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527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갤러리 175 Gallery 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note1, 그날 아침, 외출 준비를 하다 TV 앞에 멈추어 섰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뒤집힌 배는 도통 떠오를 줄을 몰랐고 거대했던 배는 시시각각 작아져 이내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처참한 화면이 반복해서 송출되고 국가의 완벽한 무능함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나는 그저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이대로 화면 앞을 떠나도 괜찮은가. 그런데 당최 화면 앞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무력한 자신을 탓할 뿐, 분노는 허망함으로 흩어졌다
note2, 같은 해 여름에는 싱크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이 시커먼 구멍들은 마치 어떤 부재의 덩어리들 같아 보였는데, 어쩌면 우리가 이 구멍들로부터 부재를 연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어느새 육중한 부재하는 것들이 우리들의 일상에 자리 잡은 것이다. 진실은 사라졌고 소문만 무성하다. 국가가 재난에 대해 무능하거나 무책임할 때, 원인불명의 모든 재난들은 부주의한 아무개의 불운한 개인사로 전락한다. 국가는 국민들에게 서둘러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가 돌아가야 할 일상은 이미 재난이 되었다.
note3, 경찰은 매번 광장을 에워쌌다. 광장은 닫힌 공간이 되었고 안과 밖이 생겼고 경계가 생겼다. 경계의 안과 밖은 서로 다른 공동체가 되었고 연대란 불가능해 보였다. 광장으로 향하는 무리와 퇴근하며 툴툴대는 무리는 마주 걸어 서로를 책망하며 지나쳐 갔다. 두 무리로 갈라진 걸음들 사이에서 엄청난 시차가 발생한다. 광장의 안과 밖은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다만 그들이 남들보다 조금 더 불행했던 것뿐일까. 혹은 무능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그들의 삶은 원래부터 그러기로 했던 걸까. 광장 위 막다른 곳에서 벽을 두드리는 얇은 손들이 나풀거린다. ● 사회 주변부를 배회하던 아무개들의 사연은 광장 위에서 법과 정치적 맥락과 뒤섞여 등장한다. 얼음장처럼 매끈하고 평평한 광장 위에서 그들은 비로소 연약한 물리적 실체를 획득하고 출현한다. 이곳은 일종의 무대, 무명의 등장인물들만 존재하는 그런 무대다. 무대 밖 현실은 일상을 연기하지만, 무대 위 아무개들은 그들의 현실을 설토한다. 하지만 무대 위는 지나치게 밝고, 매서운 불빛은 몸을 관통해 지나간다. 유령인가. 왜 아무도 아무개를 보지 못하나.
note4, 자그마치 삼백네 명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수장당했는데 국가는 닫힌 광장 위에서 물로 사람을 죽였다. 간밤에 백색 조명 아래 희뿌연 게거품을 만들어내며 광장 위로 내리꽂히던 물줄기는 오늘 낮, 분수가 되어 매끈한 광장의 바닥에서 솟아올라 햇볕 아래 하얗게 부서진다. 현실이 일상을 연기한다.
나는 광장을 만들 것이다. 이곳은 닫힌 광장, 무명의 등장인물들 마저 보이지 않는 서늘한 광장이다. 광장에는 분수가 놓일 것이다. 제각기 다른 박자로 물을 뱉어내는 이 분수들은 상식적 작동 방식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광장의 배회하는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만든 작품들이 놓인다. 바퀴가 달린 이것들은 밝은 빛을 발산하며 유령처럼 공간을 서성이는 듯하다. 만조에 갇힌 광장 위에 백색 빛이 내리꽂힌다. 빛은 공간을 비추지만, 딱히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치게 밝은 빛으로 시야를 방해한다. 플래시라이트와 함께 찰나에 사라진 유령처럼 공간을 배회하는 조각품들이다.
note5, …그리고 마침내 광장 위의 아무개들이 국민이란 칭호를 획득했을 때 광장은 저만치 열렸다. 그간의 모든 불행들이 오롯이 자신의 불운함 때문인 줄로만 알았던 아무개들은 비로소 광장 위의 또 다른 아무개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지니게 된 이 보편의 불운이 오롯이 내 탓일 수만은 없었다. 아무개가 국민이 되고, 불운한 개인사는 시대적 불행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날 광장은 마치 유원지 같기도 했다. 그간 자신의 탓인 줄로만 알았던 아무개들이 마침내 누명을 벗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의 불행한 시간은 정말로 지나갔을까? 이제 저 아무개도 이름을 되찾아 광장을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광장은 열려있을까? 어찌 되든 광장 위 분수는 여전히 태연하게 솟아오른다. ■ 이가람
Vol.20170527a | 이가람展 / LEEKARAM / 李가람 / installation.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