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519_금요일_04:00pm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월요일 휴관 * 종료시간 30분 전까지 입장가능
내설악 예술인촌 공공미술관 ARTIST VILLAGE IN NAESEORAK PUBLIC ART GALLERY 강원도 인제군 북면 예술인촌길 66-12(한계리 1191-12번지) Tel. +82.(0)33.463.4081 www.inama.co.kr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선 하나를 그려보았다. 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 줄의 선에는 어떤 의미도 담기 어려웠다. 하지만 선으로 시작하여 표현하는 작품들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의 선은 더 이상 선이 아니었다. 철근으로 표현된 굵은 선은 드로잉 하듯 조각이 되고, 가는 선들이 모여 입체적 형상과 빛으로 표현되었으며, 무한 반복적 선에는 규칙과 철학이 표현되었다. 또한 수많은 얇은 선으로 표현된 펜화는 어떠한 회화보다도 정밀하고 많은 것을 표현하는 완벽한 그림이 되었다.일상 속에서 보이는 수많은 형상과 모습들의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었으며 면이 모여 입체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번전시 『선으로』는 1차원적 선으로 표현된 예술작품을 통하여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수많은 선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창조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 내설악 예술인촌 공공미술관
선으로 표현된 감정 표출을 통한 진정한 자유 ● 작품 속에서 선은 형태가 가지고 있는 간결하고도 복잡한 드로잉들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실제 모델을 대상으로 여러 각도에서 찍힌 사진들을 출력하여 비율을 계산하여 제작되어진 작품은 단순화된 설계 도면과 같이 입체드로잉이라 볼 수 있다. 골조가 고스란히 드러나 마치 엑스레이를 찍은 듯 한 이미지에 곧은 철선과 획을 긋고 남은 잔선의 매듭 또한 작업의 큰 행위로서의 희열이며 작품의 명제가 탈출구 시리즈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철이 가지고 있는 탄성이라는 성질을 이용하기 위함에서 철선을 벤딩 하는데 더욱 강한 힘을 가해야 하며 힘의 절제와 내면의 절제 속에 연마의 행위가 상통한다 느끼기 때문이다. ■ 김성민
선으로 표현하는 기억 ●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후 펜화는 기록화로서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성업을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 카메라의 등장으로 그 역할이 끝나고 기록펜화의 명맥이 끊겼다. 이렇게 사라진 기록펜화가 한국에서 재탄생 하였다. 사진과 다른 회화적 요소를 더하고, 사라진 문화재의 복원기능을 보여주면서 박물관과 전시관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펜화로 그린 작품들이 또 다른 문화재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펜화를 그리면서 사진이나 서양화의 원근법과 인간의 시각이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인간의 눈은 중심부분만 상세하게 보며, 주변부는 흐릿하게 본다. 사람 눈의 망막은 중심에는 아주 작은 고해상도의 센서가 있고, 주변부는 저해상 센서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훑어보게 되고, 사진처럼 한 장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훑어보면서 가까운 사물은 표준 렌즈와 비슷하게 보고, 먼 곳의 사물은 줌렌즈처럼 보기 때문에 사진이나 서양화 원근법과는 사뭇 다른 영상으로 기억한다. 중요한 사물은 크게 기억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인간 시각 특성에 맞추어 도법을 만들고 '김영택 원근법'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 김영택
선으로 이어진 빛의 형상 ● 음영이 존재하지 않는 하얀 덩어리를 만들고 있다. 음영의 대비가 희미해서 그 형태가 빛으로 확산되는 공간을 죄다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 어둠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인 존재감. 그래서 늘 고민스럽다. 모름지기 작품은 세상을 반영한다고 그랬던가? 아니 세상을 전복할 만큼 전위적이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서구의 미술을 무슨 사(史)적개념 따위 불문(不問)하고 추종(追從)하며 찍어내는 판에, 어줍지 않은 작업 어루만지며 부끄러워하고 나의 영혼을 절반쯤 차지하고 있는 알다가도 모를 정체성에 대한 작가적인 대답을 준비한다. 아직은 섣부르다. 아니 영원히 부족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가야 하기 때문에 나는 연연히 사랑하는 '흰 그림자'가 기꺼이 되고 싶다 ■ 전영일
잠재적인 에너지의 순수한 흐름 ● 조각이 가진 물리적 무게감을 털어버리고 한없이 가벼운 조각으로 변화된 정광호의 작품들은 그림과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환영과 재료의 물성을 공존시킨 것이 특징이다. 정광호는 조각이라는 형태가 가지는 거대한 물성 위주의 작업특성에 자신만의 '가벼운' 의미를 대입시켜, 조각의 전통적인 범주를 뛰어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조각과 회화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하는 실험적이며 동시에 아름다운, 구리선이나 동선과 같이 실처럼 가는 철사를 잘라 조각조각 용접하여 만든 꽃잎, 나뭇잎, 항아리, 북어 등은 정광호의 대표적인 작품 이미지들이다. 이들 작업은 철사로 표현된 선(線)과 선 사이의 수많은 공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선은 「The Flower 꽃잎」이나 「The Leaf 나뭇잎」에서 식물의 생명을 지속하는 생태적인 흐름을 드러내고, 「The Pot 항아리」에서는 표면의 깨어진 금과 틈새를 연상시킨다. 나아가 이들 선 사이의 관통하는 부분들은 수 많은 공간을 만들어 낸다. ■ 정광호
무한 반복된 선으로 만들어진 규칙 ● 본 작업은 한지를 붙이고 말리고 붙이고 말리는 반복되는 시간을 요하는 배접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 자를 대고 일정한 비율로 작아져가는 닮은꼴들을 비닐 위에 그려나간다. 그리고는 그 선들을 따라 완벽하고 곧은 흔적을 각인하며 지나가려고 무진히 애를 쓴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은 또다시 주변의 검은 연필로 칠해진 부분에 의해 더욱 부각되어 보이며 곧지 않음이 드러난다. 또한 검은 연필로 칠해지는 면들도 연필로 덮여 종이가 보이지 않게 칠하려 애쓰지만 결과적으로 들여다보면 완벽하게 칠해지지 않은 종이의 희끗희끗함은 날 불쾌하게 만든다. ● 이러한 작업의 행태는 내 삶과 닮아있다. 난 한 인간으로서 완벽하게 완전하게 살고자 했다. 완전해지기 위해서 내 안에 규제와 규범, 기준들을 견고히 세워나가고 그것들을 지키려고 애썼다. 때로는 회의를 느끼고 기준과 규칙들을 무시하고 내 욕심과 이기심으로 살아가려고 해봤지만 어설픈 배려심과 내재되어있는 교육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할 뿐이었다. 두 가지 상충되는 마음과 상황 속에서 뚜렷하고 분명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던 내면의 규칙들은 시시때때로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곧게 새기려는 직선이 종이의 요철과 손의 움직임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새겨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공의(公義)롭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기적이지도 못하게 양쪽에 한 발씩을 걸치고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 편대식
Vol.20170520c | 선으로 "Linearl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