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complex

김미로展 / KIMMIRO / 金美路 / printing   2017_0510 ▶ 2017_0524 / 월요일 휴관

김미로_Intro-the ruler story_에칭, 릴리프, 실크스크린, 콜라주_50×67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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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가비 GALLERY GABI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69(화동 127-3번지) 2층 Tel. +82.(0)2.735.1036 www.gallerygabi.com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곳은 안전하게 느껴졌다. 차갑지 않고, 딱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갔다. 의외로 폭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올라가자마자 그렇게 산산조각이 날 줄은 몰랐다. 전혀 따뜻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더 차갑게 느껴졌다. 당황스러웠지만 내다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조각들이 너무나 뾰족해서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처음에는 매우 아팠지만, 이내 그런 아픔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빠른 시간 내에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모든 방식의 귀결점은 분명했다.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형태에 가장 가까워야 한다. 따뜻함이나 폭신함 따위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 조금씩 움직일수록 산산조각이 늘어나기 때문에 서둘러 그럴듯하게 수선해야 하고, 나는 온통 그 고민으로 바빠졌을 뿐이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하나하나의 산산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나는 위안을 받았다. 존재하지 않던 상처가 여기저기 생겼지만, 왜 그것이 생겼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망각한 채, 조각을 맞추는 일에만 빠져들었고, 그것이 몸과 머리를 지배하는 전부가 되었다. 조각을 맞추는 행동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 나는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하고 그저 눈앞의 조각에 다음 조각을 가져다 붙이고 있는 것이다.

김미로_깔개장식 초안_에칭_30×20cm_2017
김미로_깨진 깔개 콜라쥬_에칭, 콜라주_30×20cm_2017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철저하게 계획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언제나 밝음으로 시작한다. 무언가를 더하고 계획을 차근차근 수행할수록 어둠이 더해간다. 밝음을 덮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계획되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밝음을 덮어버린다는 그 자체에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계획 이전에 머리를 지배하던 이미지에는 밝고 어두운 양 극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히 풍부한 모호함과 규정되지 않은, 중간의 영역이 가득하던 생각들이 나의 손끝에서는 흑과 백의 양 극단으로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망설이고 그 망설임은 머리와는 상관없이 붓을 통해 마치 미련이 전혀 없었던 듯이 그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려진 표면 자체는 사실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갑자기 의심스럽기 시작했고, 그것을 조금씩 되짚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지점에서 모호했었는지, 그 모호함이 각자의 반대방향으로 어떻게 선택되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과정을 되돌아 가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김미로_green complex #1_에칭 애쿼틴트_40×30cm_2016
김미로_green complex #5_에칭, 실크스크린, 콜라주_30×20cm_2016
김미로_green complex #8(따뜻한 조직)_collagrapht, 드라이포인트, 콜라주_40×60cm_2017

독성이 없어야 한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지만 제 역할을 해 내야 하는 것. 공격적이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신선해야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편안하고 생산적이어야 하는 것. 누구도 나에게 이러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나 자신에게 만들어 놓은 이미지였을 뿐이다. 깨어진 조각을 맹목적으로 이어 붙이던 어느 지점에서, 양 극단의 흑과 백에서 문득 모호한 중간을 더듬어 보는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강요했던 녹색의 이미지를 만나게 되었다. 아무리 끼워 맞추어도 도무지 맞지 않는 틈이 있었고, 아무리 따져 보아도 양자택일의 근거가 없는 중간 지점을 발견했다.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하기 위해서 나는 너무나 무리를 했구나. ●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덧붙여가는 표현방법, 즉 콜라쥬(collage)는 나중에 붙은 것이 먼저 붙은 것을 가리는 구조를 지닌다. 시간의 순서로 볼 때 후자가 전자를 은폐하고 덮어버리는 방식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지속적으로 이러한 구조에 관심이 있었고, 투명하게, 혹은 판의 조합으로 전자와 후자의 서열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어느 날 붓을 들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보니 그리기의 방법은 전혀 다르다. 먼저 그린 것이 마지막까지 화면의 가장 전면에 유지되면서, 지속적으로 추가되는 패턴이나 요소들은 점점 뒤쪽으로 물러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애초에 선택된 하나의 이미지가 끝까지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게다가 심지어 다른 이미지들이 추가될 때 마다 더 복합적이면서도 불가피한 조건을 만들어 내게 된다. 선행된 조건을 피해가면서 만들어 지는 것. 그리고 선행된 조건을 지속적으로 덮어버리는 더 강력한 다른 요인들. 그리고 또 한가지, 전자와 후자, 원인과 결과, 선행조건과 후발 조건이 서로의 위상에 대한 간섭을 해 나가면서 기대치 않았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과연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는 판단을 유보하고 남에게 맡겨버리는 조금은 비겁한 자세를 합리적으로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또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자, 고유의 방식이 아닐까. ■ 김미로

Vol.20170510e | 김미로展 / KIMMIRO / 金美路 / pr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