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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608_목요일_06:00pm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주최 / (재)송은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요일_12:00pm~05:00pm / 일요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421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혼재된 어떤 흔적들 너머 ● "폐가 앞이나 오름 중턱, 양양에서 동해로 가는 길목 등에서 마주했던, 그 순간은 곧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그 시간과 감각은 과거의 내가 느꼈던 어떠한 냄새와 색감, 기분을 상기시켰다. 그때의 시공간은 먼 과거의 막연한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회상과는 다른 의미로, 환기의 과정으로써 회화의 언어로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박명미, 아무도 아닌 그림 중)
작가노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박명미 작가는 곧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존재에 관심이 있다. 더불어 그녀는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존재를 만났을 때의 감각, 느낌, 기억과 조응한다. 물론 이 총체적 감(sense)은 명료한 지각으로 연결되지 않기에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도 정의내리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 과거, 현재의 어떤 공통된 감이 작동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즉 숱한 일상 중에 공통적인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어떤 사건/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소한 일상의 사건이나 풍경이기도 하지만, 용산 강제 철거 사건, 세월호, 제주 4.3사건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박명미의 그림이 어떤 특정한 사건을 재현하거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보다시피 박명미의 그림에는 주로 흑백에 가까운 무채색 계열의 희미한 이미지들이 떨림 속에 놓여 있다. 맥락을 알지 못하면 정확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어떤 산, 어떤 언덕, 어떤 집, 어떤 사람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가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풍경/존재 뒤에 숨겨진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작가와의 대화에서 '파란 집(또는 폐가)과 용산 강제 철거의 희생자', '다랑쉬 오름(또는 폐가)과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를 연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폭력적 상황(국가적 폭력이든 개인적 폭력이든)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라 말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작가의 기억과 외부 정보, 그리고 그것을 상상하도록 해준 흔적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결국 그녀의 그림은 기억/정서가 담긴 어떤 혼재된 흔적들이 이미지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아닌 그림'으로 통칭되는 풍경 시리즈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로 이러한 혼재 상황을 설명해준다. 어떤 파란 집이 불타는 것(이 파란집은 2009년 서울 용산에서 발생한 화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을 상징한다. 당시 철거민들은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했는데, 이 망루가 파란색이었고 화재로 모두 망실되었다.)을 본 이후 그림을 그려야할 대상을 찾지 못했던 그녀는 제주에 머물던 어느 날 빈집을 발견한다. 그곳에서의 생경한 인상을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남기고 이를 곧바로 소묘로 옮긴다. 몇 달이 흐른 뒤 어느 죽은 화가의 버려진 화판을 구하게 되고 이 흔적을 바탕으로 「폐가2」(2013)를 그린다. 그리고 몇 년 뒤 다시 소묘로 「폐가3」(2014~2015)과 「폐가4」(2014~2015)를 제작한다. 현실에서 그 당시와 유사한 상황, 느낌, 감각이 생겨날 때마다 조금씩 중첩시켜 완성한 그림은 그래서 몇 년 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두운 밤 풍경 속 폐가에는 애초에 없었던 눈이 내리기도 하고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풀과 물이 살포시 자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의 몽환적 이질감은 이처럼 세월이 덧입혀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느껴지는 조화로움은 다양한 시차 속에서도 유지되는 유사한 정서의 반영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작품이 있다면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1, 2」(2017)이다. 남녀 한 쌍의 초상화가 등을 지고 공중에 설치된 이 작품 역시 앞서 제작된 몇몇 작품처럼 다른 누군가가 쓰다 버린 화판에 그린 그림이다. 버려진 화판에 '내가 여기 있소'라는 익명의 작은 목소리가 담겨 있는 이 그림은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대한 작가의 헌사로 읽힌다.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는 사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의 주인공 미자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사랑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는 미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으며 가족을 맹목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이 상황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1, 2」(2017)에 등장하는 두 인물 역시 해피엔딩의 모습은 아니다. 체념한 것 같으면서 무심하고 그러면서도 초연한 두 인물은 보잘 것 없는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존재의 가치를 사유하는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문제의식은 생기기 마련이고, 이 문제의식 속에서 작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새롭게 구축된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야하고, 그 과정에서 관람객과 소통도 해야 하고, 이런 고민 속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의심하면서도 계속 작업을 하는, 그리고 전시를 열고... 결국 아무도 아닌 그림을 그리면서 완결될 수 없는 (되찾는) 시간을 쫓고 있는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이 답답한 상황. (박명미 작가의 작업은 전형적인 회화이지만 작업의 경향은 매우 개념적이고 시적이다. 이번 전시 『아무도 아닌 그림, 되찾는 시간』에도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통은 '아무 것도 아닌 그림'이라고 쓸 말을 '아무도 아닌 그림'이라 명명한다. 즉 그림 자체를 하나의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한 의인화가 아니라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 사람에 대한 기억과 정서이기 때문이다. '되찾는 시간' 또한 절묘하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섹션인 「되찾은 시간」에서 따온 제목인데 완결형인 '되찾은'이 아닌 미완결 진행형인 '되찾는'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종지부라도 찍고 싶었을까. 그녀는 제주로 향한다. 몇 년 전 제주에서 마주했던 폐가와 다랑쉬 오름을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되찾는 시간 2, 3」(2017)에서는 과거의 그림과 지금의 현장이 만난다. 시간을 되찾으려는 작가는 외려 사라져 버린 시간과 장소를 그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작가의 기억과 정서로 담아낸 빈집과 다랑쉬 오름이 현재의 장소에 왜소하게 비치되어, 보잘 것 없음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음'이란 말은 박명미 작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은 사실 그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속성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치를 제거함으로써 생겨난 인식론적 속성이다. 애초에 보잘 것 없다고 규정하지 않는 한 그것은 보잘 것 없지 않다. 그렇다고 중요한 어떤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자체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중요하게 취급받는 것들과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는 것.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것에 가치가 부여되길 바라는 것. 이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박명미의 회화는 최초의 사진으로 알려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의 「그라의 창문에서 바라본 조망」(1826-7)처럼 대상의 흔적을 오랜 시간 채집할 뿐이다. 즉 존재/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일정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것의 물리적 흔적을 묵묵히 포착한다. 상황, 정서, 감각, 기억 등이 혼재된 채로 이루어진 작업이지만 결과물은 대상의 적극적인 재현이 아닌 존재의 흔적을 조심스레 가져오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에는 딱히 많은 말을 보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흔적 너머의 존재가 한순간 일어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주저리 떠든 위의 말들이 감상을 방해하지 않을까 새삼 걱정스럽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녀의 그림이 이 글을 무색하게 만들기를. ■ 김재환
Vol.20170608c | 박명미展 / PARKMYUNGMI / 朴明美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