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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소격동 128-3번지) Tel. +82.(0)2.3210.1233 www.trunkgallery.com
앞서 말했듯이 고귀함과 거리의 파토스, 보다 높은 지배 종족이 낮은 종족, 즉 '하층민'에 대해 갖고 있는 지속적이고 압도적인 전체 감정이자 근본 감정 – 이것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도덕의 계보학』 2011, 28쪽)
이것은 퀴어가 아니다 ● 복장전도를 통해 서구 백인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진 작업을 전개해온 배찬효가 이번에는 마녀로 변신한다. 전작에서는 중세 고딕 양식부터 19세기 근대 복식까지를 망라하여 여성 귀족 복식을 중심으로 서구 근대사를 정교하게 재현하되 허구적 장치들을 그 안에 배치하여 복합적인 기호학적 해석의 가능성이 열어 놓았다. 한편 이번 마녀 연작은 기독교 문명 가장자리, 지리학적으로도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로 이동한다. 그는 마녀라는 타자 정체성을 서구 문명의 합리주의 배면에 숨어있는 위선을 고발하는 장치로 삼았다. 마녀의 탄생과 그들과 얽히고설킨 비화들은 과연 진실일까, 허구일까? 마녀의 존재는 지배 사상에 의한 인간의 믿음의 문제로 볼 수 있겠다. 유럽문화에서 마녀의 광기가 극심해진 것도 "먼저 종교개혁에서 생겨난 저항이 오히려 마녀 사냥을 불러왔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에 마녀 사냥의 정점을 이루었다."1) 마녀 사냥은 주류 엘리트 지식 권력이 비주류 민중 사회의 지혜와 경험을 법의 프레임을 통해 억압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고발은 마법에 대한 혐의로 세속재판소, 주교재판소, 종교재판소 등 모든 법정에서 자신들이 기대하는 대로 범죄 기록을 만들어 마녀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마법을 사회적 악으로 바꾸어 나간 것이다."2) 배찬효는 세계화, 다원화, 다중의 시대라는 주장이 현실의 모순을 감추는 가림막으로 사용되는 정치적 위선을 고발하는 또 다른 사회적 젠더로 "마녀"를 불러온다. 어쩌면 작가의 복장전도 역시 겉모습에 대한 일방적 해석에 오류를 일으키기 위한 장치일 수 있겠다. 동시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인 '마녀 사냥'과 '여성 혐오'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더불어 국정농단 사태와 마녀 연작을 연결한 해석도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 즉 배찬효 사진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지우고 그것이 일종의 화젯거리로 혹은 진지한 우스꽝스러움으로만 회자되지 않고 과거를 끌어오되 그것이 충실한 재현에만 무게를 둔 게 아니라 서양이 그들만의 동양을 구성하고 그들의 환상을 만족시키는 문학, 미술, 음악으로 둔갑시킨 것처럼 배찬효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드래그 퀸과는 달리 (그 결과는 흡사하지만) 서양이라는 타자를 복장전도를 통해 이중으로 전유한다. 그것은 부질없는 환상이자 이질적인 혼성교배이고 어쩌면 미래의 불안을 예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과학기술과 통계학의 발달은 오차가 적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확신을 선사하면서 논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에 의해 앞날을 설계하는 게 최근 일반화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섣부른 믿음이 또 다른 관점의 허구적 맹신으로 자리 잡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일관된 하나의 세계관을 요구한다.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한다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전근대의 잔재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든 발전과 선진화라는 환상에 눈이 멀었을 수도 있겠다.
배찬효는 영국 유학 시절 최초로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남성 이성애자에게는 흔한 경험으로 한 번도 자신을 분석하고 정체성을 구성해야 하는 내외부적 원인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에서 처음으로 동양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비대칭적 인종의 질서를 발견한다. 개인과 인종의 문제는 개인과 민족의 문제와도 이어진다. 배찬효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잔재하는 인종 차별과 타자를 향한 환상에 대하여 매우 복합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같은 물음은 육체라는 실존과 정체성이란 사회문화적 인식의 틀이 결합한 비정형적 젠더를 구성하는 단초로 이어진다. 사실 배찬효의 사진은 유사-젠더학의 기호를 이용하여 마치 드래그 퀸의 복장도착을 남녀에 부여된 고정된 규범과 질서에 균열을 만드는 젠더 정치학의 한 유형처럼 해석되곤 했다. 드래그 퀸은 성을 자연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자아가 스스로 성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성의 탈자연화를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드래그의 방식이 오로지 성 전환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고, 인종 전환, 사회적 계층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의 굴레에서 허구 혹은 환상의 시공간으로의 전환을 꿈꾼다는 것이다. 즉 배찬효의 복장전도는 단순한 여장남자라는 외형의 변화와 달리 동양남성이 유럽의 귀족 여성으로 변장을 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배찬효가 재현한 인물은 인종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질적인 육체를 보는 개인의 인식의 한계에 궁금증 또는 불편함을 일으키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사진 속 인물은 남녀/동서의 차이가 이중으로 전복된 상태다. 남자는 여자로, 동양은 서양으로. 단순히 젠더와 지역의 변화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거기엔 시간의 전복도 포함된다. 그러니 삼중 전복이라 불러야 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의 사진은 특별한 부연설명 없이 오로지 이미지만으로도 쉽사리 성과 시공간의 역전 혹은 전유가 이뤄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퀴어가 아닌 상태의 복장전도는 성역할과 복장의 비례 관계를 비튼다. 이른바 드래그(drag)의 정치학적 해석은 쥬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버틀러는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에서 드래그 무도장의 주인공들을 다룬 제니 리빙스턴(Jenny Livingston) 감독의 다큐멘터리 『파리는 불타고 있다』(1990)를 통해 여장을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미국인 남성 게이 정체성을 호출한다. 인종적 타자이자 성소수자 들의 가장무도회장은 일종의 경연장과 흡사했다. 그런데 이 드래그 퀸(Drag Queens)들 "대부분은 백인문화 속에서 계급의 징표들로서 성립되어 있는 것"3) 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버틀러는 백인 이성애 헤게모니의 동성애 혐오가 만약 여장 흑인 남성 동성애자의 여성화를 수용한다면 그것은 기존 헤게모니의 전유로 볼 수 있고, 이 전유는 지배 권력의 질서에 혼돈을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남성 이성애자가 여성을 전유하는 것은 성 헤게모니의 질서에 따르려는 여성이 되길 바라는 남성 동성애자의 태도와는 분명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한편 동성애 문화에서 복장전도는 자연으로서의 성 구조를 전복시키는듯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질서를 재모방함으로써 탈자연화된 육체가 다시 자연 상태로 인정받는 과정이었다. 『파리는 불타고 있다』의 감독이 여성 이성애자였다는 점을 버틀러는 유색 인종 드래그 퀸들을 섹슈얼리티 관점이 아닌 인종적 측면이 강조된 원주민의 관점으로 보고 있기에 오만한 입장을 취했다고 평가한다. 버틀러의 관점으로 배찬효의 사진을 해독해보면 그의 작업은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아니기에 퀴어적일 수 없다. 반면 복장전도라는 전복적 방식은 서양 문화권에서 동양 남성 정체성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드러낸다.
복장전도와 인종의 문제를 개인과 개인의 육체를 둘러싼 국가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확대해 보자. 민족국가라는 환상은 혈연에 의한 가계로 구성된 국가를 탄생시켰다. 민족 형성에 있어서의 근본은 다름 아닌 이성애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회일 것이다. 사회학자 서동진에 따르면 "섹슈얼리티를 생산하고 분할하는데 작용하는 힘은 바로 민족-국가라는 현실적인 가상(the imaginary)이라고 볼 수 있다. 성별 구분 없는 민족-국민이란 상상할 수 없다."4) 그렇다면 민족국가는 또한 인종과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아닐까? 이미 언급했다시피 배찬효의 복장전도는 이성애와 비이성애 사이의 차별적 장막을 치우려는 의지와는 무관하다. 그 이유가 반드시 작가가 이성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게다가 남성 이성애자가 여성을 모방하고 그를 통해 자아를 충족시킨다는 서사는 다소 식상하다. 배찬효는 스스로를 여성 백인으로 재현함으로써 젠더보다 우선적으로 인종적 편견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동양 남성이 백인 여성을 모방한다는 설정은 유럽의 구성한 오리엔털리즘이라는 환상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마치 동양이 전근대 서양의 시간을 이상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마녀를 선택한 이유도 서구가 스스로 자신을 논리와 이성을 토대로 한 문명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했다는 자부심을 앞세우면서, 그들이 잃어버린 낙원을 자신의 타자인 동양에게 일방적으로 투사했다는 점을 주목하면서부터였다. 즉 여기에서 복장전도는 일종의 문화적 기표로 사진 해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기제로 볼 수 있고, 실상 본 작업을 중심축은 동서 관계의 비대칭을 전유하는 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정현
* 주석 1) 이영수, 중세의 마녀사냥의 현대적 의의, 독일어문학 제31집, 2005, 150쪽 2) 위의 책, 151쪽 3) 쥬디스 버틀러,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인간사랑, 2003, 242쪽 4) 서동진, 퀴어이론의 이율배반, 여/성이론 통권 제27호, 2012.12, 264쪽
Vol.20170202d | 배찬효展 / BAECHANHYO / 裵燦孝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