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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601_목요일_06:00pm
개막공연 / 연영석 「게으른 피」
네오룩 이미지올로기연구소 기획 민주항쟁 30주년展
● 이 전시는 역사적 사건이 갖는 서사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2007년 『민주항쟁 20주년』최민화展에서 50개의 이미지를 호출하여 점철된 장면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책임기획 / 최금수 기획협력 / 강성원_이섭_김진하_이경란_문영미 문승영_강수경_김성환_정찬일_연영석_이준희 노형석_이정아_김기원_권태용_윤상권_김유경 후원,협찬 / 이한열 기념관_대안공간 루프_디자인그룹 낮잠_넥스트 프린트 주최,주관 / 네오룩 이미지올로기연구소
관람시간 / 10:00am~07:00pm
대안공간 루프 ALTERNATIVE SPACE LOOP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나길 20(서교동 335-11번지) Tel. +82.(0)2.3141.1377 www.altspaceloop.com
예술가의 현재와 역사-6·10민주항쟁에 대한 30주년의 기억 ● 이 글은 예술과 역사 그리고 6·10민주항쟁에 대한 일반화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최민화의 그림에 대한 진술이 이 글의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글은 최민화가 6·10민주항쟁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기획했던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에 한정하여 서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기억하는 민주항쟁의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견지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그 날"은 최민화의 그림에서 다루고 있는 '그려져서 기억되고 있는 그 날'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최민화의 그림이 한창 분홍으로 세상을 덮고 있을 때, 민주항쟁의 수많은 날 중 "그 날"을 불러내던 시절의 그림들로 지금 우리가 6·10민주항쟁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가 분홍을 통해 세상을 바라 본 이유에 대해 아직 충분히 해명된 바 없지만, 언뜻 얕은 지식으로 말해 보자면, 분홍은 "색"(色)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분홍은 빨강과 하양 그 사이 중 어느 정도에 자리를 잡는다. 분홍이 색이 아니라는 단정은 우스꽝스러운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분홍의 진정성은 어느 정도에 걸쳐 있다는 것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빨강은 어느 정도에서 그 빨강의 빨강다움을 잃는다. 하양은 아예 색이 아니며, 그저 밝음의 순도 높은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하양 또한 어느 정도에서는 이미 하양이 아니지 않은가. 그저 분홍만이 어느 정도에서 제 위치를 가진다. 그러 시절을 화가는 화가의 눈으로 그냥 알아버렸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시절을 '어느 정도에서 적당하게게' 드러난 세상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최소한 우리가 그의 작품과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야 하는 6·10은 최민화의 이런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그 날"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세 가지 형식적 특징을 가지면서 비로소 그의 그림이 된다. 하나는 빠른 필치다. 붓을 그리는 도구로 확실하게 그는 사용한다. 붓을 이용해 물감을 떠 붙이는 방식과 이점에서 그의 붓질이 구별 된다. 그의 붓질은 빠르다. 결국 그가 그리고자 하는 형태는 단순한 모양을 화면 안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그가 굳이 빠르게 그리고자 하는 이유는, 비록 유사한 밑그림과 스케치가 이미 많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모양새를 옮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의 머리와 가슴 속에 있는 형상(形象)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니 감상자로서 우리는 그림 한 장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모양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형상이란 사실 여기에 없고 저기에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여기에 없다는 것은 현상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나 있어 시각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을 확실하게 알려준다. 가령 "민주화의 열망"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민주", "평화", "사랑" 등은 눈에 보일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화가는 그것을 결단코 그리려 하는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최민화의 그림은 그런 회화사 전체에 맞서 있다. 그런 마주 서 있음은 화가에게 회화사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번째 특징은 그가 단색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단일한 그림의 분위기를 색으로 조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런 그림의 색조에 상이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나는 모노-톤(mono-ton)이라는 외래어를 빌려 단색이 갖는 색감의 차이들로 구성된 색면으로 회화를 바라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민화의 그림에는 이런 관점으로 어떤 것도 해명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단색조의 이해 방식은 적절한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해석방식은 분위기를 굳이 하나의 색감으로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일이다. 분위기란 어떤 것을 대상으로 부르면서 그 대상과 마주하고 있는 부른 이, 즉 대상을 대상화한 사람과 대상이 되어버린 '그 것'의 사이의 관계 전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자 할 때 드러나는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 분위기를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긴다면 우리는 대상을 대상화할 수조차 없다. 최민화는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가장 치열했던 민주항쟁의 시대를 분홍-그저 어느 정도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색(色)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색(色)은 세상만물의 실존함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분홍색을 풀어보자면 치열한 삶으로 버티고, 악과 마주 싸운 그 시대를 폄하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를 떠 올린 것은 아니다.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은 물상(物狀)이 그의 눈에 결코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가장 근본적인 악은 바로 제 자리를 이탈해 있으면서, 남의 자리를 힘으로 강제하거나 강탈하면서 그것이 마치 자연의 섭리인 양 까불어 제끼던 인간적 무례(無禮)였다. 그런 무레는 세상을 뒤죽박죽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쳐 온통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대강 그저 그렇게 있는 거야 하면서 아무런 일도 아닌 듯 살아간다. 그게 악이고 화를 내게 한다. 그렇게 화가는 한 시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회화적 형식이 갖는 세 번째 특징은 순간(瞬間)으로 사태를 바꾸어 보여 주는 최민화식 시점해석에서 갖추어진다. 그의 그림을 설핏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인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가진 공력은 이야기를 압축하여 일상화된 삶의 한 순간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그림 안에는 모순을 드러내고 사건이 겹쳐져 있으며 일탈적 상상이 스쳐 지나가는 세세함이 가득하여 결코 사진술이 보여줄 수 없는 회화적 공간을 완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그의 그림이 가지는 형식 때문에 자칫 그림 안에서 만화적 공간을 볼 수도 있다. 그의 상상력이 압축하고 있는 사건들의 중첩성 때문에 그의 그림에서는 상반된 이야기의 플롯이 엉킨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조작(操作)은 회화를 회화답게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성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결코 시대의 이야기를 조작(造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이 역사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회화는 철저하게 회화로서 회화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모든 회화의 기술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중에 그의 시간에 대한 해석이 가장 돋보이는 회화술로 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 이유는 바로 시점해석(時點解釋)에서 찾을 수 있다. 대개 역사적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경우 그 이야기를 중요하게 작품으로 해석한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역사에 대한 예술적 행위의 정당성으로 간주한다. 사실을 사실로서 기억하게 옮기는 작업의 태도를 우리는 이런 전통적 역사화의 이해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큐멘타리 관점에서 직접적 현장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진, 영상술의 발달에 따라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개입하는 회화의 자리는 위태롭게 되었다. 그런데 최민화는 이를 시점해석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물론 그는 이런 비판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시점해석이란 최민화의 그림을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글쓴이가 만들어 낸 조어(造語)다. 이 용어로서 최민화의 그림을 해석하는데 있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그의 그림을 우리가 어떻게 역사화로 정립하여 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함께 다룬다. 우선 시점해석이란 말로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대개 역사적 사실, 또는 사실 관계에 매달릴 때, 놓치는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자기 해석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요즈음 우리는 이를 강조하기 위해 영어단어를 즐겨 쓰는데 "Fact"를 체크(check)하고 싶어 한다. (어쭙잖은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이 낱말을 금과옥조로 여기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에서 결코 나에게 같은 질(質)로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시간에 대한 지금, 여기의 해석일 수밖에 없는 사태 전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먼저 말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로서 알 수 없는 어떤 한계를 시간 안에서 먼저 확인할 할 수밖에 없는 하찮은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적 상상력이다. 예술은 기만을 성취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래서 상상력의 힘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그것을 근본으로 삼아 시간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최민화의 그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해석하면서 그림으로 그려 밖으로 내 보여주는 그의 역사이해라 할 수 있다. 그림에서는 그 시대 흔한 거리 풍광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인과관계나 기승전결의 스토리 라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지금, 여기(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지금과 여기)에서 화자(話者)이자 관찰자인 그림 그리는 이로서 최민화가 자신의 시간에 따라 해석된 내용을 담아내려고 한다.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사실관계를 따져 물어 훼손이 가장 적은 상태의 기록을 내려 받아 정리-보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기록"이라고 한다. 진술함에 있어 가능한 참된 진술을 바탕으로 남기려 하는 태도가 '기록으로서 역사'를 간직하게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요청되면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과 관계를 맺음으로 있는 지금 나의 삶'으로서 역사가 있다. 이런 역사는 늘 "지금"마다 각자의 삶에서부터만 해명될 수 있다. 최민화는 1987년의 그 6·10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렇게 읽어야 할 역사로 본 것이다.
최민화의 그림을 형식 분석에서 벗어나 달리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할 것은 바로 "그림 그 자체로서 그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상적 사태에서 필요한 관점이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하나는 왜 최민화는 전통적인 회화술에 충실하고자 하는가하는 화가로서 그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두 번째 물음은 그가 왜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 하는 가하는 세상살이에 대한 그의 입장에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최민화를 그가 허락한 일상성 안에서 오해하면서 그를 만나고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그 관계를 즐긴다. 하지만 사실 그 관계 안에서 그의 역할은 처음부터 줄곧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과 자신의 회화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회화로부터 세상과 단절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있다. 그것도 매일 그렇다. 그의 그림은 아예 대 놓고 그런 화가의 입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에 이 문제를 물음의 형식으로 묻고자 한다.
우선 그는 왜 스스로를 세상과 유리시켜 고립되기를 바라는지 물어보자. 세상의 정치행태에 대한 일침과 소견들이 멀쩡하다 못해 가장 현실적인 태도까지 그는 일상적 만남에서 말하기 좋아 한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방법론으로 혁명을 논하기도 한다. 그의 그런 현실적 감각들로 보이는 말의 내용을 간추리면 바로 그림에서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한 개인의 낭만적 완성과 밀접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는 인간을 믿는다. 그는 숭고를 향하고 있고 스스로 고양될 수 있으며 결국 초인이 되거나 절대정신을 실행하는 그런 인간을 신뢰한다. 자신을 그런 인간상(人間相)에 맞추어 현실에서 끝날 수 없는 고뇌에 자처해서 빠져든다. 그는 애초부터 그런 결핍의 공간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린 채 버려져 있었다. 거기서 그는 자족하지 않는다. 자족했다면, 세상을 주유(周遊)하는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버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주변에서 그를 이런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불어 시간을 탕진'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자신의 회화에서 더 많은 생명의 위로를 얻는 사람이기에 마냥 세상을 떠돌 수는 없다. 그것은 최민화에게 길이 아니며, 성취의 목적이 아니다. 그는 달성할 수 없는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혁명을 품으려 애쓴다. 그의 일상은 사실 이런 애쓰고 매달리는 일과로 가득하다. 그의 그림은 그런 자신의 매달려 살고 있는 그 일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그림에서는 그래서 일상적 사건이 다루어지지 않는 비현실적 공간이 흔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흔하디흔한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자존감 넘치는 그러면서 동시에 실패한 혁명가의 모습과도 겹쳐 있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상(像)이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술에 대해 아직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림쟁이다. 그림은 무엇일까? 이 물음은 잘 못된 출발점을 가진다. 그림은 인식 안에서 드러나고 이해되는 것, 그런 형식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장치로서 역할을 가진다. 여기서 장치(裝置)란 갖추어 가짐에 따르는 기계나 기능적 도구를 먼저 말한다. 삶에서 의미를 일깨우고 셈할 수 없는 가치를 알려주는 기능적 도구는 예술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최민화가 그림 그 자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우리는 이렇게 "갖추어 가짐"의 문제와 "그것의 수행에 있어 기능적 도구로서 예술작품-그림"을 구별하여 따지고 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림은 어떤 것을 수행하기 위한 기능적 도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능성은 작동의 수월함을 통해 입증되고 이해된다. 그림은 세상살이의 물질적 세계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싼 가격으로서 그림은 더구나 물질세계에서 도구로서 기능을 상실해 있다. 그러므로 그림의 도구적 기능이란 바라봄의 대상으로서만 작동한다. 무엇을 바라봄은 그것에 관심 없이 바라봄과 오로지 그 관심으로부터 바라봄이 성립되는 두 개의 극(極)을 이루며 그림을 그림으로 있게 만든다. 거의 모든 화가-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구체적인 관심으로부터 자신의 그림이 관심의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세상살이의 욕망구조와 닮아 있다. 유명작가여서 그 그림이 관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나, 바라봄의 작동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 본령에서 한 참 벗어난 이야기꺼리일 뿐이다. 대개의 욕망과 닮았다는 판단은 관심이 무엇을 향하게 한다는 우리의 잘 못된 인식태도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그런 욕망 구조 안에서 우리는 차이가 아닌 차별을 만들어내고, 참다운 앎을 나 자신에게서 구하지 않은 채 잡다(雜多)의 양적 확보에 의지하여 오판한다. 그러므로 참다운 바라봄은 무차별적이고 무관심적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림은 바라봄의 작동이라는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도구로서 우리 삶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다. 최민화의 그림을 두고 도구적 기능을 따져 물어 볼 때 우리는 그림으로서 '그 자체'라는 방향을 잃어버린 적이 없으나 아직 그 지경 안으로 들어가 있다고 말하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히 해명된다. 그는 무차별적이고 무관심적이어야 하는 바라봄의 가장 근본적인 자신의 그림에 대해 아직 그림으로 충분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그의 그림은 "갖추어 가짐"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작가들과 쉽게 구별이 된다. "갖추어 가짐"이란 모양이 모양새를 잡는 것이다. '~새'란 우리말에서 '무엇의 무엇 됨이 가져야 할 됨됨이'를 가리킨다. 그의 그림은 최민화류의 됨됨이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개성이 있다고 쉽게 말하기도 한다. '됨됨이'는 동시에 다른 덕목을 가리키는데, 간직할 것을 간직하는 태도의 문제가 그것이다. 각고(刻苦)와 인내(忍耐)는 괴로움에 대한 태도를 알려 준다.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면서 잃어버리거나, 지지 않는 태도가 바로 됨됨이다. 이 됨됨이로부터 인간이 인간다움을 간직할 수 있고, 공동체가 공도에가 비로소 될 수 있다. 최민화의 그림은 그의 그림이 그림으로 있기 위해 됨됨이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훈련된 작화법이나 세련된 그림도구의 선택과 활용을 통해 그런 재주를 내 보이지 않고 자신의 그림이 그림으로 될 수 있는 무수한 선택들을 하고 있는 행위가 그림으로 남겨져 보인다는 점에서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때로 인문적 깊이를 떠올리며 바라 볼 수 있고, 그런 갖춤에 대해 화제(話題)를 찾아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최민화가 다루고자 하는 6·10 항쟁의 역사성은 갖추고자 하는 됨됨이의 가짐을 개개인에게 물어 봄으로서 정리되고 있다. 그는 분명 그 날을 소재로 삼아 작업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이제 우리에게는 역사를 어떻게 바라 볼 것인지 물어 보게 하는 사유의 시발점으로 역할을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림이다. 그런 그림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맥락들은 수면 위로 오를 때 그림의 역사를 시대의 역사와 관계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품는다. 삶을 품지 않는 예술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기능이 필요할 때 인간에 의해 부름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예술은 도구이면서 그 부름에 앞서 인간에게 기능적 도구로서 제 자리를 다시 알려 준다. 왜 망치가 아니라 망치가 그려진 그림인지, 왜 광장에서 외침이 아니라 그것을 간직하고 여운을 만들면서 예술가가 울고 있는지. 최민화는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은 됨됨이와 기능적 도구에서 바라봄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간직한 채, 아직 우리에게 명료하게 말하지 않은 채, 최민화를 세상과 고립시키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에게 세상은 세계에 있지 않다. 그의 세계는 그의 그림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매일 다시 태어난다. ■ 이섭
Vol.20170602a | 최민화展 / CHOIMINHWA / 崔民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