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포항시립미술관 Pohang Museum of Steel Art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공원길 10 Tel. +82.(0)54.250.6000 www.poma.kr
포항시립미술관은 '철鐵의 물성과 비非물성'이라는 주제로 조각과 설치작품의 미적 특성을 체험할 수 있는 'Steel material & immaterial'을 마련하였다. 전시를 통해 문화나눔을 실천하고, 시립미술관의 차별화 전략인 '스틸 아트 뮤지엄(Steel Art Museum)'을 가시화하기 위한 이번 전시는 두 곳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먼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POSCO의 창립 49주년을 기념하여 포스코갤러리에서 '찾아가는 미술관'으로 개최되고 이어서 포항시립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여기서 우리는 철의 강한 물성을 드러내는 작품과 움직임, 빛, 소리, 그림자 등의 비물질적인 요소를 극적으로 살려 시각적인 효과를 드러내는 스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철은 한국조각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재료 중의 하나로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등장하였다. 6ㆍ25전쟁 이후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던 젊은 작가들은 뜨거운 불로 단단한 철을 녹여가며 시대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매료되었다. 당시에는 철이라는 재료 자체가 새롭고, 현대적이라고 여겼으며, 특히 앵포르멜(Informel) 경향의 추상적인 조각은 용접기술을 이용하여 쉽게 제작할 수 있었다. 그 이후 금속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철은 다른 조각재료에 비해 매우 높은 '성취기능'을 가진다. 그것은 열에 의한 처리가 쉬울 뿐만 아니라 연마, 절단, 용접, 주물, 각인, 형성, 정착, 압축 등 표면을 처리하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4명의 작가는 철을 재료로 강한 물성을 드러내는 작품, 비물질적인 요소를 접목한 작품 등으로 조각 예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주현의 '9,000개의 경첩'은 같은 크기의 함석판을 일련의 법칙을 가지고 연결해서 형태와 구조를 이룬 작품이다. 최소 단위의 개체는 단순한 규칙과 반복에 의해 끊임없이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김주현은 현대 과학이론 중에서 '프랙털(fractal)'과 '카오스(chaos)' 개념을 조형영역에 도입하여 독창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기하학적 구조를 말하는 프랙털은 작은 단위의 구조가 비슷한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 사회 구성요소들은 단순하게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며 어우러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김주현의 작품은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작업하기보다는 스스로 질서를 창조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관계와 과정에 역점을 둔다. '9,000개의 경첩'은 딱딱하고 무거운 경첩이 끊임없이 연결되어 거대한 생명체의 조직을 떠올리게 하며 전체 구조와 개체 단위가 지닌 특징을 동시에 보여준다.
노해율의 작품은 '움직임' 그 자체와 관련된 주제의 변주를 모티브로 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움직임은 단순한 형태에서 나오는 절제로 관람객의 상상력을 극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는 철이 주는 물성과 치밀한 과학적 사고에 근거한 작가정신을 효과적으로 서로 결합하여 심미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그의 'One Stroke 01'은 직육면체 형태의 철 파이프 기둥 10개를 바닥에 세워놓은 작품이다. 이 기둥 윗부분은 사선으로 잘려 있고, 잘린 부분 안쪽에 장착된 전동회전장치와 연결되어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회전한다. ● 바닥면과 수직을 이루는 기점에서 회전운동을 시작한 상단 부분은 꺾이는 각도에 따라 무게중심이 위에서 아래로 교차하며 느리게 또는 빠르게 속도를 내어 다른 모습으로 회전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회전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정확한 육면체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기다리며, 움직임 속에서 '균형'이라는 이상적인 상태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 지금 현재 상황이 불균형하다고 느낀다면, 균형을 되찾는 방법은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엄익훈은 같은 단위구조의 생명체들이 반복과 증식에 의해 유기적인 관계로 태어나는 생명력 있는 형태를 용접작업으로 표현하며 철의 물성을 드러낸다. 작품의 형태는 차가운 금속에 열을 가해 생명력 가득한 덩어리로 만들어진다. 작가는 우주의 탄생과 생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재료에 투영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최근 작품들은 조각의 내부에 조명을 넣어 빛이 새어나오는 작업으로 재료에 집약된 노동의 결정체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다른 그림자 작업은 조명을 사용하지만, 안팎을 가늠할 수 없는 유기적 형태의 비정형 작품에 비춰 생기는 그림자를 함께 연출한다. 빛과 사물의 뒤에 드리워지는 이 그림자는 작가의 철저한 계산으로 벽면에 환영하여 나타나는데, 조화와 이상적 비례를 추구한 그리스 조각의 신화나 역사적인 인물 등을 그려내는 도구로 사용한다. 회화가 이차원의 평면에서 사물이나 공간을 환영한다면 그의 추상 조각은 공간 속에서 평면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의 작업은 추상의 조각을 통해 구상의 이미지를 그리고, 실재하는 것에 실체가 없는, 실상과 허상의 관계에 대해 묻고 있다.
돌이나 나무 덩어리를 끌과 망치로 쳐내면서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은 전통적인 조각의 제작방법이다. 그리고 철조는 산소용접기로 절단하고, 전기용접기를 이용하여 금속재료를 가열시키고 용융시켜 두 재료를 서로 결합해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제작방법이다. 하지만, 이성민은 끌과 망치를 대신하여 산소용접기(cutting torch)로 사용하는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표현과 해석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며 고집스럽게 쇳덩어리를 깎고 또 깎아 거칠게 빚어낸다. 그는 작업과정에 대해 " 불이 지나가는 부분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 만들어지며 그 철에 생채기 같은 흔적들은 구체화한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볼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인체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이 산소용접기의 터치에서 나오는 강한 '생채기'는 형태를 만듦과 동시에 지우는 행위가 같이 이루어진다. 작가는 차갑고 무거운 철에 열을 가하고 산소압력으로 쳐내면서 거친 형태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그의 작품 대부분인 인체이거나 인체의 특정 부분인 머리, 다리 등의 일부를 강조하여 거친 상태로 완성한다. 이로써 그의 조각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가느다랗게 깎이면서 그 주위에 강렬한 동적 공간을 내포한 날카로운 조상(彫像)으로 탄생한다. ● 세계 철강 산업을 주도하는 POSCO는 최근 철강제조에서 용광로 공법을 대체하는 신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개발하여 새로운 철강 역사를 쓰고 있다. 이런 POSCO의 창립 49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Steel material & immaterial'은 철을 재료로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철조각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전시는 미술관 밖에서 시민과 철강 근로자들과 함께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문화와 삶이 어우러진 도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포항에 산업도시의 이미지를 생산해 낸 '철'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문화와 접목하여 '철'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행복한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장정렬
Vol.20170420h | Steel material & immaterial 철鐵의 물성과 비非물성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