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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215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5: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9(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0)2.725.2930 www.gallery-now.com
작가 김형곤 작업에 드리운 빛에 담긴 지각으로서의 색과 형에 대한 소론-빛, 색을 짓고 형을 만들다 ● 스푸마토(sfumato)와 테네브리즘(Tenebrism)은 르네상스 이후 회화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명암법(키아로스쿠로 : chiaroscuro, 빛과 어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이 중 '연기와 같은'을 가리키는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를 어원으로, 회화에 있어 물체의 윤곽선을 자연스럽게 그려 흡사 먹물 스며들 듯 어떤 대상이 배경에 포박되도록 하는 대기원근법이다. 미술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일컫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해 도입되었다. ● '어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테네브라(tenebra)를 어원으로 한 '테네브리즘'은 빛을 읽는 방식이자 연출방식을 회화에 적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카라바조 작품의 영향을 받은 화파인 '테네브로시(tenebrosi)'를 지정하는 용어이기도 한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카라치파의 정신을 잇는 귀도레니를 비롯해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벨라스케스, 피터 폴 루벤스 등이 이 화파의 작가들로 꼽힌다.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격렬한 명암대조에 의한 극적인 표현이 특색이다.(렘브란트 역시 이 영향 하에 두며, 보다 가깝게는 베르메르와 신고전주의자들인 다비드, 앵그르, 부게로까지 연관성을 지닌다.)
기실 이 두 가지 명암법은 서양회화를 이전과 완전히 다른 차이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전 중세시대의 경직되고 건조한 회화 표현방식을 진일보토록 했으며,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가장 효과적으로 재현 및 이입시킬 수 있는 최적의 기법으로 평가받았다. 그야말로 새로운 회화세계를 개척한 혁명적인 방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흥미롭게도 작가 김형곤의 작업엔 위와 같은 두 가지 기법이 절묘하게 녹아 있다. 배경과 사물의 경계 없는 조화, 빛과 어둠을 기반으로 한 음영의 운율 및 사실적인 처리는 오랜 시간 학습된 철저한 회화적 가능성이 특유의 리얼한 언어들과 조우한 채 분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실제로도 그의 누드, 인물 시리즈를 비롯한 풍경화, 정물화를 보면 매우 꼼꼼하고 모범적이며 엄정한 화풍이 균질하게 나열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깊은 어둠 속으로 스르르 빨려 들어가는 사물(형상), 상하좌우 대칭 아래 정돈된 질서, 광선의 강약에 따른 극명한 효과, 빛과 색의 진폭에 의한 감정의 유동 등이 바로 위 두 기법에 의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형곤 작업의 특징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형곤의 그림에선 고풍스럽거나 혹은 클레식한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탁월한 '빛'의 운용성 탓이 크다. 빛이 쪼개져 색을 낳고 그 색이 균형을 유지하여 에너지를 갖는 형국이다. 색상, 명도, 채도 아래 구현되는 입체감, 규범적인 리얼리즘이 지닌 시지각적 한계성의 배제, 감각을 담보하는 매력적인 결과물로 치환될 수 있는 것도 결국 빛의 영향으로 봐도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색과 형에 대한 지각은 빛에 의해 생성되고, 빛이 없으면 색도 명암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여기에 작가의 빼어난 소묘력과 날카로운 관찰력은 예술적 묘사의 고고학적 정확성과 합리주의적 미학의 소환을 불러온다. 특히 규율의 미학이 엄격한 질서미는 시각적 인식력을 충만하게 창조할 뿐만 아니라, 망막에 대한 항거를 유보시킨 우리네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지평으로까지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가 삶과 시각언어의 매개로 사용해온 회화 방법론은 사실 거스를 수 없는 원초적인 내부의 표상, 실존의 기호를 담는 그릇이었으며, 작가 자신의 존재성에 관한 질료와 갈음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성은 예술가로써의 길, 그 여정에서 올곧이 피어난다. 600년 역사에서 회화를 회화답게 하는 두 축인 견고한 프레임인 빛과 색을 논하는 것도 본질적으론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에 대한 끝없는 자문과 갈음되며, "나의 예술은 성찰(省察)과 표현의 한 형태"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예술은 상상의 결과가 아닌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한 현실 자각적 분동(分銅)이자 미의식의 궁극인 감동을 향한 길고 긴 여정을 담보한다. ● 그런 까닭에 오늘날 그의 회화는 화면에 가득한 어떤 형상과 그 의미에 대한 물리적 결과인 유(有)와 호흡하는 공(空)이 녹아 있고, 이는 실제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과도 일치한다. 즉, 철학적 시각에서 볼 때 그의 그림은 한편 공(空)이요, 공(空)은 결국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비움의 드러남이자 채움의 여백(餘白: 비움의 ‘무한함’과 비워짐으로 인한 '충만함')이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간략히 말하면 공은 빛이고, 빛은 시각에 잡히지 않으나 존재함(有)을 의미하며, 그 존재성은 색과 형으로 대체되는 것과 같다.
김형곤은 인물을 그리든 자연을 배어내든, 그에게 있어 그림은 삶의 목적이자 방식이다. 어쩌면 자연과의 호흡이요, 내계와 외계, 표상과 실제, 내외 혼연일체의 투영이다. 이는 곧 삶이라는 여로의 단락이자 운율(韻律)이며 삶의 고저에 의한 정신의 분출이다. 하지만 김형곤의 작업이 가리키는 또 다른 지점은 인간과 세계(자연)와의 관계에 있어서의 실재적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깊이 분석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 표현 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확립해 나가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우린 그의 그림에서 고집스러움과 변화에 대한 걸음이 동시에 교차하는 것을, 또한 그 속에서 현재가 아닌 내일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을 통해 존재형식에 대한 내적 문제를 언급하며, 예술 활동으로 존재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이어가고, 자기 발전적인 가능성을 선택하기 위한 적절한 선택으로 실존(김형곤의 작품은 화문(畵問)의 본질을 추구하는 방법에 있어 관물(觀物)과 관아(觀我)로의 요약을 가리킨다. 관물이란 인간의 존재 의의를 알아내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며 ‘명백하게 밝히기 위해 멀리 바라보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는 만물을 통해 그 도리를 알게 됨으로써 자연의 진리를 깨닫고자 한다는 것으로 은연 중 그의 작품에 속속 들어선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에서 더욱 돋보이는 건 관아다. 관아란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것이다. 관물을 통해 자연의 이치 속에서 진리를 얻고 도리를 알고자 하는 뜻이 숨어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김형곤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사상이 어떠한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은 항상 세계내존재임을 밝힌다는 것이다. ● 위와 같은 해석을 전제로 할 때 김형곤의 예술은 결국 표피적인 이미지, 드러난 이미지, 눈에 맺힌 이미지와는 달리 그 내부엔 현존재(Dasein)라 불리는 인간의 본질을 말하고, 나로부터 시작된 존재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술 활동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 연장과 다름 아니다. 그 스스로 표현했듯 "생의 원천인 자연을 모태(母胎)로,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에 접근하고, 여기서 자연은 그저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에너지"와 같은 셈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신성을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상실(loss of self identity)하게 됨을 드러낸다. 이러니 외현의 세계에 집중한 듯 보이는 그림에서 외현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읽는 건 쉽지 않으나 유의미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 홍경한
봄 ● 복사꽃 필 무렵, / '봄'은 담장위로 스스로 다가왔다. / 담장너머 진홍색 묻어나던 어느 봄날, / 그렇게 '봄'의 생성은, 형형색색 단아하게 고왔던 기억이다. // '봄'은, / 담장과 담장 사이의 햇살이 원을 그리던 모습으로, / 소박(素朴)한 그리움으로 / 무소유의 설렘이 가득한 모습으로 / 소리 없이 '봄'은 그렇게 스스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흔히 볼 수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하려 한다. 인상 깊게 바라보았던 것들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의 크고 작은 변화들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존재의 의미가 있으며, 개인적인 사실들과 주변의 환경적인 여러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험에 의한 것들은 그 존재와 당위의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고 믿으며, 내 안의 낡은 관념들을 벗어 버리기 위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노트중) ■ 김형곤
Spring ● In the Peach_blossom time, / 'Spring' seems to come from a fence of itself. / One day in spring when there were bursting dark deep_red buds on the fence, trees were mixed with white pear blossoms, magnolia, and apple blossoms. The creation of 'Spring' has been in the beautiful, colorful, and graceful memory. // However, 'Spring' in my case has been an image of a light motion toward wait, with sunshine drawing a circle between fences and fences. For me, 'Spring' has been an image that emotion and beauty plant an aspiration of chaste longing, and it has been also a missing and fluttering image as I expected innocence to be remembered in the name of nonpossession. // The spring coming in that way is beautiful, and 'Spring' is getting close to us of itself in the blooming and falling image without any sound. ● In my work, I enjoy capturing the emotional sensation I see and feel from my surroundings. I hold a lot of beautiful and unforgettable images in my memory. I can feel small and big changes from what I was impressed. These memories mean they are existing in me. In other words it’s personal and it is linked as an organic environment to me. From my past, I believe it always has been there with its repeating rights. And it is a motivation I would want to come out from my old intentional mind settings. ■ KIMHYEONGGON
Vol.20170215f | 김형곤展 / KIMHYEONGGON / 金瀅坤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