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302_목요일_04:00pm
참여작가 PART Ⅰ/ 박은영_신기철_정의철 PART Ⅱ / 정미정_이홍한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종료 30분 전 입장마감
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155 3,4전시실 Tel. +82.(0)42.602.3200 www.dma.go.kr
2017 넥스트코드-우리 앞의 생 ● 대전을 비롯해 충청을 기반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청년작가를 발굴하여 전시하는 『2017 넥스트코드』는 박은영, 신기철, 이홍한, 정미정, 정의철 5인의 작업을 선보인다. 『넥스트코드』는 중부권 미술의 정체성을 찾고자 중장기 계획을 가지고 시작되었으며 우리 미술관의 가장 오래된 정례전 중 하나이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전환의 봄』이라는 전시 명으로 시작된 청년작가지원전은 2008년부터 넥스트코드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작가들의 실험정신을 조명해오고 있다. 대전·충청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들의 등용문인 넥스트코드는 공립미술관의 중요한 역할인 미술문화투자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미술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작가를 양성한다는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이다. 19년 동안 발굴된 125명의 역량 있는 지역의 청년작가들은 각자 고유한 감성과 사고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차별화된 조형언어를 선보였다. 그리고 국내외 미술계의 동량지재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2017 넥스트코드』는 보다 공정한 작가 선정을 위해 대전·충청 지역의 만 40세 미만의 작가를 대상으로 포트폴리오 공모를 진행했다. 중부권에 연고나 기반을 두고 활발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총 51명의 작가가 지원하여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미술관에서 세 차례의 심사숙고한 논의 끝에 최종 5인의 작가를 선정하였다. 박은영, 신기철, 이홍한, 정미정, 정의철 이들 다섯 명의 작가들은 삶을 영위해가며 느끼는 감정, 특히 불안에서 시작된 생에 대한 사유를 본인들만의 미적인 양식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불안은 존재론적인 것뿐만 아니라 확장된 자아의 욕망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회화, 조각, 사진 등 각자 선택한 다양한 예술매체로 구현된다. ● 올해의 넥스트코드는 '우리 앞의 생'이라는 주제로 3, 4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3 전시실 '생의 안으로'는 박은영·신기철·정의철의 작업을 선보인다. 이는 본인만의 조형언어를 다듬어가며 본질에 접근하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작업 방식에서 얻은 키워드이다. 우선 박은영의 작업에는 두 가지 결과물이 있다. 하나는 염료를 먹이는 먹지와 그 염료를 소화해 생성된 결과물인 먹지드로잉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드로잉의 본질적인 모습은 오히려 염료가 다해 색이 바라진 먹지의 형태와 더 가까웠다. 현재 작가는 먹지 그 자체의 질료성에 대해 다방면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신기철은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 등을 상징하는 바니타스 도상이 주는 의미론적인 불안감보다는 불안 그 자체의 상황, 예를 들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면에 걸쳐진 모습이나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은 위치에 놓인 물컵 등의 상황으로 연출하여 불안의 본질을 찾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와 자연스러운 빛을 사용하며 그만의 새로운 바니타스 '사진'이 등장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의철은 그의 최근 작업인 '낯설다'라는 시리즈 연작에서 필름지를 사이에 두고 두껍게 물감을 칠한 후 그 물감을 떼어내어 프레임화하는 독특한 작업과정을 보인다. 이는 그림의 내외관계를 뒤집게 되고 겉이 아닌 속이 전면에 향하면서 예상치 못한 이미지가 드러남을 유도하는 것이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오직 심안으로만 가시화되는 '알맹이'만이 자리한다. ● 4 전시실 '생의 밖으로'에서는 이홍한·정미정의 작업을 선보인다. 이들은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매체나 소재 등 예술적인 사유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홍한은 철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삶의 흔적들이 축적된 공간을 조형적으로 가시화했다. 최근 그의 작업은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고 주위를 밝혀주는 빛으로 그 소재가 확장되었는데 이는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하거나 소외되기 쉬운 비주류의 공간을 주류의 공간으로 전복시키고자 하는 메시지와 함께 예술의 사회적인 책무에 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 온 작가의 인식의 확장이 동시에 발현된 것이다. 정미정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생존력이 강한 식물들을 이종교배 하여 사이보그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변종 식물로 연출한다. 2차원의 화면에서 물감으로 존재했던 식물들이 3차원의 실재적인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체험이 가능한 식물로 현전하는 것은 단순히 매체의 확장뿐만 아니라 불안에 직면하는 그의 태도가 보다 성장함을 함의한다. ● 이상 다섯 명의 청년작가들은 각자의 푸르른 시간 속에서 때로는 불안에 흔들리면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견고한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소설인 『자기 앞의 생』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낮은 삶의 단면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생에 대한 의지를 지독히도 표출하는 이 책과 불확실한 앞을 바라보면서도 한 가지를 고집하며 지속하는 그들은 서로 닮았다. 그리고 이들의 생에 대한 태도는 불안과 희망, 방황과 정착 그 사이의 어딘가를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우리 청춘들에게는 위로가 된다. 『자기 앞의 생에서』의 주인공인 모모에게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두려움과 불안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것이지만 감정 자체에 침잠되는 것을 경계한다면 오히려 '생(生)'을 확인하는 순간으로 변모한다. 청춘은 시간이 흐르면서 없어지는 어느 한 때의 그 무엇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 또한 청춘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며 프란츠 카프카는 그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술적인 시각언어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우리는 여전히 청춘이다. ■ 홍예슬
생의 안으로 ● 작가 박은영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자연물, 특히 숲을 주제로 전사지(轉寫紙)인 얇은 먹지에 드로잉을 한다. 먹지는 한쪽 또는 양쪽 면에 색칠을 한 얇은 종이로 본래 한꺼번에 여러 장을 복사할 때 쓰이지만 그에게 먹지는 단순한 복제의 수단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 시간 등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구현해내고 내적인 갈등의 해소하는 훌륭한 매개체이다. ● 작업과정은 다음과 같다. 여행지에서나 산책을 하며 수집된 사진이미지를 얇은 종이에 자신만의 조형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윤곽선을 그린다. 그 후 먹지로 옮겨 그리면서 드로잉이 시작되는데 압력에 예민한 먹지의 특성을 통해 채도와 강약을 조절하며 2차 드로잉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윤곽선을 지워내고 선은 더하고 비워내면서 드로잉의 이미지가 재탄생한다. 즉 먹지 자체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도구가 되며 드로잉은 그 결과물이 된다. 하지만 드로잉의 본질적인 모습은 오히려 염료가 다해 색이 바라진 먹지의 형태와 더 가까웠다. 마치 더할수록 가벼워지고 더할수록 줄어들고 그을수록 소멸하는 것들과도 같다던 그의 말처럼 말이다. ● 이처럼 육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정신력 또한 소진되는 고된 과정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그의 드로잉은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구도자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무수한 선이 반복적으로 그려질수록 조급함과 불안은 점차 엷어지며 여러 층위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초월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시간의 경계, 그 언저리에 자리하게 된 그는 시간성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획득한다. 시간에 대한 무목적성은 그의 작업에서 유희의 핵심이 된다. 그렇게 그의 숲은 유희로 울창해진다. ■ 박은영
불안이라는 감정은 정신적인 무질서의 증상 중 하나로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적인 구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불안은 공포와는 분리되는 개념인데, 공포가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에 관한 반응이라면 불안은 무의식적인 위험에 관한 것이다. 그렇기에 불안은 가장 내밀한 심연에서부터 본인이 자각하기도 전에 시작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편한 감정은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갖게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 신기철은 이러한 불안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불안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것이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 불안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재확인하는 순간이 된다고 말이다. 그의 초기작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주로 보이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모티프인 '바니타스(Vanitas)'를 차용하고 있다. 빛의 콘트라스트가 부각되는 바로크적인 양식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회화적인 연출을 통해 사진이라는 현대적인 매체로 세기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불안감을 병치시킨 것이다. 하지만 작업이 지속될수록 연출된 소재들은 점점 바니타스의 전형적인 도상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는데, 도상이 주는 의미론적인 불안감보다는 상황적인 연출에 기반을 둔 불안감이 주를 이루게 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와 자연스러운 빛을 사용하며 그만의 새로운 바니타스 '사진'이 창조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면에 걸쳐진 모습이나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 같은 위치에 놓인 물컵 등 상황으로 죽음과 삶에 대한 본질, 그리고 찰나와 영원에 대한 의미에 대한 고민을 표출한다. ■ 신기철
'보는 것이 곧 믿는 것'이라는 명제에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수긍한다. 이는 대상을 인지할 때 일차적으로 시각을 통해 이미지를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인데, 시각의 용이한 접근성 때문에 대상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시각이미지라는 오인을 하기 쉽다. 시각은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이지만 그것에 대한 객관성은 담보할 수 없기에 지나친 이미지 정보는 우리의 주체적인 판단 과정에 혼동을 일으킨다. 가스통 바슐라르가 말했듯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근본적인 힘은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주체, 즉 자아에 있기 때문이다. ● 정의철의 작업은 주객이 전도된 시각과 주체에 대한 질의를 끌어낸다. 그는 재현적인 이미지들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할 수 없다고 본다. 이미지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현하는 초상화들은 정확한 윤곽선이 없는데 이는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에 따라 다양한 감정의 결로 느껴지기를 원함일 것이다. 작가는 외형적으로 유사한 이미지를 경계하고 내면의 눈, 즉 정신세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실험적인 프로세스와 양식을 수년간 시도했다. 그의 최근 작업인 '낯설다'라는 시리즈 연작은 단순히 캔버스에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필름지를 사이에 두고 두껍게 물감을 칠한 후 그 물감을 떼어내어 프레임화한 것이 최종작업이 된다. 이는 그림의 내외관계를 뒤집게 되고 겉이 아닌 속이 전면에 향하면서 예상치 못한 이미지가 드러남을 유도한 것이다. ● 피상적인 세계에서 진정한 자아이자 무의식으로 유도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표면적인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속의 본질적인 '알맹이' 만이 자리하게 된다. ■ 정의철
생의 밖으로 ● 이홍한은 자본과 기술의 집합체인 현대사회에 도시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담론이 확장되는 과정을 탐구하면서 공간에 작용하는 권력의 이해관계나 사회의 계층화 등 구조적인 측면과 그 시의성에 주목한다. 도시의 빌딩이나 스카이라인 등의 단편적인 외양이 아닌 그가 직접 경험한 삶의 흔적들이 축적된 공간들을 재구성한다. 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과거에 살았던 집이나 주택가, 전봇대, 골목길 등 기억이 담겨져 있는 곳이며 작가는 그 궤적들을 '철'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형언어로 기록하는 것에 집중한다. ● 그는 플라즈마 절단기를 이용하여 철판에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으로 물리적인 질감을 획득하고 3차원의 공간감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등 회화적인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에게 철판은 캔버스이자 물감이며 용접은 붓질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회화성은 최근의 '인공의 빛'으로 발전되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작업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작가는 '빛'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빛은 어둠을 정복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시간성을 부여했으며 잠재되어있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작가는 이러한 빛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동등하게 닿기를 바라면서 스테인리스스틸 용접봉을 녹여낸 그만의 빛을 한 땀 한 땀 덧붙이는 작업을 지속한다. 그리하여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체계에 맞서면서 사회적 인프라가 취약하거나 소외되기 쉬운 비주류의 공간을 주류의 공간으로 전복시킨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인 책무에 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그의 확장된 인식의 발현이다. ■ 이홍한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은 그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집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잣대들을 수용하려 노력할수록 본연의 자아와 다양한 역할기대를 이행하는 사회적인 자아와의 충돌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지부조화는 내적인 불안감을 초래한다. 사회화라는 이름의 훈육과정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했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이 마치 연극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회적인 강요로 인해 꾸며진 자아를 상징적인 이미지로 대체하여 불안과 대면하는 화면 구성이 등장하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멈춘 듯한 자동차의 이미지, 생존을 위해 최적화된 변종식물들의 조합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인공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극적 자아'와 내재된 불안감은 작업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자 핵심으로 기능한다. ● 화면에서 주로 등장하는 자동차는 목적이나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하는 자아를 은유한다. 하지만 자동차의 물리적인 이동 방식은 문제해결에 있어 임시방편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데, 모든 여행지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한계성을 자각한 후 그의 자아는 변종된 식물들로 발전한다. 식물 이미지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조합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계통의 식물이 이종 교배된 이미지로 재배열한다. 이는 사막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는 강인한 식물들을 선별하여 접합한 것으로 사이보그처럼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변종식물의 진화를 연출한 것이다. 회화에서 직접적으로 체험이 가능한 실재적인 공간으로의 설치는 매체의 확장뿐만 아니라 불안에 직면하는 그의 태도 역시 성장함을 보여준다. ■ 정미정
Vol.20170302h | 2017 넥스트코드-청년작가 지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