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섬_Heat Island

정재호展 / JUNGJAEHO / 鄭載頀 / painting   2017_0623 ▶ 2017_0718

정재호_럭키 하우스 Lucky House_한지에 아크릴채색_210×148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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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호 블로그_http://nardoldol.egloos.com

초대일시 / 2017_062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경복궁 서쪽 영추문 건너편

상실의 시대, '그리기'로 저항하기1. 왜 다시 아파트인가? 정재호가 아파트 그림으로 돌아왔다. 전체적으로 화면을 채운 건물의 파사드는 전보다 복잡하고 세부적인 모습이다. 시선을 두자니 돌출된 공간에 넘쳐나는 사물들로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가까이서 본다면 시각적 압도감은 더하다. 세밀한 붓질은 파사드에 존재한 사물들을 일일이 드러내며, 보는 이의 시선을 끈질기게 화면에 붙든다. 표면의 얼룩은 물론이고 창문 밖 어지러이 뒤엉킨 전깃줄까지도 세부적으로 보여주는 그리기 때문이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대상이 눈앞으로 나타난 듯, 나의 신체가 공간을 마주한 듯 생생한 감흥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 집념어린 화가의 노련한 필치에 마냥 감탄할 수만은 없다. 그가 대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강박적 그리기'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 정재호는 오래된 아파트를 그려온 작가로 익히 알려져 왔다. 그가 2004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아파트는 파사드의 정면성과 치밀한 구조, 낡은 풍경을 삶의 풍부한 기념비로 다루며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이를 드러내는 방식에서도 여러 번 변화가 있었다. 『청운시민아파트』(2004)에서는 실경의 구도로 건축물의 존재를 세우고, 『오래된 아파트』(2005)에서는 정면 파사드로 다수의 삶을 펼쳐 보이거나 재개발 건물의 현존성을 거센 필치로 잡아내기도 하였다. 이후의 『황홀의 건축』(2007)에서는 아파트뿐만 아니라 근대건축물의 파사드를 상세히 다루기도 하였다. 아파트를 향한 그의 시선은 점차적으로 근현대 건축공간으로 이동하며, 근대성에 대한 누추함, 색 바랜 기념비에 대한 사유를 거리와 사물의 풍경으로 드러내 왔다. 그러던 그가 거의 십 년 만에 다시 아파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더 집요한 필치로, 그의 말대로라면 "전보다 더 더디고 힘든 방법"이다. 작가는 자신의 시간을 거스르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정재호_오너 하우스 Honour House_한지에 아크릴채색_149×209cm_2017

2. 열섬의 장소성, 홍콩의 아파트 ● 사실 이번의 개인전 『열섬』은 아파트 그림 이후로 몰두한 근대성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다. 2009년 『아버지의 날』부터 시작된 2011년 『혹성』, 2014년 『먼지의 날들』의 연장선상에서 정재호는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을 밟게 된다. "모더니즘의 변형이 상이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정재호 인터뷰, 2017년 6월 1일, 작가 작업실에서)를 보고자 한 그는 홍콩에서 마주한 아파트에 압도되고 만다. 오랫동안 아파트를 관찰해온 그가 일찍이 이곳을 그림의 대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그가 홍콩으로의 발걸음을 이제야 옮긴 것은 이 시점에 그곳을 그려야만 하는 '화가의 존재론적 상황'이 담긴다. '오너 하우스', '완차이 하우스', '카프리오 맨션', '폭청 빌딩', '탑뷰 맨션', '럭키 하우스', '만퐁 인더스트리얼 빌딩' 등 홍콩의 철 지난 건물들이 『열섬』의 주인공이다. 그가 관심을 둔 것은 낡고 오래된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거대한 볼륨의 맨션, 시멘트와 철 등 물성이 견고하게 드러난 모더니즘 건물도 포함한다. 홍콩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자신의 작업 초기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집결된 근대성이다. 근대로부터 촉발된 도시에는 사람들을 담아내기 위한 육중한 집합 주거 건물이 도시마다 잔존한다. 이 집단적 건축 공간을 향한 작가의 시선을 일찍이 '아파트'가 대표해왔다. 홍콩의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과잉의 파사드를 바라보며 그가 마주한 것은, 바로 화가로서 지금껏 "아파트에서 받은 감동이 무엇이었냐?"는 자기-회고적 질문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천착한 것은 '존재하는 대상으로서 아파트를 다시-그리기'이다. ● 홍콩의 좁은 땅덩어리를 채운 고층 아파트는 거대 자본의 축적과 신자유주의 금융 신화를 상징한다. 자본을 좇아 사람들이 몰리고, 정주하고자 하는 욕망이 좁은 땅에 집결되면서 고층 아파트와 거대 맨션이 도시 중심에도 쌓아 오르기 시작했다. 주로 50-70년대 세워진 아파트의 물리적 상태는 서울에서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 금이 가고, 얼룩이 가득한 과거의 맨션들은 이제 홍콩의 역사적 파사드로 자리한다. 현재의 시간을 과시하는 건물은 매끈한 표면을 지닌 최근의 마천루이다. 실리콘 재질마냥 매끈한 신축 건물에서는 벽면에 녹아든 지저분한 얼룩과 노출된 전선더미 따위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표면의 배후로 과도하게 축적된 공간은 후끈한 열기를 내뿜는다. 도시에 들이닥친 인파를 피해 부유층은 언덕 꼭대기나 전망 좋은 위치에 자신들만의 낙원을 건설해 살아간다. 자본가는 숨 막히는 도시의 밀도로부터 금세 탈출해 버린다. 도시 안에서의 빼곡함은 이렇듯 비좁은 장소의 계급성을 지시한다. 좁고 틈 없는 장소일수록 신체와 신체가 서로 부딪히고, 질서가 허물어지고, 너저분한 삶의 파편들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다. 정재호가 시선을 둔 아파트의 파사드는 마스크를 벗겨낸 도시, 누적된 삶들이 터져 나오는 삶의 맨 얼굴이다. ● 『열섬(Heat Island)』으로 칭해진 이번 개인전은 후덥지근한 도시 홍콩에 집적된 삶의 열기를 내비친다. 전시에서의 한 작품이 전시와 동명의 제목을 지닌다. 어느 건물의 뒷면을 그린 그림인데, 녹이 슨 철제 프레임과 에어컨 환기팬이 눅눅하고 후끈한 도시의 공기를 전한다. 홍콩의 건물마다 줄줄이 달린 환기팬은 달궈진 도시의 열을 내부로는 식히고, 외부로 그 열을 방출하는 장치이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이 기계는 뜨거운 공기를 뱉어내며 도시의 후끈한 열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이 '열'과 '섬'이 일으킨 '열섬'은 개별 아파트의 과열된 공간을 은유하면서 동시에 홍콩이라는 도시 전체를 연상시킨다. 흥미롭게도 작가가 부여한 명칭은 아파트의 기원으로 알려진 로마 시대의 한 주택 양식과도 공명한다. 이는 '인술라(insula)'라 불리는 로마의 서민형 공동주택이다. 영문으로는 '섬(island)'이란 뜻으로, 당시 사람들을 대거 수용코자 지은 ㅁ자 주택의 폐쇄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위키피디아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Insula_(Roman_city)) 우연이었을까. 정재호가 "열섬"이라 부르는 이곳의 장소성은 먼 옛날의 시간까지도 거슬러 도시 생존의 역사를 암시한다.

정재호_카프리오 맨션 Carprio Mansion_한지에 아크릴채색_160×130cm_2017

3. 돌출된 파사드의 저항성 ● 비좁은 '열섬'에서의 건물들은 서로 빈틈없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사이에서 개별 건축물의 형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건물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은 파사드 전체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파악된 원근감에 주목하여 전개된다. 건물의 세부적 정보는 촬영한 사진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그리기에서 탐구된다. 화면을 마주한 작가는 사진의 정보를 무턱대고 맹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신체가 있었던 장소감을 바탕으로 사진에서 왜곡된 구도를 바로 잡으며, '거기 있어온 대상'을 최대한 가깝게 살피고자 노력한다. 장소를 파악하는 그의 관점은 우선적으로 돌출된 파사드에 집중된다. 여기서 건물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파사드 구조 위에 덧대어진 무수한 흔적과 사물이다. 패턴 위에서 반복되는 차이들, 개별적인 사물들의 누적은 질서마저도 잠식하는 무질서를 화면에 불러일으킨다. 이 지점에서 그는 아파트의 유형적 형식에서 벗어난 어수선한 장면을 그리기로 옹호해 보인다. 그리기는 질서를 무질서로, 무질서를 질서로 전환하며 파사드에 삶의 생명력을 점차적으로 결집시킨다. ● 이러한 그리기는 작업 초기의 아파트 그림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문화는 불과 몇 십 년 되지 않았으나, 벌써 새로운 디자인과 양식으로 교체되기를 요구받는다. 그러하기에 그가 주목한 옛 아파트는 낡고 방치되거나 쓸쓸하게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그림에서 묘사된 베란다에 쌓인 무질서한 사물이나 상이한 창문의 패턴, 난간의 모양새는 이러한 사라짐에 대한 작가의 저항적 의식이 담긴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관찰되던 이러한 개별적 특성은 홍콩의 아파트에서 더 극적으로, 더 누적된 삶의 장면으로 드러난다. 돌출된 파사드의 구성은 사실 좁은 공간을 확장하고자 한 거주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베란다 위를 샤시로 덮어 공간을 확장한 구조, 창밖으로 줄줄이 나열된 환기팬, 추가적인 난간 형태까지 건물은 더 이상 도면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의 건축 도면은 표면에 얹혀진 삶의 흔적들로부터 무수한 변형을 겪으며 새로운 파사드로 거듭난다. 이렇게 돌출된 입면은 최근의 아파트에서 병적이리만큼 기피하는 요소이다. 사이보그적인 광채로 위장한 건물은 자신의 표면 위로 어떠한 사적 개입이나 흔적도 용인하지 않는다. 베란다가 제거돼 온 근래 아파트 또한 이를 반증한다. 매끈한 표면으로 봉합된 최근의 아파트에 비춰본다면 오래된 파사드는 지저분하고, 보고 싶지 않은 너저분한 요소로 가득하다. 정재호의 그리기는 이 지점에서 더 집요하게 작동한다. 낡은 파사드에 존재하는 사소한 흔적과 미미한 사물을 일일이 그려냄으로써, 구차하다 치부되는 장면을 풍부한 삶의 의미로 전환시켜 보인다.

정재호_폭청 빌딩Ⅱ- Fok Cheong Building Ⅱ_한지에 아크릴채색_178×237cm_2017

4. 그리기의 실천 : 대상을 밝히기 ● 회화라는 시각적 감각이 어디까지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해볼 때, 지금 정재호는 누추하고 허름하며 거부돼 온 대상들을 그리고자 하는 미학적 도전을 감행한다. 이는 그리기의 한계, 리얼리티를 선별하는 미적 굴레에 대한 한 화가의 반성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홍콩의 옛날 아파트는 원래 돌출된 구조에 수많은 것들이 더 끼어진 형태이다. 에어컨, 전선, 빨래까지도 계속 중첩되면서 안으로 숨기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는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정재호 인터뷰, 2017년 6월 11일, 작가 작업실에서) 대상을 향한 작가의 고백에서는 아파트의 돌출된 형태를 탐닉하는 애정 어린 시선이 담긴다. 파사드 위로 덧붙여진 철제 구조, 기계 부품, 환기팬, 전선, 파이프, 커튼, 심지어는 빨래와 속옷까지 상세히 그리며 그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거기 있는 대상의 현존'이다. 이와 더불어 미세한 빛의 산포가 닿는 창문 너머의 공간, 시간을 암시하는 뜻밖의 그림자는 그의 신체가 현전했던 시간에 대한 깊은 회화적 연구로 탐구된다. 그림에서 파사드는 무수한 개별적 삶과 이것들이 이루는 삶의 총체를 보듬는 또 하나의 장소가 된다. ● 분명 정재호의 그리기는 옛 건물이 환기하는 노스텔지어적 감흥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허물어져 가는 현실에 대한 애잔함보다는 '삶의 존재함'을 집요한 그리기로 증명해 보인다. 이는 그가 동양화가로서 스스로 질문해온 존재론적 질문과 맞물린다. "화가는 장지의 섬유질 속으로 끝없이 스며들어 가는 대상을 붙잡기 위해 수십 번의 붓질을 반복한다. 하지만 완성된 그림의 표면에서 물감은 발견되지 않는다. 물감이 사라진 표면은 엄밀히 말해 여전히 '종이'이다."(정재호의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발췌, 2017년 1월 26일) 그가 감동받았던 어느 유화 작품을 곱씹으며 깨달은 것은,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동양화의 존재이다. "물질성의 죽음을 재현하는 형식"이라 그가 부연한 깨달음은 그리기로 회화의 형식을 극복해야만 하는 자신의 숙명적 상황을 고찰한다. 화면에 들어앉은 유령과의 지루한 싸움 끝에 그가 이번 작업에서 취한 태도는 대상을 최대한 정성 어린 모습으로 화면에 '거주시키는' 것이다. 한 작업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가령 걸리는 노동집약적 그리기로부터 건물에 있던 얼룩, 먼지, 녹, 습기, 눅눅함, 건조함, 물기, 그림자, 빛, 어둠이 종이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세필을 들고 손의 중력을 조절하며 숨죽인 화가의 시간은 비물질적 대상까지도 종이에 차츰 거주시켜 나간다.

5. 장소를 회복하려는 그리기 ● 정보와 속도의 사회인 오늘날 장소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신체가 없어도 가능한 일이다. "근대의 이동하기 쉬운 개인이 겪는 촉각의 위기"(리차드 세넷,『살과 돌』, 임동근 외 옮김, 문화과학사, 1999 참조.)에 대해 언급한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이동으로 인해 신체적 감각이 무뎌지는 현대인을 경고한 바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정재호의 그림은 거기 있던 대상을 일일이 화면으로 호명하는 방식으로 누적된 장소를 눈앞에 드러낸다. 글의 도입부에서 내가 의구심 어리게 질문한 그의 '강박적 그리기'는 이렇듯 장소성을 둘러싼 시대적 논의로부터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사물들을 과도하게 드러냄으로써 장소를 화면에 담아내는 그의 그리기에는 "장소 없음", "장소 상실"의 시대에 대한 우려가 담긴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의 디테일은 눈앞에 드러남으로써 '거기 있는 장소'를 이곳으로 생생히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정재호의 그리기는 아파트라는 건조한 건축형태를 삶의 장소로 전환해 보이며, 무엇보다도 장소를 다시 세심히 관찰할 것을 권고한다. ● 정재호는 홍콩의 한 아파트('폭청 빌딩')에 들어선 순간에 대해, "협곡 속에 들어간 느낌"이라 표현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은 신체적 현존을 '광활한 자연 속 인간' 마냥 건축 공간 안에 응축한다. 각박한 현대건축에 익숙해진 신체가 사물들이 돌출된 세계에 도달했을 때, 그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해진 대도시 속 신체를 체감했을 것이다. 그가 느낀 공간에서의 비현실적 감흥은 도시에서 누적돼 온 인간의 자연성, 일종의 원시성과 맞닿는다. 이쯤에서 유형학적으로 부여된 아파트의 특권적 의미는 개별적 대상이 집적된 무시무시한 발화(파롤)로부터 붕괴된다. 이를 실천하는 그의 '강박적 그리기'는 도시가 집단적으로 배열, 패턴, 규정하려는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삶의 저항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리기로서 도달한 장소의 저항적 힘은 『아버지의 날』에서 드러난 폐허로서의 근대성, 유령과 같은 기념비에 맞서는 생명력을 지닌다. 작가는 장소 상실을 앓고 있는 동시대인의 시선을 그림의 파사드로, 존재하고 있는 장소로 이끌면서 망각에 꿋꿋이 저항하고자 한다. 이는 상실의 시대가 압도한 현실에 맞서, 인간이 누적해 온 '공동의 감각'을 회복하고자 한 화가의 간절한 열망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의 그리기는 이토록 지독하게 '동시대성'을 발언해 보인다. ■ 심소미

Vol.20170616c | 정재호展 / JUNGJAEHO / 鄭載頀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