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색 – 일상의 언어 Ⅱ

임남훈展 / LIMNAMHUN / 林南勳 / painting   2017_0516 ▶ 2017_0531 / 월요일 휴관

임남훈_NUDE#12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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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남훈 홈페이지_www.limnamhun.com           블로그_blog.naver.com/wjrao

초대일시 / 2017_0516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자인제노 GALLERY ZEINXENO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9-4 Tel. +82.(0)2.737.5751 www.zeinxeno.com

작가 임남훈의 「누드」 연작을 중심으로-임남훈의 인체, 본질을 읽는 또 하나의 언표 ● 작가 임남훈의 인체는 개인전마다 다소의 '변화'를 엿보게 하는, 삶과 예술이라는 등고선 속 또 하나의 언표로서 존재한다. 조물주가 만든 인간으로서의 생물학적 성(SEX) 혹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서의 인체에 국한되지 않는 이 인체(정확히는 여체)는 관자에 의해 정의되는 피사체로서 위치하지 않는다. 그보단 감정의 대화적 주체로서의 인체와 각각의 고유한 에너지를 발견하고 인체를 통한 삶의 현재와 미래를 투사하는 대상에 가깝다. ● 때문에 그게 비록 누드일지라도 앵그르의 「발팽송의 욕녀」(1808)와 같은 '여인의 고전적 아름다움'자체에 방점을 둔 건 아니다. 관능미를 통해 품위 있는 여체의 숨결을 담아내려는 것도 아니고, '예쁘다' 혹은 '아름답다'라는 형용사와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임남훈의 여체는 그 보단 인체에 내재된 흔적들이 곧 그의 표현에 요구되는 낱말과 갈음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감각적으로 수용한 감정들은 언어가 됨을 가리킨다. 적어도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전통적 미의식의 표목(標目)과는 다르다.

임남훈_NUDE#15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나아가 그의 인체는 하나의 관상(觀相)이면서 동시에 인체에 깃든 실존의 미학적 가치를 증명하려는 것과 등치를 이룬다. 실제로도 그의 여체는 상을 보아 운명재수를 판단하여 미래에 닥쳐올 흉사를 예방하고 복을 부르려는 점법인 '관상'을 잇는다. 우리가 흔히 얼굴의 골격이나 색택(色澤), 이목구비를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다가올 시간을 점쳐보는 것처럼 그 또한 대상의 신체 거동의 특징과 음성, 기색(氣色) 등으로 심상(心相)을 헤아려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 이는 대상의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작가의 남다른 조형방식이다. 전신상을 싸고도는 엇갈린 '상황'과 보편적 누드와는 상충되는 이질적인 측면이 부유하기에 시각적 여운은 괴팍할 수 있지만, 반면 그런 까닭에 인체가 품고 있는 에너지에 되레 집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해 외형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일종의 사유, 본질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일례로 한 여성이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림 「NUDE S3_drawing」(2016)은 거친 붓질과 차분한 모습의 인체 간 대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공간은 장식 없이 비워져 있고 오로지 사람만 등장하는 이 그림은 배경과 여체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보는 이들에게 대상이 전하는 무언의 발화를 느끼게 하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감정적 교류에 무게를 둔다. 이러한 교류는 그의 또 다른 작품 「NUDE #3」(2016), 「NUDE S4_drawing」(2016) 등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모두 사람 자체의 존재성과 삶의 단락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임남훈_NUDE#16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NUDE #9」은 인체의 미메시스(mimēsis)가 아닌 부유하는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포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고 껍데기만 옮기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상황과 감정,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이식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잘 배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은 꽤나 불안정하다. 나이프의 획으로 인해 잔뜩 일그러진 신체, 누우려는지 일어서려는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자세, 디테일한 묘사의 거세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말하긴 힘들지만 그 어떤 그림들보다 우리 내면의 걱정과 불안함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놓고 있다. 특히 배경의 검정색과 여체를 떠받치고 있는 붉은 색의 조화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심한 상황을 읽도록 한다. ● 그럼에도 이 그림은 공감을 얻는다. 여체를 새롭게 분해하고 재구성함으로서 본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도록 하고, 백옥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아닌 꺼칠한 표현으로 오히려 대상의 본류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한다. 왜냐하면 시각인지적인 부분을 고의적으로 생략함으로서 즉각적, 감각적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흐름은 임남훈이 최근 발표한 「NUDE_drawing」 시리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NUDE #1-Relation」(2016)을 비롯한 거의 모든 근작들에서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일그러진 인체 형상을 중심으로 피어내고 감상으로서의 대상으로 설정되지 않은 양태를 보여준다. 이는 욕망과 세속적인 염속주의에 대해 재확인일 수도 있고, 깊이에 대한 작가의 변함없는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의 인체미학은 사회심리학적 관점들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욕망, 환상, 유혹 등의 화두 위에 세워져 있으면서도 결국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공동의 지점이 있다.

임남훈_NUDE#17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결과적으로 그의 인체(여체)는 성(性)이 아닌, 젠더의 형성과 사회적 상호작용 아래 작동하는 거시적 문제뿐 아니라, 각각의 대상이 지닌 특성을 포괄하거나 시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문제화하는 하나의 작화적 코드로서의 여체라고 할 수 있다. ● 허나 이처럼 남다른 의미를 함유하고 있음에도 임남훈의 여체 그림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를 않을 듯싶다. 가시적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이 잘 팔리는 시대에서 그의 강한 그림들이 또는 인체의 선율이나 피부의 오묘한 질감을 표상하는 형식주의 미학을 넘어서고 있는 그의 작업들이 곱상함을 추구하는 취향의 시대에서 크게 환영받을 리는 없다. 어쩌면 그저 울퉁불퉁하게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 즉, 감성과 감각에 머무른 채 눈높이가 다른 이들에게 인체 이미지를 통한 인간의 본능적 속성을 표현하고 비판하는 그의 그림들이 마음에 들 리 없다는 것이다.

임남훈_NUDE#18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그렇다고 예술가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그림을 생산하려고만 한다면 예술가적 지위와 위치는 희석된다. 그려진 그림이 팔리는 것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다르기 때문이다.(특히 얼굴은 미술시장에서 가장 팔리지 않는 소재다.) 그런 점에서 임남훈의 그림은 비록 시각적인 굴곡이 있을지라도 제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얼굴과 인체에 담긴 작가적 관심과 의미가 연결된 채 자신만의 길을 일구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그러나 그의 인체는 아직까진 과정에 있어 보인다. 개념과 의도가 어떠하든 드러난 표상은 종결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긴 이르다는 것이다. 공감은 되어도 공명까지 아우르는 길은 이처럼 험난하다. 물론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지켜봐야할 부분이 생성되기도 한다. ● 한편 인체를 담아내는 동안의 작가의 행위도 그에겐 예술표현의 일부다. 때문에 그가 근래 전시들의 제목은 '춤과 색'이다. 여기서 색은 대상을 옹립하는 조형요소이지만 '춤'은 작가 자신의 움직임, 그 대상의 본질 또는 개별적인 아우라(aura)를 담아내기 위한 채록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 홍경한

1.앵그르의 작품 이전에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 1483∼1520)의 「파리스의 심판」(1530)에서부터 여성의 누드는 회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숱한 동시대 작가들이 여체를 화폭에 담아 왔다. 하지만 임남훈의 그림 속 여체는 거칠고 투박한 크고 강한 에너지가 부유한다. 때문에 누가 보더라도 일반적인 여체와는 거리를 둔다. 2. 만약 관능미를 목적으로 했다면 눈코입도 명확하지 않고 나이프의 투박함을 드러내는 방식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야말로 관능적인 묘사법은 그에게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3. 임남훈이 얼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20대부터였다. 그는 당시 관상과 역학을 공부하며 사람의 얼굴은 자라온 환경과 철학에 의해 도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인간사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역사임을 깨우쳤다. 그 중에서도 '눈'이 지닌 의미는 각별했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 하듯 그에게도 눈은 정신과 얼이 담긴 그릇이었다. 4. 그리고 이 에너지는 대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실존성을 부각시킨다. 5. 작가는 대상을 직접 만나 서너 시간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그 결과(이미지)를 나이프로 빠르게 담아내는 것, 외형의 유사성에서 벗어나 내면의 세계에 천착하는 프로세스에 그의 예술발현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 모델과의 장시간의 대화는 '깊이 읽기'와 갈음된다.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나이프의 획은 감정이입이 덜 한 직관으로써의 표현을 구사하기 위함이며, 유독 튀는 색깔들은 대상의 색과 동일시되는 하나의 기호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이미지는 곧 색이다. 6. 과거의 작품이나 지금이나 그의 그림들은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화면, 강렬한 색, 실존 인물이면서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재가공된 이미지는 임남훈의 조형언어를 전신(傳神)으로 유도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대화를 통해 내면에 접근하길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재현이 아닌 저마다 가슴 깊이 숨겨진 무의식을 훑고 인생의 다양한 내면을 끄집어내려는 의도는 임남훈의 작업이 시각적 모방을 넘어 인물 내부에 존재하는 본질과 정신의 발현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가리킨다.

임남훈_NUDE#19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6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하지? 조바심과 설레임, 금전사태의 현실과 부딪히는 상황이기도 했으며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치르던 첫 전시가 바로 지난 달 같기도 하다. 그런데... 벌써... 어느새... 6번째 개인전을 며칠 앞두고 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면... 그래도 잘... 버티면서 가고는 있구나 하는 조금은 대견함과 위로를 내 자신에게 주고 싶다. 넉넉치 못 한 사정으로 첫 전시 후에 앞으로 어떻게 전시를 해야 하나 하는 걱정에 가슴이 먹먹했었지만, 좋으신 관장님들과의 인연으로 6회까지 초대전을 받아 이렇게 내 작품들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상황만으로 그 감사함을 말로는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항상 좋은 기회를 주시는 관장님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이번 6번째 전시는 2번째로 전 작품을 누드작품으로 전시장을 채울 생각이다. ● 어떤 분들은 얼굴을 그리다가 누드? 하고 말씀하신다. 쌩뚱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맥은 같으며 순차적인 내 작업의 방향성과 계획에 맞게 잘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관상하면 얼굴만 떠오른다. 그러나 아니다. 관상은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다. 몸 전체가 관상의 범위이다. 그 사람의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길들이 얼굴에만 나타난다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니 내가 누드를 그린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일수도 있겠다. 인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아우라. 몸짓, 형태 그리고 자연스런 표현들 색감 등이 한 개인만이 가지는 아우라로 뿜어져 나온다. 이러한 것들이 내가 표현하려는 것이다. 각자 다른 아우라의 감정적 표현들이 언어로서 우리 시각에 보이며 그것이 자신만의 저장 된 감정선들을 두드릴 것이다.

임남훈_NUDE#20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17

특히 이번 전시에선 신작으로 "이불" 시리즈 7점을 전시한다. 각자 같은 그러나 조금은 다른 이불을 덮고 7명의 모델이 잠을 자고 있다. 의식을 놓은 채.. 잠이 라는 공간속의 교집합체를 서로 걸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같은 추상적 상징의 이불을 덮고 있지만 너무나 다른 시각을 준다. 자세와 살색 그리고 구도와. 각기 다르게 풍기는 아우라가 그것이다. ● 같은 한국사람 이라도 너무나 신기하게 인체의 분위기와 표현되는 모습이 다르다. 다른 작업들이 러프하게 분위기를 극대화해서 표현했다면 이불시리즈는 구상과 추상의 조합을 하여 시각적 불편함을 덜어주고 싶은 의도로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불속에서 다양하게 노출되는 각자 다른 분위기는 인간심리의 본능적 사고를 분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떤 감정을 느낄지는 대중의 시각과 판단의 기준점에서 바라보기를 바라는 나의 생각도 들어 있을 것이다. ● 인체의 아름다움 보다 인체가 말하는 언어가, 즉 풍기는 아우라가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 어떤 감정을 유추시키는지 자유롭고 편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인위적이고 프로적인 모습과 자세를 벗어나려고 일반인들을 모델로 섭외 하였으며. 그 준비기간은 10년이란 세월을 가지게 하였다. 10년이란 세월의 준비 기간이 허탈하지 않도록 깊은 관심과 집중을 작업에 몰두함으로 기대치와 의미가 나에겐 깊다. ■ 임남훈

Vol.20170516j | 임남훈展 / LIMNAMHUN / 林南勳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