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3:00pm / 일요일 휴관
아이디 갤러리 ID GALLERY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142 아이디빌딩 L층 Tel. +82.(0)2.3496.9743
또 다른 풍경-나무의 창의적 해석 ●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 중에 '쌍숙쌍비(雙宿雙飛)'란 글귀가 있다. 이 글의 의미는 함께 자고 함께 날아간다는 뜻으로, 남녀 혹은 부부 관계를 뜻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른 듯 하면서도 쌍숙쌍비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연은 끊임없이 파괴되기는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공존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 또한 자연이 편안한 안식처임을 인지하고 있다. 마샬 버만(Marshall Howard Berman)의 경우 「현대성의 경험」에서 자본주의 초기의 산업적인 면은 필연적으로 '발전의 비극'을 얘기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대성은 기존의 고정불변한 것들을 파괴하지만 언제든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할 잠재성이 있다. 현대성에서 벗어나는 대신에 우리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면서 어떻게 더 나은 세계를 창조해야 할지 논의해 봐야 할 것이다. ● 인간의 삶 주변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항상 있으면서도 눈에 잘 안 보이는 대표적인 생명체가 나무이다. 도시개발에서 나무는 인간과 함께 공존하면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지만 정작 나무에 대한 고마움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나무의 삶을 살펴보면 고달프게 보이는데 그들은 자신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도시를 개발하는 데 사용하기 위하여 인공적으로 옮겨 심어진다. 그 과정에서 잘 적응하고 잘 버티는 나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병들어서 죽어 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인간의 주위에 있는 나무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많지 않다. 사물과 풍경은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많은 순간을 함께 한다. 그 속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사라지지만, 그것의 배경이 되었던 사물과 풍경은 고스란히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엄효용은 여러 그루의 가로수들을 반복해서 촬영하고 그 사진을 수백 장에 합치고 중첩한다. 그 사진에는 실존주의자들 혹은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의 표현을 빌리면 '여기 지금(시간과 공간)'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지점이 있다. 작가는 나무의 내재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며 본인의 경험이 작품을 통해 타자의 경험과 기억을 자극하기를 희망한다. 작품 속 풍경은 사람이 존재하나 사라져있다. 구상적 형상과 대상은 오히려 추상적으로 보이는데,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가 풍경 속 주체가 되어 그 안에 들어가 보기를 유도한다.
김형섭은 도시개발에서 길거리의 가로수들은 가지가 잘리는 가지치기를 하고 이차적으로 '수형(樹形: 나무 모양)' 작업으로 형태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결과적으로 나무들은 자연적인 상태가 제거된 인공적인 조경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의 욕구에 알맞게 형태가 변형된 나무들 이미지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를 상기하게 한다. 그것은 나무의 고통을 무시하고 미적 고려 없이 인간에 의해 변이된 나무의 모습이 미래에는 어떤 위치를 점유하는지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정록은 인간의 역사에서 문화 원형 중 신화적 세계를 중심으로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기록하거나, 설치작업의 형식을 빌려서 신성한 장소로 해석한 풍경 시리즈를 지속해서 해왔다. 「생명 나무」는 자연의 풍경에서 죽어있는 나무에서 생명의 싹을 발견하고 빛을 통해서 그 나무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나무에는 원구와 불빛 등이 반짝이는데 이런 시도는 강박적인 미적 취향, 강박적인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편안한 시각으로 사진을 해석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정록의 '생명의 빛'이 의미하는 지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숭고한 생명의 빛이 탄생하고 발하는 공간으로 해석한다. 자연의 신비하고 경이로운 현상이 발생하는 공간은 나무라는 물질적 대상을 경유해서 재해석 된다. ● 이처럼 각자의 작가들이 갖는 상상과 그 상상을 실제화 시켜주는 행위는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작가적 정체성과 자신만의 논리가 있지만 서로 다른 작업을 보여주는 이들의 작업이 갖는 공통분모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의 끝없는 탐구에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을 바탕으로 한 '시각적으로 생각하기(Visual Thinking)'를 효과적으로 표현했고 관객에게는 '미묘한(nuanced) 사고'의 전환을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의 의미를 마샬 버만의 진단을 빌려서 관객에게 제안하려고 한다. "창조를 위한 길을 포장하기 위해서 파괴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그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게 된다." ■ 김석원
Vol.20170302i | 미묘한 풍경 Nuanced Scap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