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3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인사아트센터 GANA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관훈동 188번지) 6층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다중으로 열린 화해, 또는 화엄의 메아리!! ● 그에게 창(窓)은 다중(多重)으로 열려있다. 열린 창들은 바로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반영하는 작가의 시선이다. 낮의 밝음을 끌어당기며 부옇게 동터 오르는 새벽 여명이나 밤을 예고하는 불그레한 석양빛처럼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약속이다. 그것은 이 땅에 함께 살아있음의 장엄한 자취로서 의미의 씨앗이며 희망으로 자라날 싹이다. 하나하나의 창문은 제각각 생생하게 일어난 일들의 증거로서 살아남아 싹으로 자란다. 그로써 이 모든 창들은 이 땅의 지난 시간과 현재와 다시 올 날들을 이어주는 활짝 열린 의미의 줄기로 되살아난다.
갑작스럽게 침몰하는 배에 갇혀 영문도 모르는 채 물 속에 스러져간 꽃다운 청춘들, 도처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부조리한 일상들, 사방이 꽉 막힌 흐린 대기와 더러는 뜻 없이 맑은 날들, 황토 빛으로 갈라진 땅, 집회, 분노의 외침, 침묵의 사적지, 헐벗은 도시근교의 풍경, 산책하는 연인, 황량한 시멘트 계단에 내려앉은 새들, 침묵의 물 위를 나는 새, 시장에 서성이는 사람들, 지하철의 계단과 인파, 거품이 넘치는 테이크 아웃 커피잔, 씨방을 드러낸 과일, 얽히고 설킨 잡초덤불, 무심히 피어있는 들꽃들, 나무를 오르는 사람, 과실을 쪼아먹는 나무 위의 새들, 새끼들을 보듬고 있는 둥지 속의 새들, 누군가의 장례식, 되풀이되는 삶과 죽음들, 다시 바다에 사라져간 넋들을 위로하려는 듯 선회하는 새 한 마리, 억울한 넋들의 부활초인 듯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서홍석의 그림에 드러나는 이 모든 장면들은 우리의 시대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하게 벌어지는 숱한 비극과 아픔을 간직한 채 묵묵히 진행되는 삶의 일상적인 풍경을 만다라처럼 보여준다. 마치 세상의 온갖 혼돈을 뒤로 하고 '영혼의 산'을 찾아가는 사람이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속속들이 펼쳐지는 세상의 풍경과 삶의 뜨겁고도 비극적인 정경을 하나하나 간절하게 돌아보듯이, 그는 살아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일들의 총체, 사건들로 펼쳐지는 야단스럽고 다층적인 세상의 일들을 흐느끼는 듯한 선과 색의 떨림으로 한 장 한 장 되살려낸다. 이 땅에서 쉼 없이 피고지는 그 모든 삶과 죽음에 바치는 비통한 노래나 따스한 위로처럼 서홍석은 그 모든 장면들을 온기가 채 식지 않은 물감들로 흠뻑 감싸고 생생한 고통의 숨결과 깊은 슬픔으로 떨리는 붓질로 어루만진다. 그가 기억의 풍경(Memory Scape)이라고 말하는 이 모든 일들, 사건들, 삶의 모습들을 그린 그림들은 그리하여 하나하나가 사라진 것들, 사라지는 것들, 사라질 것들에 대한 절박한 기억이다. 그러한 모든 일들은 이 시대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한꺼번에 일제히 일어나 외치는 깊고 묵직한 울림과도 같다.
흔히 '사건'이란 세계에서 일어나는 숱한 일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요하거나 심각하게 벌어지는 일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 '사건'에 현대철학은 의미의 씨앗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들이라는 뜻에서 그것은 요란한 일들일 수도 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소한 일일 수도 있다. 사건은 일상적인 세계 속에서 무수히 일어나지만 그 모든 사건들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의미로서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다양한 양상과 그 파급효과가 미치는 강도에 따라 잠재적으로 수많은 의미의 층위를 내포한다. 특히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야기하는 사건들은 그만큼 크고 오랜 다층적 반향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서홍석이 그림으로 그려내는 여러 사건들의 이미지들은 신문에 나오는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건들이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각각의 시대적인 사실들처럼 명확하게 규정된 의미를 상투적으로 제시하는 어떤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일로서의 과거를 넘어 그림 자체로 '순수 사건'처럼 자리하여 다양한 의미의 가능성을 함축한 채 언제라도 살아서 자라날 싹으로서 잠재한다. 이 싹은 갖가지 의미로서의 가지와 잎새와 열매를 약속하며 능동적으로 활짝 열려있는 창이며, 이웃하는 다른 여러 사건들과 서로 교차하여 보다 더 거대한 의미로서 살아 출렁이는 화엄의 창문을 이룬다. 동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사안에 따라 분노와 슬픔과 좌절, 또는 환희와 영광의 싹으로 자라나 뜨겁고 장엄한 삶의 공명으로 증폭될 이 모든 일들은 그의 그림인 수많은 열린 창을 통해 항상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처럼 자리한다.
다시 말해서, 서홍석의 붓끝에서 하나하나의 사건들로 '포착'되는 동시대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의 시야에서 펼쳐지는 사실들의 살아있는 원형이다. 그러한 일들은 그가 즐겨 읽는 가오싱젠의 말처럼 '작가로서 일개 관찰자의 신분으로 돌아와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일로서 생생하게 그의 화면에 살아남아 영원한 현재로서의 힘을 가진다. 그것은 그의 붓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잊을 수 없는 놀라움이나 분노의 차원을 가진 사건들을 하나씩 붙잡아 화폭 위에 '기록'함으로써 얻게 되는 살아있는 시선의 힘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그린다는 것은 한편으로 조용한 분노이자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대상에 대한 따뜻한 위안으로서의 기록이다. 기록한다는 것은 영원히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은 그가 직접 보았거나 이 사회가 집단적으로 겪었던 사건들에 대한 자발적이고 직관적인 붓질로 재현된다. 따라서 이 그림들은 대상에 적극적인 감정을 이입하는 선과 색의 육신을 입고 망막에 남아있는 잔상처럼 동사원형으로 살아남아 원래의 시뮬라크르적 사건이 갖는 순수상태의 힘으로 환원된다.
그리하여 그가 멀티스크린처럼 펼치는 그림들은 세상을 향해 무수하게 열려진 다중(多重)의 창(窓)으로서 이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펼쳐지는 한 시대의 거대한 모순이자 변증법적 화해의 시공을 이룬다. 낱낱의 사건들이 가지는 특정한 의미들은 그 자체로도 나름의 무게를 갖는 동시에 다른 모든 사건들에 끊임없이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동시성을 띤다. 이러한 동시성은 이 시대 이 땅에서 함께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의미를 띠고 연접하여 더욱 총체적인 의미의 덩어리를 이루며 한꺼번에 울리는 장중한 화엄의 합창이다. 궁극적으로 서홍석이 보여주는 세계는 이처럼 온갖 일들이 분별과 대립을 넘어 한 자리에 어울려 서로를 위로하는 초혼이자 화해의 장엄한 메아리이다. ■ 서길헌
Vol.20170329e | 서홍석展 / SEOHONGSEOK / 徐弘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