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207_화요일_06:30pm
참여작가 강현선_권대훈_조소희_정정주_박용호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수애뇨339 SUEÑO 339 서울 종로구 평창길 339 Tel. +82.(0)2.379.2970 sueno339.com
터. 위. 꿈 - '터'와 '우리' 위에 짓는 '꿈',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단상 ● "꿈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꿈을 현실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더글러스 에버렛 Douglas Everett) ● 예술공간 수애뇨339에서 'SUEÑO(수애뇨)'는 스페인어로 꿈이라는 단어이다. 여기에서 꿈은 프로이트가 주목하였던 꿈이나 초현실적 환상과는 다르다. 그러나 사실 미술에서 꿈을 주제로 삼지 않게 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20세기 초, 기계 문명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보여주었던 미래주의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던 러시아 구성주의 이후, 미술사에서는 현실 도피의 의미에서 초현실을 그리거나, 또는 반대로 현실을 직시하는 흐름이 훨씬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꿈을 애써 배제하거나, 마치 꿈의 주제가 없는 것처럼 외면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는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도대체 무엇이 미술을, 그리고 사람들을 이렇게 꿈에서 멀어지게 하였을까? 누구나 꿈 꿀 수 있지만, 더글러스 에버렛의 말처럼, 그리고 모두에게 열린 예술 공간을 꿈꾸며 수애뇨 339를 설립한 대표 김재선의 가족들의 예처럼, 이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 사람들이 결코 많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물음은 꿈을 실현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추동력이 필요한지의 생각으로 번져갔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이 엄청난 힘에는 무엇보다 의지나 믿음, 인내가 필수 요소였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꿈꾸는 주체인 나뿐 아니라, 나와 관계되었고 나의 꿈에 동의하였던 사람들인 우리, 그리고 이들 모두가 함께 하는 공간인 터에 작용한다. 그래서 꿈은 터와 우리 위에서, 의지와 믿음과 인내를 통해 비로소 현실이 된다. ● 물론 꿈이 현실이 되는 시간은 지난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항상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하며, 그래서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는 불안과 동거한다. 의지, 믿음, 인내는 이러한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더욱 절실해진다. 그러나 한편 이와 같은 실패와 중단의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굳이 꿈을 예정이나 계획 대신 꿈이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터. 위. 꿈』은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 가운데에서 나타나는 꿈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에 관한 전시라 할 수 있다. 한 번이라도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 어느 날은 꿈꾸었던 이미지가 걷잡을 수 없이 머릿속에 피어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참담한 현실을 마주한 자신을 보며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경험하곤 한다. 또 나의 꿈이 덧없는 욕망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짚어 보기도 하며, 이러한 생각이 오래되다 보면, 어느덧 내가 꿈에 쫓기는 형국이 되어 있기도 한다.
참여 작가 중, 강현선은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의 이미지가 허상(虛像)의 일부임을 드러내는 실험을 지속해왔다. 강현선의 이미지 실험은 최근에는 도시의 거주 공간과 도시인의 삶으로 발전되었는데, 그의 아파트 시리즈와 수애뇨 3층에 전시된 영상작품 「Catch me if you can」이 이에 속한다. 여기에서 그는 욕망이 투영된 꿈을 향해 숨바꼭질하듯 쫓고 쫓기는 도시인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한편 권대훈의 작품은 주로 빛이 들어오는 창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인물을 소재로 삼는다. 여기에서 빛은 짧은 순간, 곧 '찰라'의 기록이다. 이런 짧은 순간은 대개 이미지로 저장되기 마련인데, 그는 이렇게 우리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가 견고한 실제의 재현이기 보다는 언제든 변형되어 흐트러질 수 있는 불안정한 이미지 혹은 우리도 모르는 순간에 꽤 많이 왜곡된 이미지일 수 있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도록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사실 우리가 꿈이라는 이름 아래, 나에게 덧입혀진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반성적 질문과도 유사하다.
박용호 작가는 자신이 경험하였던 다양한 공간의 축척을 그린다. 16번의 이사 경험이 있는 그에게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인 의미 이상의 것이다. 어떠한 공간이나 건축물들이 작가에게는 시간, 경험, 관계들이 얽히고 응축된 공간 즉, '터'와 같다. 때문에 작가에게 터는 그가 경험한 바대로, 낯설음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또한 터는 작가 자신의 투영물이기도 하고, 그의 그림에 첩첩 쌓인 건물들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면서,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한 축적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하늘 아래 하나의 덩어리로 놓인 이 축적물은 혼돈(chaos) 가운데에서도 안정과 정착, 평안을 바라는 작가의 유토피아적 꿈을 보여준다.
정정주는 박용호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하였던 공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그가 재현하는 공간은 체육관, 편의점, 백화점, 기숙사 등 특성이 있으면서도 일상적인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자 동시에 우리 자신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의 경험은 창이나 방의 크기, 빛의 조도 등을 통해서도 달리 경험되어지며, 이 보다 더 우선적으로는 카메라가 비추는 궤도에 따라 달리 경험될 수 있다. 때문에 대상을 완전하게 보고 싶어 하는 욕망 즉 일종의 대상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은 단지 카메라가 비추는 곳만을 볼 수 있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욕망과 순응, 도전과 무기력함 등의 상호 모순된 감정들이 수시로 교차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꿈을 향해 사는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그것의 한계, 그리고 이 때 겪게 되는 복잡한 정서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또한 공간을 생략한 권대훈의 인물 조각과 인물이 생략된 정정주의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실, 종이, 거즈 등 연약한 물질로 작업하는 설치 미술가 조소희는 이번 전시에서 1층 바텐(batten)에 실을 엮어 자욱한 연기처럼 보이는 형태를 만들어냈다. 마치 우리 머릿속에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는 꿈을 이미지화한 듯 보인다. 비록 한 가닥의 실은 연약하고, 가변적인 물질성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은 견고하고 정형화되어 있는 공간을 점유하고 잠식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실에 의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공간은 다양한 변화들을 수용하게 된다. 이것 또한 비물질적인 꿈의 이미지가 점점 실제가 되면서 물질의 세계, 현실의 세계를 점유해가는 꿈의 현실화 과정, 그리고 꿈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연상시키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존재와 물질,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도록 제안하며, 이처럼 꿈의 이미지같이, 보이지 않는 것, 연약한 것, 비물질적인 것의 추동력이 우리에게 보다 실제적이고도 감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 이상윤
Vol.20170207f | 터. 위. 꿈-예술공간 수애뇨339 개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