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p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 5월7일_12:00pm~03: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cafe.daum.net/gallerydam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한 장지 특유 발색의 담담함이 밑바탕 된 채색 혼합 작업은 소소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분채를 녹여낸 묽은 안료가 수 차례 스며든 작은 면은 은근히 배어 나오는 색조를 형성한다. 끄적거리는 느낌을 돋보이게 유도한 작업은 중첩된 선과 면의 흔적이 아련한 감성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형성하였다. 특히 혼잣말 하듯 소소한 형상으로 채워진 화면 속에는 지난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 내면 풍경에 귀 기울이게 하는 표현 의도와 연결되어 있다. 작은 이미지들이 오려 붙인 색종이 닮은 배경에 섞여 있고 끝말잇기처럼 형상이 이어진다. 순수함을 간직하고픈 감수성은 어린 시절 형성된 고향 제주의 지리적 특성과 연관된 기질에 다름 아닌 원동력으로, 무한한 자연과 삶의 이야기를 이끈다. 기억과 흔적이 모여 사는 섬의 이미지는 창작의 큰 원천이 되어오고 있다.
줄기와 뿌리, 마른 잎과 가지, 껍질은 빛 바래 제 역할을 다 소진한 듯 보이는 철 지난 자연의 부산물이다. 그들이 내 의식에 서서히 자리하게 된 이유를 떠올려본다. 나를 대변하는 그 마른 나무, 뽑힌 뿌리와 작은 가지는 바로 기억의 심리를 반영하는 자화상이다. 그 동안의 삶의 길 위에 수없이 내비친 흔적을 묵묵히 감내한 그 모습은 시간을 이어오지만 사실 뿌리 내릴 곳을 찾지 못하는 길 잃은 자의 독백 같다. 살아 견뎌왔으나 온전한 토양에 몸을 뉘지 못한 방황과 결핍을 암시하기도 한다. 숲이 되고픈 열망은 현실 속에선 이룰 수 없는 다름 아닌 욕망, 비현실이었을까. 이윽고 대기에 내린 마른 뿌리와 가지는 다시 이를 새 없는 모진 바람을 맞는다. 치유 없이 꿈을 꾸는, 반복되는 삶의 순환과도 같은 시련 속에 저 너머 귀 기울이기를 포기 못하는 자의 소리가 기록된다. 노동 집약적 느낌의 연필 드로잉을 통해 무한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잊기 힘든 기억, 잊혀진 사소한 순간의 경험을 간직하고픈 바램이 일상을 부유한다. 미처 말 하지 못한 이야기를 되감고 또 풀어가다 되려 엉켜버리는 아쉬움은 화면을 교차하듯 반복된 선으로 시공간을 채우는 기억의 동선이다. 이처럼 감성과 사고의 잔상을 반복 행위로서의 선과 면으로 늘어놓으며 의식과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의도치 않은 또 다른 이미지가 출현한다. 손에 잡힐 것만 같지만 이내 사라져버리는 꿈처럼 순간을 잇는 무한함, 그 드러남이 드로잉의 이유다. 경험과 기억이 거듭될 때마다 마음은 여기저기로 이동하고 생각도 그에 따라 흘러간다. 가까이 다가가 묘사를 하더라도, 혹은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더라도 그 실체는 알기 어려운 흔적처럼 묘한 느낌과 또 다른 통로로 연결되는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반복 속에 표현과 기억을 오가며 지나간 순간의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펜 끝에 의지한다. 경계 없이 흐릿하게 얽혀 있는 풍경 속에 그 너머를 응시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생각한다.
관계와 얽힘 속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벌어진 사태를 목도하는 각자의 몫과 아픔을 풀리지 않는 선의 얽힘으로 나타낸다. 인간으로부터 터져 나온 세계로의 몰이해와 상실, 위로하는 자와 위로 받는 자의 모순에서 고개를 드는 또 다른 과오와 기만을 끝없는 운명. 현실 속에 변형되어 왜곡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이다. 형상의 밀도감을 높이기 위한 반복적인 형식을 선택하면서 어두운 단면을 무수히 겹쳐 얽힌 선으로 이야기를 채운다. 존재함으로 시련을 맞이하는 이 모두의 얼굴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 아직 남아 있는 꿈을 찾는다. ■ 오미경
Vol.20170429a | 오미경展 / OHMIKYEONG / 吳美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