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0904j | 유현경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302_목요일_05:00pm
후원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관람시간 / 10:00am~06:00pm
우석 갤러리 WOOSUK GALLERY 서울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예술복합연구동(74동) 2층 Tel. +82.10.4712.6294
본 전시 『갈 곳 없어요 2』는 2016년 두산 갤러리 뉴욕에서의 개인전 『갈 곳 없어요』의 대표 전시작 2점과 2016년 하반기 두산 레지던시 뉴욕에서 작업한 회화 7점, 2014년 스위스와 런던,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한 초상화 18점으로 구성한다. ● 최근의 나는 오랜 기간 젖어 있던 기존의 감성과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임을 깨닫는다. 이번 전시에서 『청년기를 정리하며』라는 글을 발표하고 그동안의 작업과 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자 한다.
청년기를 정리하며 (2017) ● 그림을 그리는 일은 에너지의 발산이다. 이 창작의 에너지는 심적 에너지(psychic energy)에서 온다. 심적 에너지는 결핍된 것들의 축적이고 억압되고 금지된 것들의 욕망이다. 이것은 충동을 일으키고 분출되는데 나의 행위는 이러한 분출에 있다.1)이 심적 에너지가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아래 에바 헤세(Eva Hesse, 1936-1970)의 노트를 인용하겠다. ● '작업은 나에게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주었다. 나는 그 안에서 거인이었고 나의 작업(works)들은 강했으며 나의 전반적인 기질은 내부에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에서 나는 극도로 겁을 먹은 사람이었다. 2)' ● 과거 에바 헤세의 페인팅을 보고 붓질과 그 제스처에서 나의 작업과 유사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작업 에너지가 어디에서 왔을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게 된 그녀의 노트들 상당수에서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어딘가에서 극도로 겁을 먹은 사람이었다'고 적었다. 그녀의 작업 에너지가 그녀가 품고 있던'극도의 겁'을 해소하기 위해 나왔을 것이다는 추정 때문에 그녀와 나를 동일시 하였다. 아래의 글을 보자. ● '작업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 삶에서 가장 쉬운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내가 작업에 소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내가 작업을 꽤 잘 했을지도 모르는 이유이다. 작업에서는 어떤 공포도 없었고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었으며 솔직할 수 있었다. 작업할 때는 가장 열려 있었고 작업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수적이지 않은 것이었으며 완전한 자유이자 자발적인 것이었다. 작업에서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도 있었는데 만약 잘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중략) 3)' ● 잘 되지 않는다고 해도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말 속에는 그녀가 의중(意中)대로 선택 할 수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자신의 의사(意思)가 오롯이 반영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일인가? 그곳이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 될 때 그것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러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역으로 다른 사람의 욕망에 얼마든지 부응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다시 이러한 '이상한'인내는 작업에서의 분출을 가능하게 한다. ● 나는 청년기 전반에 걸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그려내는 정서적 에너지 때문이다.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1971)는 그의 저서에서 카뮈의 경우 "내면의 긴장과 존재의 고독을 통해서만 표출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다고 적었다. 4) ● 카뮈가 가진 '내면의 긴장'과 '존재의 고독', 헤세의 '극도의 겁'과 같은 결핍이 그들 작업에서의 에너지가 되었고 나의 경우 역시 이러한 것들을 작업의 동력으로 삼고 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 헤세는 그녀가 겁을 먹고 있는 곳을 '어딘가(somewhere)'라고 기술하였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곳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개인의 내밀한 부분과 연관될 수 있으며 당사자는 이러한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를 감추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개인 고유의 언어가 만들어지며 그 내부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그들에게 그림은 이 내부 세계를 드러내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으며, 이들은 표현적인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다. ●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극도로 예민한 편이었고 실제 안정과 안도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작은 것에도 가슴이 뛰었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예민함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눈치채고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모르는 척 넘어가려 했고 그에게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방법적으로는 예민함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는 것인데 상황과 상관없는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거나 과장된 행동이나 희화적5)(戱畵的)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상황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2010년의 그림 『분열』과 『숲 속 친구들』은 내부 세계의 예민함과 밖으로 내비치는 희화적인 모습 사이에서의 분열을 그린 그림이다. ● 그러나 희화적 태도로 전환한다고 하여도 내부의 긴장이 해소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스란히 축적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부터는 그림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그렸던 무언가는 호기심이 일거나 자극적인 요소들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터무니 없는 그림들이 양산되었고 무엇을 그렸는지에 대한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묻는 사람의 성격과 태도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 하기도 하였고, 사실상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 희화적 태도가 습관화 되면서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는 그런 것들이 충동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마음속의 충동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듣거나 그러한 상태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 나의 예민함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은 그것이 심리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체의 문제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잦은 긴장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많았는데 편안하게 숨 쉬기를 의식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숨쉬는 법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겪고 나서는 두근거리는 마음 상태를 차단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희화적 태도로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 나의 예민함이 나만 그런 것인지 알지 못했고 지금도 알지 못하므로 내가 예민하게 다른 사람을 느끼는 만큼 나 역시 그들에게 조심하려 했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고 삶을 비관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건조한 듯 보여도 자기 내부의 문제 때문에 삶이 쉽지는 않다는 것을 익히 깨닫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투쟁을 작업을 통해 진행하였고 무엇보다 해소하였다. ● 명확하지 않아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여도 어디선가 나의 욕망을 확인할 공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 공간은 작업이 되었고 작업은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작업에서는 이야기하면 안되는 것들로 장난을 할 수도, 심각하고 진지한 것들을 조롱할 수도 있다. 내 앞에 있는 사람, 관계 맺기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들을 역설적으로 화가와 모델의 관계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로 맺으면서 그러한 긴장상태를 작업을 매개로 실험했다. 작업은 그런 것들이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할 수 없거나 하면 안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 2008년, 초상화 모델을 구한다는 공고를 하고 100인의 모델을 모집한 것이 초상화 작업을 실험하고 이어간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모델과 마주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나의 눈을 볼 것을 요구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감정이 생겼다. 감정과 긴장에 의해 일어난 충동이 붓을 흔들고 이러한 붓의 흔듦은 손끝에서 몸으로 전해져 다시 감정을 일게 했다. ● 여러 종류의 감정 중 지배적이었던 감정은 경멸이었다. 모델과 눈이 마주하는 순간 즉발적으로 일어난 그러한 감정은 붓질에 속도를 주었다. 붓이 캔버스에 거칠게 닿을 때마다 그 접촉이 다시 마음을 흔들어 붓을 더 빠르게 움직이도록 했다. 붓을 휘몰게 하는 잔인한 생각 때문에 당황했고 모델에게 미안했다. 내 안의 잠재된 폭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캔버스에 붓으로 긁거나 찌르거나 부수거나 뭉개는 행위는 경멸하는 마음에서 생긴 공격으로 시작했으나 그의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미안함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에 대한 의심과 당혹감으로 마무리 되었다. 모델과의 작업에서 그 당시 들었던 감정들과 그 변화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한 감정이 그림을 그리게 한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앞에 있는 모델이 아니라면 그림을 부수거나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인물의 형상을 그려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초상화는 인물을 닮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모델을 만족시키기 위해 닮게 그리는 것을 목표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00인의 모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를 닮게 그려야 하는 의무감 속에서 모델을 보았을 때 즉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들을 눌러야 했기 때문에 종국에는 답답함과 회의감이 일었다. ● 인물 연습으로 시작한 초상화 모델 작업이, 그리고 그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하나의 제안인'닮게 그리기'를 실행하면서 나는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이 단순히 그 사람의 외양을 그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닮음'의 문제에 있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 이후의 초상화에서는 모델을 보았을 때 즉발적으로 일어나는 감정과 그에 따르는 제스처를 용인하기로 한다. 또한 그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까지도 그대로 노출하여 그를 붓질에 옮기게 된다. 간혹 모델은 자신을 보지 않고 그림에 몰두해 있는 나에게 가도 되는지를 묻기도 하였는데 그들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긴장이 작업의 동인이 되었기 때문에 있어주기를 부탁하였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찰나의 시간을 체감하며 붓질을 통한 몰입을 경험하고 있었다. 제스처에 몰입하는 순간 이미 그려 놓은 대상을 모두 지워버릴 만큼 붓질의 충동이 일기도 했다. 순간의 붓질에 의해 인물이 지워지므로 붓질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궁극에는 그 행위를 그대로 용인하여 붓질의 흔적만을 남기기도 하였는데 인물을 그리는 것보다 붓질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충동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몰입의 순간에는 무아(無我)의 경지와 같은 강한 쾌감을 느꼈는데 작업중 이런 상태는 의지와 노력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도 이해 받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시각적 결과로 그림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직감하게 된다. 이런 과정 이후 정의하기 쉽지 않은 페인팅에 매료되었고 쉽지 않기 때문에 더 해보고 싶은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림에 대한 이런 종류의 접근은 초기의 형상에 집착한 그림에서 행위가 강조된 그림으로의 변화를 일으켰다. ● 나의 초상화는 어느 순간 여러 점의 초상화가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혹은 누구를 그렸는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지점에 있었다. 이때부터는 초상화에 『차분한 사람』과 같이 인물의 태도를 드러내거나 『가난한 사람』과 같이 인물이 처한 환경을 드러내는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다. 모델에게서 내가 찾고자 하는 모습을 찾아 그리는 일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에서의 '가난'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환경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이런 환경에 무기력한 사람에 대한 연민은 강박관념으로 남아 한 시기 작업 전반에 등장하게 된다. 이런 심상을 '어린 사람'으로 은유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강박관념을 정리하는 일이다. ● 지난 그림들에 녹아 있는 나의 가장 지배적인 태도는 청년기(16세에서 30세까지)에 느끼는 부끄러움과 조심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여기서 부끄러움과 조심성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남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은 성질의 것6)으로 그리고자 한 많은 것들에 방어로서의 위장과 거부의 시선을 만들게 한 주 요인이 되었다. ● 나는 인간 존재에 대해 연민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몇가지 가장을 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동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다른 사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위선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며 나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거부와 경계이기도 하다. 그림의 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것들은 드러냄과 숨김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이로 인해 그림에는 위장과 위악적 태도들이 덧입혀 진다. 위선에 대한 경계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사람의 과거와 생각을 모두 알지 못한다는 조심성에서 시작하며 이는 역으로 내가 다른 사람과 유지하고자 하는 거리를 확보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이기도 하다. 위악적인 태도와 행동은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위선에 대한 경계로 나온 태도임을 위로하며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견디게 된다. ● 의도치 않은 순간의 충동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내 안(安)의 이질성7) (異質性)'을 경험하게 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의 충동과 분출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그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반복될 때 확신하게 되며 반복된다고 하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부정하는 과정들이 수반된다. ● 나의 작업에서는 나를 하나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8) 그동안의 전시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적, 반성적 어조의 제목을 사용했다. 『나는 잘 모르겠어요(2010)』, 『잘못했어요(2011)』, 『거짓말을 하고 있어(2012)』, 『갈 곳 없어요(2016)』. 여기서 '잘못 했어요', '거짓말을 하고 있어'와 같은 고백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어'라는 고백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반성하는 말이다. ●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것은 그림을 통해 노출된다. 숨기고자 하여도 그 숨김까지 드러나는 것이 그림이다. 나는 나의 그림을 분석하며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드러난 모습을 확인할 때 그 모습이 자신임을 부정하기도 하고 그 시각적 결과가 어떤 범주내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할 때 스스로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확인하게 되면 다음 작업은 그를 넘어서는 변화와 발전을 마음 한 켠에 목표처럼 붙잡게 되는 것이다. ● 그림이 공개되면서 어떤 시선으로 대상을 보고 있는지를 들켜버리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보여짐'을 고려하여 수많은 처리를 감행하게 된다. 즉흥적으로 도출되었다 하여도 그렇게 보여지고 싶지 않다면 그림의 태도를 조정하게 된다. ● 그림이라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보여진다'라는 전제하에 그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보여짐'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희화화 될 수 있는 것은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작가가 조심스럽고 예민한 사람이라면 모든 것은 나로 수렴되어 나를 통해 표출될 때 안전하고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위선을 경계했다. 그것은 나의 경우로 끌어오지 않은 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거짓과 책임지지 못할 것들에 대한 경계이다. 이것은 자기애(自己愛)와는 다르다. 내가 자기애와 그를 가진 사람을 또한 경계하는 것은 나르시스트는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자아의 인식과 변화의 과정과 그 투쟁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작가로서 불가피하다. '보여짐'을 인식한 이러한 위장은 초라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고려하기도 하지만 이를 인간이 가진 본질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그 다음에는 잘 표현 해야 하는 임무가 남아 있다. ● 나는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van Rijin, 1606-1669)의 마지막 자화상을 이상적인 그림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마지막 자화상에는 존재의 슬픔이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나이에 따른 황폐함과 피폐함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그림은 희화적이다. 태연해 보여도 결코 태연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그 태연함과 태연한 척 하는 위장만이 귀결이자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들의 모습에는 해결될 수 없는 투쟁의 종결을 '자신'으로 환원하여 마무리 지으려는 태도가 있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에 있다. 세계에 대한 막연한 경멸의 태도와 자존심, 초라함, 조심성 등의 예민함과의 싸움에서 모든 것을 '나'로 환원시키는 태도, 이러한 태도는 연민과 자기 투쟁, 이로 인한 존재의 슬픔을 인식하고 확인하고 위로하고 해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며 작업은 이러한 과정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 렘브란트가 그의 청년기에 익애했던 인간의 모습. 피카소의 청년기의 푸른 그림들, 고흐가 그린 인물들을 생각한다. 한 사람의 청년기에 세계의 소외된 것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마음은 역으로 그들의 고된 청년기를 비춰주며 또한 그들의 순수하고 여린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 나는 나의 청년기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본 글을 썼다. 길게 느껴졌던 청년기를 마치며 앞으로는 내부의 긴장과 겁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해지길 꿈꾼다. ■ 유현경
* 주석 1)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성(性)적 충동(sexual impulses)에서 야기된 심적(psychic)인 에너지가 그렇지 않은(nonsexual) 행위, 특히 창조적인 에너지(nature)로 전환된다고 보았고 이를 승화(sublim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프로이트가 모든 행동의 근원을 성적 충동으로 본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심적 에너지가 행위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과 억압되고 금지된 개인의 욕망이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탁월한 논지로 보아 본 글에서 에너지의 전환을 설명하는 데에 인용하였다. 2) Cindy Nemser...et al. Eva Hesse; essays and interviews. Mignon Nixon(Ed.) Cambridge, Mass.; MIT Press, 2002. 3) 위의 책 4)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이규현(역). 서울: 민음사, 1997. p11. 5) 익살맞고 우스꽝스러운, 또는 그런 것. 6) 그르니에는 카뮈가 열 일곱 살 이었을 때 그의 병문안을 갔던 날 카뮈가 보인 적의를 '자신이 느끼는 불안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청년기의 조심성으로 해석하였다. 이러한 심리를 나의 청년기의 주된 심리로 공감하여 본 글에서 인용하였다. 위의 책 p19. 7) 라캉(Jacques Lacan, 1901-1081)의 프로이트 해석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은 "주체가 자기 내부에 자기가 의식하고 규제하지 못하는 이질성", 즉 자신 내부에 "스스로 지배할 수 없는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타자 개념을 "또 다른 주체가 아닌 주체가 환원시킬 수 없는 이질성"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공감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표출되고 발견하게 된 나의 모습을 '내 안의 이질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것은 정신 분석과 유사하다고 본다. 자크 라캉, 『욕망 이론』; 민승기∙ 이미선∙ 권택영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1998. pp92-99 8) 라캉은 자아는 근본적으로 오인의 구조에서 출발한다고 보아 독선적인 주체, 타자를 인정치 않는 고립된 주체를 경계하였다. '타자 의식'을 갖는 것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오인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크 라캉. 위의 책. pp15-21.
Vol.20170302a | 유현경展 / YOUHYEONKYEONG / 劉賢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