸을 감싼다. 이제야 훨씬 그녀다워졌다. 으흐흐.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 친구이자 토템 샤머니즘 여신 화용과 통화를 한다. 머나먼 이국 고양이 나라에서 온 화용은 지금 바닥까지 떨어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잠시 친정에서 요양 중이다. 그녀는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부적 드로잉에서 특히 살리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녀의 유두, 젖꼭지이다. 누가 봐도 탐스러운 그 특정 부위는 그녀의 자랑이지만, 유두를 마음껏 드러낼 수 없는 한국의 현실 때문에 많은 시간 그늘 속에 숨죽여야했다. 최근 그녀의 기력이 쇠약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부적 드로잉에서는 유두를 마음껏 노출시킬 수 있는 망사 상의를 입혔다. 오른쪽 팔뚝에 새겨져 있는 무지개 문신과 유쾌한 그녀의 미소도 관전 포인트!
집으로 돌아와 동생 지영과 인사를 나눈다. 우리 집 여성들은 모두 슈퍼 우먼인데, 그녀로 말하자면 불굴의 파이터이다. 늘 얼굴에 쓰고 다니는 타이거 마스크는 링 위의 시간이 마감될 때까지는 결코 지치지 않는 파이터 본성을 반영한다. 최근 승률이 떨어진 그녀를 위해 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인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혀주었다. "Don't give up the daydream." ● 그리고 마지막 부적의 주인공은 바로 나, 흑표범이다. 슈퍼 우먼들에게 부적 드로잉을 씌우고 나면 나 역시도 가끔은 드로잉 파워 충전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살아남아 그녀들이 흔들릴 때마다 힘을 불어넣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머리를 하늘 높이 뾰족이 세우고, 입술에 초록색 생명의 원기를 칠하고, 온몸에 황금빛 용의 비늘로 만든 섬세하고 대담한 미니 드레스를 입는다. 이 옷은 자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우리 천하무적 슈퍼우먼들의 에너지를 위협하는 어둠의 포스가 무엇인지 아는가? 답은 전시장 출구에 걸려있는 핸드라이팅에 적혀있다. 우리의 매력과 에너지를 제한하는, 얼토당토 않는, 그리고 실제로 행해졌던 폭력적인 언어들이 모두 적혀있다. 나를 포함한 전시장의 여신들과 현대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를 위축시키고, 우울하게 만들며, 무지하고 폭력적인 당신들의 언어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앞으로도 미래의 시간을 똑바로 쳐다보며 전시장 밖으로 행진할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아름답다. 그러므로 감히 우리에게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즉시 전시장 밖으로 아웃해 주시길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다. 이상! ■ 조숙현
* 글쓴이 조숙현은 『퍼블릭아트』 에서 기자로 일했고 현재 여러 문화매체에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 , 『서울 인디 예술 공간』 등이 있다.
수집된 말들 ● "그런 옷은 어디서 사요?" "옷 꼬라지가 그게 뭐야?" "쓰읍!" "튀는 옷차림은 좀 자제해주세요." "출근 안 해도 되니 그대로 집으로 가세요." "그렇게 입고 다니면 네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는 거다." "여자애가 챙피한 줄 모르고 배꼽 내놓고 다니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어디 결혼식 다녀와?" "왜 이렇게 꾸미고 다녀?" "젖꼭지 다 티 난다." "그러고 다니면 집에서 뭐라 안 해?" "너무 프리하다. 야." "집에서 내놨냐?" "그러니까 더 남자 같잖아." "옷 좀 발랄하게 입어라." "쎄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미친년 같다." "입은 거가, 벗은 거가." "그것도 돈 주고 사는 거가?" "나이에 맞게 입어봐." "너 어느 나라 년이야?" "옷이 왜 그따위야."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칼 맞을 줄 알아." "그렇게 선머슴처럼 입으니까 남자친구가 안 생기지." "브라자 끈 나왔다. 기집애가 칠칠치 못하게." "치마 속에 속바지 안 입냐?" "그 다리로 반바지 왜 입냐?" "평소에도 치마 좀 입고 다니면 안돼?" "다리 내놓고 다니니까 예쁘네." "차라리 달라붙게 입어야 날씬해 보여." "너 남자 만나려면 머리 바꿔야 하지 않아?" "넌 바지 입지마." "군대 가냐?" "니가 입은 옷 남자들이 좋아하는 옷차림 아니야." "너 남자친구가 아무 말 안하냐? 허락해줬어?" "검은 색 입어야 날씬해 보이지." "거지냐? 바지에 구멍난걸 입고 다니고." "게이냐?" "여자냐?" "니가 군인이야?" "남자가 왜 그런 옷을 입어?" "애 둘 낳은 아줌마 같다." "아예 벗고 다니지 그러냐." "옷이 그게...너 나이가 몇인데.." "밤일하고 퇴근하는 사람인줄 알겠다." "옷을 입은 거야? 헝겊으로 가린 거야?" "옷 입는 센스가 없어." "그 옷 뚱뚱해 보여." "너 옷 살 때 니가 고르지마." "버릇없이 쓰레빠 신고 다니냐" "나이 생각은 안 하냐." "남자들은 그런 스타일 싫어해." "예의가 없구나." ■ 흑표범
Vol.20170617a | 흑표범展 / Black Jaguar / 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