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nesie. 망각

서희수展 / SUHHEESU / 徐嬉守 / ceramics   2017_0607 ▶ 2017_0621

서희수_vessel_자기_40×20×20cm_2017

초대일시 / 2017_060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통인화랑 TONGI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2(관훈동 16번지) 통인빌딩 Tel. +82.(0)2.733.4867 tonginstore.com

순간을 포집하는 흙의 드로잉 ● 서희수의 작업은 허공과 벽 위에 그린 일종의 드로잉이다. 그것은 흙 조각이기도 하고 공간을 배경삼아 그린 날렵한 필선이기도 하다. 작가는 홑겹 붕대를 흙물에 담가 겹치기를 여러 번하여 선(線)의 두께와 폭을 조절한다. 길게 풀어 잘라도 보고 묶어도 보고 서로 겹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재미있고 흥미로운 상을 발견한다. 그 때 작가는 순간 자신의 행위를 멈추고 형상을 채집한 후 불로 굽는다. 이것은 애초에 어떤 상을 만들겠다고 머릿속에 계획되어 있는 과정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놀 듯이 이리 저리 다루면서 물질 자체가 무엇이 되는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이 불현듯 어떤 표정, 모습을 띌 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할 수 있는 작가의 안목과 재기 그리고 순발력에 크게 의지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흙만으로는 그토록 유연한 선을 도출하고 불에 견디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흙물이 유연하고 흡수성이 강한 그리고 종당 불에 타버릴 붕대의 성질에 기댈 때만 가능하다. 그것은 흙이 자신의 뻣뻣함을 내려놓고 붕대의 결과 마디 깊숙이 침투하여 빠짐없이 적시고 그와 온전히 한 몸이 될 때만 도출 가능한 형상이다. 즉, 흙이 지닌 가소성의 한계를 타 재료에 의탁해 뛰어넘고 불을 이용해 형태를 영구히 고정시키는 것이야말로 서희수 작업의 기본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희수_vessel_자기_40×20×20cm_2017
서희수_vessel_자기_40×20×00cm_2017

수년전 작가의 작업에서 처음 등장한 붕대는 상처와 치유의 상징이자 자신의 삶 속에서 대면했던 친밀한 죽음들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소환하는 매개체였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이 점차 물성탐구, 독창적인 자신만의 형태와 색을 도출하는 방향으로 옮겨 가면서 붕대가 지니고 있던 예전의 알레고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붕대는 이제 흙의 가소성을 높이고 새로운 형태를 도출하는 심지이자 축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붕대를 단순히 흡수체로 사용하지 않고 천의 속성을 한껏 살려 독특한 형태를 도출한다. 반복적 행위로 얻은 비슷비슷한 형태인 가 싶지만, 작가가 각 개체마다 지닌 미묘한 곡선, 길이, 색, 꼬임, 배치의 차이와 다름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규칙성과 변주, 그리고 율동성이 창출된다. 그러나 도자예술에서 성형은 끝이 아니다. 고온소성 중 고운 흙물을 지탱하던 붕대더미가 소멸하면서 형태가 주저앉거나 녹아내려 의도치 않게 새로운 형태와 관계성이 형성된다. 안료를 흙물에 섞어 만든 다양한 색의 명도와 채도역시 소성 전후로 미묘하게 변화한다. 결국 소성이라는 변수와 우연에 따라 최종 이미지가 결정되고 작가는 그것을 단일 혹은 군집으로 재구성하여 화면을 완성한다.

서희수_untitled_자기_70×90×5cm_2017
서희수_untitled_자기_70×90×5cm_2017
서희수_untitled_자기_70×90×5cm_2017

캔버스 위에는 가늘게 그리고 유려하게 공간을 종횡으로 가로 지르는 선들이 움찍거린다. 얇은 선이 팽그르르하게 돌아 눕는가 싶더니 어느새 널찍하고 거친 면(面)으로 둔갑하는 변주와 운동성이 흥미롭다. 이들은 시공간이라는 삼차원 매트릭스 속에 놓이고 빛 그리고 움직이는 관람자의 동선과 맞물리면서 독특한 일루전을 만들어낸다. 서희수가 만든 색띠들은 전통적인 구상조각의 틀을 빠져나가지만 공간에 서식하며 미묘한 관계를 맺는 조각물로서 자존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형상은 평면 위에 이미지가 주는 흥미와 환영을 동시에 취득하고 있다. 전시공간에는 이러한 다양한 실험의 궤적들이 나열된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영감과 계획에 의한 연계적 증가양식이 아닌 반복과 채집을 통해 기계적으로 재생산된 시리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어떤 구성과 행위의 반복이 하나의 시각으로부터 다음 단계로 진보하는 사고의 운동력을 견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평면 그리고 작가가 가장 기본적 입체물로 인식하고 있는 기(器)에서도 이루어진다. 즉, 스스로 정한 평면과 입체 그리고 모노톤이라는 공간과 색이라는 한정과 범위 안에서 자신이 흙과 불로 도출 가능한 재료의 물성, 형태, 색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도전하는 일이 이번 전시의 과제라 할 것이다.

서희수_untitled_자기_70×90×5cm_2017
서희수_untitled_자기_70×90×5cm_2017

따라서 서희수의 작업을 도자작업을 회화적으로 확장하려는 행위 혹은 조각적 행위의 변모 그 양단간의 무엇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흙물 머금은 붕대의 끈을 무수히 묶고 헝클어뜨림을 반복하는 일련의 제작과정 속에서 내 머리와 마음속에 부정확하게 떠오르는 것들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채집하여 조형적 산물로 나타내는 것은 애초 작가가 회화 혹은 조각의 어떤 근본을 묻고 목표를 성취하게 위해 했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가 이런 무모하고 곤혹스런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대변한다고 믿는 물질과 작업행위를 통해 자신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시시각각 돌출하는 애매모호한 것, 사라지는 것, 흐릿한 것들을 확인하고 명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것은 모든 미술이 오랫동안 구체적 물질을 동원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형상화해온 궁극의 이유이기도 하다. 순간 사라지는 찰나의 것들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형상으로 오랫동안 남기려는 그 일말이다. ■ 홍지수

서희수_untitled_자기_140×110×10cm_2017

'암네시 'Amnesie''회상' '불가능한' 혹은 '망각' 나의 작품의 주제는 무의식적 불안감과 또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그 여정의 시작으로 연속적 패러다임이다. ● '망각'은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이나 충격적인 과거의 일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뇌의 깊은 곳으로 이동 시켜서 거의 망각의 수준까지 도달 되어지는 인간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로 인한 망각으로 자기 방어차원에서 점차 잊히고 정상의 삶을 묵묵히 살아나간다.인간의 망각은 잠재의식 속으로 깊숙이 간직 돼어진채 어렴풋이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아예 잊혀서 없었던 일과 같이 되는 것이 있다.인간이 진화해오는 단계에서 모든 것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생명체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살아남기 힘들어하는 생명체 보다는 망각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생명체의 우월함에 의해 인간에게 현재 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의 망각과 잊히는 것들에 대한 회상은 두 가지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언제나 망각은 회상을 동반한다고 말한다. ● 나의 작업은 회상과 망각을 보다 실감 있게 시각화하기 위해 붕대의 띠들을 작업하며 나열하는 동안 그 공간설치안에서 회상과 망각을 만나게 된다. 작업과정을 통해 지각의 혼란과 자아정체성을 뒤흔드는 동시에 무의식적이고 저돌적이며 아주 전형적인 선들을 사용하며 자각을 불러 일으켜준다. 작품 안에서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붕대의 혼동스럽고 예측 없는 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만의 회상과 정체성으로부터 오는 망각과 함께 몰입을 통한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당연히 잊혀지는 것과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안에서 그 피타고라스와 같은 연속선들은 회상과 망각의 반복 안에서 드러냄과 숨김의 미니멀한 선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인간의 본질을 깊이 생각해 본다. ■ 서희수

Vol.20170607a | 서희수展 / SUHHEESU / 徐嬉守 / ceramics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