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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화려한 이미지 뒤에 은폐된 것들 ● "사회적 강자의 약자에 대한 인신 예속적 양상을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민주 사회에서도 세습 되어지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소위 있는 자들의 경제적, 육체적 횡포는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 나머지 이젠 '없이 태어나서, 없이 자라나는 내가 잘못이다.'라며 포기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문명의 발전 이상으로 더욱 가속화 되어 굳이 고위층이 아니더라도 타인 보다 자신이 조금 더 돈이 많다거나, 직위, 학력이 높다 싶으면 상하의 계층을 만들려 한다." (정연연)
1. 위 글은 정연연 작가의 작가노트 중 일부다. 기술된 내용을 보면 그의 근작 주제가 어째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인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즉, '귀족의 의무'라는 뜻으로도 다양한 이유 아래 자행되는 동시대의 편견과 차별, 자본주의 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계층계급의 문제를 되묻고, 부여된 지위와 신분에 따르는 도의적 의무를 동반하지 못하는 세태를 반문하는 것이 확연하다는 것이다. 1) ● 하지만 시각이미지 자체만으로는 작품의 제작 의도를 눈치 채기 어렵다. 화려한 컬러, 우아한 형상에서 '귀족의 의무'는 쉽게 연상되지 않으며, 풍요로운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도덕적 책임감, 절대적 평등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힘든 이상이라는 비판은 연쇄적 인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보단 그저 엘레강스한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몸짓으로 자리하고 있는 '익명의 초상화'처럼 비춰진다. 2)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명이라는 지점이 되레 정연연 작업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그의 익명성은 특정한 적시(摘示)를 통해 오히려 그림 자체와 작가 간 호환성과 기록의 권역을 되찾고 현존하지만 숨겨져 있는 것에 시각성을 부여함으로서 감춰진 것에 반응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3) 물론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가 지녀야할 보편적 상식, 사회와 제도 속에서 불변해야 마땅할 가치의 추구에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현실에 놓인 엄연한 부조리함에 대해 은유하고,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것에 반발하거나 비판하면서 자각의 단초로서의 작품들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 그런 점에선 여성들의 콤플렉스를 화두로 삼은 2014년의 'Remember Your Heart' 연작이나 여성과 성 차이(gender different), 그 불편한 진실을 직시한 'she is blind' 시리즈(2012), 2011년 선보인 「Addicted to herself」시리즈 4), 관능적인 인상이 강한 'Addicted to herself'(2010) 5) 연작 등도 같은 선상에 놓인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크게 '여자가 바라본 여자'로 함축되거나, '나르시시즘과 여자', '사회적 관계에서 여성'에 있다. 화이트, 레드, 블랙 등의 색에 의해 섬세하거나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때론 정적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의 그림엔 서서히 다가오는 주관적 내레이션이 나지막이 배어있다. 6) 그러나 근작에 이르러선 사회적 메시지가 강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귀족의 의무'는 바르게 행해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 은폐되는 시선에 대한 진실함을 말하는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 근작을 포함해 정연연의 그림 속에 투영된 시선의 은폐 7), 그리고 그것을 통한 진실함의 눈길은 어쩌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발언이기도 하다. 삶의 단락과 경험의 시간성 내부에서 발화된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그는 시각화된 표면에 기억과 경험의 기표들을 얹히며, 작화적 시점에서 진행되는/ 진행되어 온 흔적들을 잔류시키면서 '보이지 않으나 필시 존재하는 것'을 재조명해 왔다. 하지만 해석은 몇몇 장식 및 색깔과 같은 조형요소에 의해 제어당하며 내레이션은 시각성에 지배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연연의 작품들은 외계를 내계로 수용해 감성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끊임없는 반복을 추구한다. 겉보기엔 분명 형상과 도식에 충실하고, 의도를 왜곡하는 상징의 나열일 수 있으나, 그의 그림엔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필적 기호들이 가득 숨어 있다. 8) 물론 평범한 감상자의 위치에서 그의 그림들은 '인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인상'이 구조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회적 측면을 나타내고, 은폐에 관한 지적 및 관계성에 대한 고찰 등은 유효하다.
특히 각각의 색이 지정하는 의미들을 이해하고 본다면 이미지가 선사하는 선입관의 반대편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문제의식을 보다 명확히 읽을 수 있다. 비록 작가의 이상향과 다른 화려한 색과 강렬한 인상의 인물 들이 화면에 서성이지만 조형요소들을 하나씩 분석하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일례로 그의 그림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금색이나 노랑은 고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랑, 선행, 풍부함, 천상의 빛을 띤다. 이 색깔은 다른 색이 조금만 첨가되어도 곧 순색의 밝은 특성이 상실된다. 때문에 금빛은 부도덕한 자, 매춘부 등을 상징할 뿐 아니라 배반과 불신, 부도덕, 질병, 질투, 증오, 경멸 등 부정적 이미지를 함유하기도 한다. ● 정연연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빨강 역시 동일한 맥락에 놓인다. 시각적으로 이 강렬한 색은 흔히 열정, 정열, 도전성을 지칭하지만 불길함의 기호이자 불안감, 관능성을 대리한다. 그리고 검정은 무한함이나 끝없는 순환 대비 죽음, 어두움, 상실, 피폐함을 아우르는 색이다. 정연연은 이러한 색의 고유명사에 순응하는 어법을 인물의 얼굴과 배경을 두드러지게 상치적 표현을 통해 가시화 한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비춰진 상들이, 또한 단순한 사물이나 색들이 실제론 불투명한 인간 삶을 치환하고 증좌 한다는 데 있다. 이에 우린 그의 그림을 보며 사실적 표현과 기호화 된 도안의 공존, 같은 맥락에서 양감을 살린 단순한 음각의 조화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초상을 대입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자각한다. ● 어쨌든 정연연의 그림들은 다채로운 색깔과 형상 탓에 '고요한 음미'와 '직접적 해석'이 저해당하는 측면이 없진 않으나 현실이라는 무대에 관한 자문을 품고 있다는 것, 삶 속에서 결코 내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 의식하거나 무의식적인 상황 아래 펼쳐지는 단면들, 사회-구성원 간 관계 9)의 의미,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인간의 다치 등에 대한 것들이 풍요롭게 그리드(grid)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이전 일련의 작품들에세도 엿볼 수 있듯 작가의 철학과 조형적 방법론이 어디에 조타를 두고 있는지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작품들은 어쩌면 다분히 비극적인 세상에서 작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자문과 공유가 녹아 있음을 외면하기 어렵다. ■ 홍경한
* 주석 1) 이와 같은 주제의식은 그의 작가노트에 기술된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동화나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시나리오 같다."는 지적에서 보다 명료해진다. 2) 물론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작가의 대리된 주체이다.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와 그림 속 인물들이 같은 궤를 그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3) 대체로 독백형식의 차분한 여운을 띠는 이들(익명의 여성들)은 정지된 듯한 동세를 한 채 몇몇의 장식적인 요소들과 나란히 놓여진다. 이 둘의 조합은 화면을 심미적인 느낌을 수선시하도록 하며, 알 수 없는 이상미와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조장한다. 때문에 그의 그림들은 무엇보다 시각적 화려함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강하다. 4) 또 하나의 존재성으로서의 여성을 선보인다. 나르시시즘(Narcissism, 자기애(自己愛))이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자기중심성 성격 또는 행동을 일컫는 정신분석학적 용어이다. 여기엔 남녀 구분이 없으며, 오히려 동시대엔 사람 수 만큼이나 개별적이다. 5) 2010년 연작인 「Redefinition of herself」는 동성을 억압하면서까지 남성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여성들의 양태를 솔직하게 담고 있다. 여성인 작가가 그 여성들의 놀랍고도 이해 불가할 수 있는 심리성을 다룬다는 것이 마치 '고백'과 같아 부담스러울 수 있음에도 작가적는 "이 안타깝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수용하며, 그 사실에 수반된 아우라는 공동체에서의 불안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책략에서 행해지는 편 가르기와 험담, 여러 불편한 상황들을 비롯한 관계성의 시각화로 구현된다. "여자들끼리의 관계의 어두운 측면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또는 당하고 있는 일상적인 실망과 악랄한 배반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 또한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설명이 정연연 그림의 화두 끝에 '여성의 책략과 남겨진 형태'를 올려놓는다. 6) 작가는 여성을 여성의 시각에서 고찰하며, 그 이유로 "여성이란 존재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한 극도의 불안감과 함께 의심을 낳고 머릿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기에 여성을 화두로 삼는다고 말한다. 이는 흔하게 엿보이는 대치적 양태로써의 여성의 존재에 대한 연구와는 달리, 보다 여성 본질에 근접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외형에 치중하는 작품들과 변별력을 지닌다. 7) 시선의 은폐는 전도될 인식과 상황을 통제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통해 주제를 상정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반어적으로 도출시킨다. 즉 개개인 각각이 위치한 소멸의 자리에서 되레 그것을 해체해야 새로운 회복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음을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8) 물론 그 기호는 일차적으로 예술적 화두가 되어온 현실성자체 혹은 현실성으로의 자유로움을 드러내며 회의적 판단을 내재한다. 9) 관계는 사적이면서 내외적인 것으로, 삶의 애중이자 갈등의 씨앗이다. 더불어 심리 저변에 내려앉은 불안과 초조함의 대치어이기도 하다. 그는 이를 토대로 예술의 역할을 구축하고, 선과 색깔, 형상을 통해 숨겨져 있는 문제의식자체를 기호화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지금 나에게 이 세상은 금어화가 잔뜩 피어있는 검붉은 빛으로 보인다."라는 자조 섞인 작가의 발언에서 확인 가능하다.
Vol.20170412e | 정연연展 / JUNGYEONYEON / 鄭瑌延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