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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217_금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갤러리 브레송 GALLERY BRESSON 서울 중구 퇴계로 163(충무로2가 52-6번지) 고려빌딩 B1 Tel. +82.(0)2.2269.2613 cafe.daum.net/gallerybresson
존재의 증명, 부재의 증명 애오개 사진 ● R.B는 최후의 저서 ‘밝은 방’을 통해 그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사진에 대해 총정리를 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란 느낌이 몇 군데 문장에 깊이 스며들어있다. 1부와 2부를 합해 모두 48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마지막 2개의 장의 제목이 각각 47장 ‘광기, 연민’과 48장 ‘길들여진 사진’이다. 1889년에 니체가 매를 맞는 말을 목격하고 연민에 넘쳐 울면서 말의 목을 끌어안았던 에피소드를 인용한 것이 47장이며 “미칠 것인가 아니면 순응할 것인가. 사진은 두 개의 선택지를 가졌다. 그 선택은 나의 것이다. 문명으로 코드화된 완벽한 환상의 대광경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아주 다루기 힘든 현실의 깨어남과 맞설 것인가”로 끝나는 것이 48장의 끝이자 ‘밝은 방’의 끝이며 롤랑 바르트가 이승에 남긴 마지막 문장이다.
R.B는 ‘밝은 방’에서 푼크툼과 스투디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진의 노에마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거기 있었음(That-has-been)’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사진은 존재의 증명이란 말이다. R.B는 또한 사진은 부재의 증명이기 때문에 사진은 죽음이며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라고 풀었다. 사진이 왜 부재의 증명인가? 인물사진을 예로 들면 쉽다. 사진에 찍힌 인물은 (그림과 달리) 실제의 인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운명을 안고 있다. 따라서 사진에 찍힌 사람은 이미 죽었거나 언젠가 죽을 것이다. 인물사진이 아니라면 왜 부재의 증명인가? 사진에 찍힌 대상은 셔터가 눌러진 그 순간의 짧은 빛만 받아들인다. 1822년에 니엡스가 찍은 최초의 사진엔 테이블 위에 유리컵과 숟가락 등이 보인다. 실제의 유리컵과 숟가락과 달리 사진에 들어있는 유리컵과 숟가락은 1822년 어느 날 니엡스가 빛을 받아들였던 그 순간의 유리컵과 숟가락이다. 만약 테이블이 아직 있고 유리컵이 아직 있다면 그것은 니엡스 사진 속의 유리컵이나 숟가락과는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기 때문에 부재의 증명이다.
김준호의 ‘애오개’는 그래서 존재의 증명이자 부재의 증명이 되는 것이다. 기와지붕, 골목의 보도블록, 가로등, 어느 집 담장 앞에 줄지어 서있는 화분, 전기 계량기, 창문 밖에 달려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모두 애오개의 게딱지 같은 집을 형성한다. 지금 애오개엔 김준호의 사진에 찍힌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다. 재개발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운명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다만 사진 속에 남아 그것이 존재했음을 전해준다. 또 동시에 이 사진 속에 찍힌 그 순간의 파편 같은 빛과 그림자는 김준호의 카메라와 삼각대가 물러서고 난 다음의 빛과 그림자와 다르기 때문에 부재의 증명이다. 김준호의 사진엔 좀처럼 사람이 없다. 그는 “굳이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고 일부러 없는 순간에 찍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하다. 김준호의 애오개 사진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진에 사람(의 흔적)이 있다. 저 보도블럭을 깐 사람이 있었으니, 저 기와를 올린 사람이 있었느니, 저 거칠게 마감한 시멘트벽을 쌓아올린 사람이 있었으니, 저 집과 골목과 동네를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슬라브 옥상 위의 장독대, 남루하지만 깔끔한 와이셔츠를 건 사람이, 화분에 국화를 심은 사람이, 겨울이면 골목의 눈을 치운 사람이, 김준호가 사진을 찍는 광경을 본 동네 사람이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존재한다. 김준호의 ‘애오개’의 완성은 김준호가 했다. 긴 시간,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뀔 동안 김준호는 골목에 버티고 서있으면서 골목에 흔적을 남겼다. 골목을 수도 없이 오가면서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사진 ‘애오개’에 찍혀있는 최후의 흔적은 김준호의 발자국이다. 김준호가 애오개를 찍은 바로 그 다음날 재개발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김준호가 골목을 뜬 다음에 누군가는 또 골목을 쏘다녔겠지만 그 흔적은 사진에 남아있지 않다. 김준호의 애오개는 존재의 증명이고 부재의 증명이다. ■ 곽윤섭
Vol.20170217d | 김준호展 / KIMJOONHO / 金俊浩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