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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꿈인제주 갤러리 KUMINJEJU GALLERY 제주 제주시 남성로 142(삼도2동 801-1번지)
산책길에 우연히 들어선 길에서 뿌리 뽑힌 나무를 만난다. 이미 이 아라동 근처에서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쓰러진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다. 2010년까지 거의 변화가 없던 이 동네는 병원이 들어서고 택지가 개발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는 고급 아파트와 빌라촌, 1만명이상 유입된 인구이동 현상으로 귀결되었다. 이런 빠른 변화의 결과 아라동에서는 제주섬에서 일어나는 최근의 여러 현상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생활권과 새로운 생활권이 충돌하면서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작용, 반작용의 현상들을 수년간 목도하면서, 개발과 지속의 경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다. 초기 개발의 과정에서 오랜 숲과 감귤밭이 사라지고 그 많은 나무들이 가루로 변해 쌓인 풍경은 초현실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제주도 최고급 아파트들 사이에 위치하게 되어버린 임대아파트의 모습은 또 다른 의미에서 초현실적이다.
이 일대에서는 숲의 소멸과 더불어 일상의 풍경을 함께하던 큰 나무들이 갑자기 죽는 일들이 있었다. 제대사거리 로터리에 있던 소나무가 그랬고 죽성본향의 나무가 그러했다. 제대 로터리의 소나무는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철거와 존치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한동안 시끄럽던 이 문제는 어느 날 밤 누군가가 나무에 독극물을 주사하면서 깔끔하게(?) 끝났다. 죽성 본향 설새밋당은 오랜 세월 신당으로서 마을을 지켜왔다. 조선시대 이형상목사는 미신을 타파한다는 이름으로 여러 당을 없앴으나 이 당만큼은 건들지 못했다. 그 센당은 4.3의 광풍도 견뎌내며 사람이 사라지고 대나무만 남은 마을을 홀로 지켜왔다. 그 유서 깊던 당의 신목도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베어졌다. 기독교인들이 그랬다고도 하고 육지 사람들이 그랬다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런 심증을 굳힐 환경의 변화가 있었다.
수백 년간 지켜지던 가치들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차치하고라도, 내 개인의 기억을 이루던 풍경들이 어이없게 사라지는 모습에서,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가치들 간의 갈등과 자신의 가치를 위해 타인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없는 이기주의의 민낯을 보게 된다. 가치의 충돌이 만들어낸 나무살해의 풍경은 일상적이지만 충분히 잔인했다.
개발과 파괴, 이주와 정주, 확산과 소멸의 경계에서 선명해지는 폭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충돌의 경계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존재들은 이동할 수 없고 발언할 수 없는 피동적인 약자들이다. 확산 앞에서의 무기력함을 벗어나기 위해 간벌되고 뿌리 뽑힌 나무들을 청사진 속에 심는다. 그것은 비극에서 보고 싶은 희망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을 향한 과도한 욕망이 만드는 비극에 대한 메타포이다. 인위적으로 방사된 까치에 밀려 살 곳을 잃어가는 까마귀의 이야기가 더 이상 새롭지도 않은 지금, 잠시라도 관심이 게으르면 사라져 버리는 풍경의 빠른 소멸들 앞에서 느슨해지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큰 단위로 작은 단위로 곳곳에서 일어나는 개발과 확산, 이주의 광풍 앞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들의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기회 앞의 만만한 희생양들이 아니라 이 소박한 땅을 소박한 모습으로 열심히 지켜온 존재들이라고. 그 시간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이주의 시대에 정주의 의미를 묻고 싶다. ■ 이지유
Vol.20170506b | 이지유展 / LEEJIYU / 李誌洧 / photography.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