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ple 2017- 장욱진과 나무

장욱진展 / CHANGUCCHIN / 張旭鎭 / painting   2017_0428 ▶ 2017_0827 / 월요일 휴관

장욱진_수하(樹下, Under the Tree)_캔버스에 유채_33×24.7cm_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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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526_금요일_04:00pm

후원 / 네이버_중앙일보

관람료 / 성인_5,000원 / 청소년,어린이_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YANGJU CITY CHANGUCCHIN MUSEUM OF ART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Tel. +82.(0)31.8082.4245 changucchin.yangju.go.kr blog.naver.com/yuma2014

장욱진의 '나무'와 'SIMPLE' 정신 ● 1) "나의 삶은 방향 없이 급회전하는 무질서한 현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생활에서 기꺼이 도피한다. 자연과 나의 내부로" ●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화가 장욱진이 살아온 1917년부터 1990년까지 73년의 세월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유신체제, 민주화 운동 등 격변과 질곡의 시대적 혼란기였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읽어낼 수 있기보다 초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함축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꿈꾸었던 이러한 이상세계는 어린아이와 같이 동심어리고 순수한 울림을 준다.

장욱진_거목_ 캔버스에 유채_29×26.5cm_1954

장욱진은 그 스스로 '자연과 자신의 내부로 도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당시 사회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 일방적인 회피로 볼 것은 아니다. 장욱진은 그가 처한 시대상 속에서 누구보다도 철저히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고민을 했으며 그만의 철저한 '작가의식'을 통해 장욱진 특유의 작품세계를 구현해내었다. ● "나는 심플하다."고 그가 항상 되풀이 내세웠던 말처럼 장욱진은 예술가로서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순수하게 몰입한 삶을 살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을 거부한 채 '자연' 속에서 삶과 예술의 순수한 근원을 찾고자 했다. ● 그는 단 두 번의 사회생활, 즉 2년간의 국립중앙박물관 재직 경험(1945~1947)과 6년간(1954~1960)의 서울대 미대 교수 시절을 제외한 모든 생애를 경기도 덕소(1963~1974), 수안보(1980~1985), 용인(1986~1990) 등 한적한 시골에 화실을 마련하고 '완전고독完全孤獨'을 즐기며 치열하게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행적은 흔히 그를 유유자적한 '자유인', '도인' 혹은 '기인奇人'이라는 단어로 신화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욱진_세 사람 (Three Men)_캔버스에 유채_31×23cm_1975

이 같은 장욱진의 삶의 태도는 마치 자연 속에 은일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선비나 도인의 자연관과 닮아있다. 그가 꿈꾸었던 초현실적이고도 소박한 이상세계는 작은 화면에 '나무'를 중심으로 응축하고 함축해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실제로 그가 느끼고 접했던 까치, 나무, 강아지, 가족, 아이와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가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전체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통일하는 이러한 주제의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욱진' 만의 독자적인 양식이자 하나의 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특히 장욱진에게 "나무"는 그의 예술세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로써 해와 달, 집과 가족, 까치와 개가 함께 어우러진 소박하고 일상적인 정경 속 수호신과 같은 모습으로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에게 "나무"는 '자연自然' 그 자체로, 단순하고 순수한 삶을 추구했던 자신의 이상향이자 곧 자기 자신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SIMPLE 2017- 장욱진과 나무』展은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러한 그의 자연친화적인 자연관과 순수한 내면세계를 살펴보고자 "나무"를 소재로 한 유화 작품 30여점을 중점적으로 선보인다. ● 전시는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일본 제국미술학교 유학(1939~1943) 후 1950년대부터 덕소(1963~1974)시기, 명륜동(1975-1979)시기, 수안보(1980~1985)시기, 용인(1986~1990)시기를 기준으로 구성되었다. 시기에 따라 변모하는 장욱진의 '나무'는 작가로서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한 또 다른 표현이자, 자신이 꿈꾸었던 심플하지만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이상세계 그 자체 일 것이다.

장욱진_가로수 The Roadside Tree_캔버스에 유채_30×40cm_1978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나에게는 이른 새벽의 산책이 몸에 붙었다. 고요하고 맑은 대기를 마시며 어둑어둑한 한적한 길을 걷노라면 새들의 지저귐 속에 우뚝 우뚝 서있는 모든 물체의 부각浮刻이 씁쓸한 맛의 색채를 던져준다. ● 이럴 때처럼 싱싱한 나무들의 생명을 느껴본 일은 없다. 저마다 구김살 없는 다른 꼴의 얼굴들로 소리 없이 웃으며 생생한 핏줄의 약동으로 속사여주는 듯 도하다. 2) 시끄러운 잡음과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은 싱싱한 새벽의 표정을 나는 영원히 담고 싶은 것이다. ●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든 허례허식을 걷어내고 자신의 이상향을 쫓아 자연으로 회귀한 장욱진의 '심플'한 삶과 태도는 그의 '나무' 작품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1950년대부터 그가 작고하던 해인 1990년까지 선보이는 '나무'작품들은 그의 화실 시기별로 그 변모의 양상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시각각 변동하는 자연의 모습처럼 하나의 그림의 과정에 있어서 달라지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 3) 덕소 화실시기(1963~1974)의 '나무' 작품은 그가 스스로 회고 했던 바와 같이 기법적인 측면에 있어서 '부치는'식의 방식을 주로 취했다. 이 시기 그는 주로 물감의 마티에르가 느껴질 정도로 두텁게 바탕을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 했으며, 그러한 바탕을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어 집과 사람을 단순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 시기 '나무'의 주된 양상은 「나무 위의 아이」(1956)와 같이 화면의 중심에 둥근 원형성이 강조되어 아이나 집, 동물과 같은 다른 도상과 함께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 구도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거목」(1954)처럼 잎이 없는 나뭇가지를 강조하여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도 다소 복잡한 형식의 나무를 표현하는 등 다양한 '나무'의 모습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다.

장욱진_나무(Trees)_캔버스에 유채_30.4×30cm_1983

4) 잠시 서울 집으로 돌아와 지냈던 명륜동시기(1975~1979)에 화가는 5) '인간을 자연 감금 시키는 곳'이라며 서울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그의 부인과 스케치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 6) 작품 「가로수」(1978) 역시 이 시기 화가와 그의 부인이 함께 여행을 다녀 온 뒤 제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의 중심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포플러 나무 네 그루가 시원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장욱진 본인으로 연상케 되는 인물과 부인, 그리고 아이를 리듬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 화가의 나무는 주로 이 같은 포플러 나무를 연상케 하는 시원하고 길쭉한 나무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는데, 실제로 당시 포플러나무 가로수가 많이 심어졌기에 이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장욱진_산과 나무(A Mountain and a Tree)_캔버스에 유채_33×24cm_1984

7) 이후 다시 서울을 벗어나 수안보에 화실을 마련하고 화실생활을 했던 수안보시기(1980~1985)는 기법적인 측면에서 이전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표현방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시기 화가는 명륜동 화실에서 처음 시도했던 '먹그림'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유화작품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가 회고한 바와 같이 덕소시기에 '부치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 시기 화가는 묽게 처리하거나 스며드는 기법 등 '먹그림'에 영향을 받아 '덜어내는 방식'을 시도한다. 특히 그의 '나무'역시 먹그림에 영향을 받아 일필휘지로 단번에 그어내어 표현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그가 추구했던 자연친화적인 동양의 자연관을 잘 드러내주고 있으며, 전통적인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만의 조형정신을 알 수 있다. ● 그의 마지막 화실이었던 용인시기(1986~1990)의 '나무' 작품들은 그 동안의 변모 양상들이 종합적으로 구축되어 다양한 조형의 나무들로 나타나고 있다. 장욱진의 '나무'는 주로 그가 실제로 보았던 나무를 그렸다기 보다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 「감나무」(1987)는 실제 용인 고택 마당에 있던 감나무를 보고 그린 그림이었다. 겨우내 죽은 줄 알았던 나무가 이듬해 다시 잎을 틔우는 것을 보고 그 생명력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전해진다.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오르는 듯 한 나무기둥과 나뭇가지에서 생명력과 자연의 근원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장욱진_감나무(The Persimmon Tree)_캔버스에 유채_41×24.5cm_1987

8) "생활은 생명의 영위이며, 예술은 생동하는 생명의 추구이며 나아가 창조라고 한다면, 예술은 생활을 잉태하여 창조된 생명을 분만케 하는 원동력 그 자체인 것이리라. 그리하여 '분만될 시기를 꿋꿋이 기다리는 일, 이것만이 예술가의 삶'이라고 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꾸준하게 추구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날마다 그것을 배우고, 괴로워하면서 배우고, 그 괴로움에 지침이 없이 그 괴로움에 감사하는 데 예술가의 생활은 충만하리라 믿는다" ● 예술가로서 한없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 되고 솔직하고자 했던 장욱진의 '심플'한 삶의 태도와 예술 철학은 가장 순수한 삶의 본질을 고요히 마주하고 되돌아보게 하고, 장욱진의 '나무'가 주는 순수한 울림은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게 한다. ■ 윤여진

장욱진_나무 (A Tree)_캔버스에 유채_41×32cm_1988

*주석 1) 장욱진 화가의 예술과 사상, 64p 2) 장욱진, 『경향신문』, 1958.4.12. 3) 덕소 때는 그 과정이 하나에만 집중하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기법에 있어서나 과정에 있어서나 풍부하다 그거죠. 바르고, 부치고, 깎고, 그런 표현을 하는데, 덕소서는 주로 부친 편이에요. 그러니까 덕소에서 제 마음대로 했었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거죠. 또 덕소 때는 밤 낮 내가 무엇이냐, 내가 무엇이냐 그러고, 캔버스 엎어 놨다, 제쳐놨다 하고. 장욱진, 『경향신문』, 1958.4.12 4) 나는 무언가 파란 것이 있고 물이 있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은 인간을 자연 감금시키는 곳이에요. 덕소 시절엔 논두렁을 걸으며 흙이라도 밟았는데 서울에선 갈 데가 있어야죠." (정중헌, 도시의 은둔자, 장욱진 이야기, 149p) 5) "덕소화실을 떠나와 서울에 머무르게 된 지가 2년이 넘고 있다. 그래도 이제껏 1주일이 멀다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은, 덕소 생활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서울의 소음에 적응하기를 아직 내 자신이 완강히 거부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요즈음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아침 나절에 분연히 떠오르는 어느 일정치 않은 곳으로 스케치 도구를 챙겨 집사람과 훌쩍 다녀오곤 한다.", 6) "가족여행 자주 했어요. 가족 여행 많이 했어요. 『가로수』 나오죠? 그게 이제 가족들하고 다 같이 온양온천을 자주 갔었어요. 온양에 갔다가 거기에 또 조금 더 가면 절이 있으니깐, 절로 다녀오는 길에 별안간에 국도를 가자고.. 그래서 천안서 국도를 들어섰는데, 포플러가 쭉 섰더라고. 갔다와가지고 바로 그림을 그린거 예요", 이순경, 『simple 2015 - 장욱진·김종영』展 인터뷰 녹취록, 2015.03.31,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7) 그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환경에, 무의식중에 환경의 조화를 받았다는 게 확실해요. 서울서 했다면 먹그림이 서울서 부터지. 근데 그게 또 멋 모르고 한 거지. … 수안보에선, 그림 과정을 얘기하면 덕소 때하곤 정반대야. 자꾸 마이너스 일을 했어. 깎아내고, 묽게 바르고, 먹이기도 하고, 물감 비벼서. 그러니까 덕소하고 그만큼 과정이 틀렸지. 장욱진, 『경향신문』, 1958.4.12 8) 장욱진, 『예술과 생활』, 신동아 1967.6

Vol.20170428k | 장욱진展 / CHANGUCCHIN / 張旭鎭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