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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5:00pm
갤러리유에이치엠 Gallery U.H.M.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60길 49 (후암동 358-17번지) 대원정사빌딩 4층 Tel. +82.(0)2.6677.5767 www.galleryuhm.com
부드럽고 커다란 관계의 방식 ● "이번 전시는 식물(자연)과 컴퓨터 폐자재(인공)를 사용한다. 어릴 적부터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컴퓨터안 회로판에 애정이 남달랐던 나는 식물을 장식의 요소가 아닌 기능 및 메시지 전달을 위한 도구로 작품에 적극 활용한다. 화려한 원색에 역동성을 가미한 회로 디자인은 인간의 관계도를 그려낸다......나는 매일 사회 속 인간관계를 생각한다. 다만 디자인한 회로로 구상하고 컴퓨터 부품과 LED재료로 사용하며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이다. 내가 하는 작업은 단순히 작품 속에 회로들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자연과 인간 사이에 특별한 감성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계를 위한 회로도'" (배수영)
1. 질문 ● 우리의 현실은 자극적이고 피상적이며, 사소하고 선정적이며, 부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심지어 경박하기까지 하다. 사려깊고 심층적이며 통찰적인 만남, 그러한 관계의 문화는 점차 그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실인식과 경험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고뇌하고 질문하도록 한다. ● 그런데 여러 우회로를 거치지만 결국 작가들이 제기하는 의문들은 하나의 주제로 환원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그리고 오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그러면 우리는 작가들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을 함께 공유해 나 자신의 질문으로 환치시킨다. 너무도 강력한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또는 적절한 대답을 찾았다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대답은 희미해지고 질문만이 뚜렷하게 부각되곤 한다. 인류역사의 위대한 사상가나 예술가들은 모두 뛰어난 대답보다는 공감과 보편성을 지닌 너무나 평범한 '질문'에 몰입해왔고 또 그 과정에 뛰어난 업적을 성취해냈다. ● 배수영 작가는 오랫동안 일본에서 공부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작가이자 기획자로 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공공미술 또는 관객참여형 전시를 많이 선보였는데, 미술관이나 갤러리 등 소위 화이트큐브 안에서의 전시보다 도시 곳곳을 전시공간으로 삼아 시민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미술관 밖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알려졌다. 기업과 정부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의 예술적 관점과 다른 입장의 소위 일상의 맥락과 관계를 맺고 협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환경이나 생태' 문제를 다루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를 고찰하는 계기로 삼아왔다. 이러한 예술관 비예술 또는 일상 비일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선입견 없는 열린 태도를 견지하며 시민들, 관객들이 자유분방하게 경험하고 참여하는 감상의 조건을 설계하고 연출하는데 집중해왔다. ● 배수영 작가가 모색해 왔던 세계는 작가 개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개인을 벗어난 '개인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또는 현상으로 채워진다. 개인을 벗어난 예술 활동은 필연적으로 개인과 개인, 타인들과의 '관계' 문제가 중요하게 숙고된다. '관계'의 문제는 단수의 세계가 아닌 복수의 세계들이 상호작용하며 운동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하나의 기능이나 의미에 갇혀있지 않고 예술의 다층적 의미와 기능에 대해 관찰하고 새로운 관계의 형식을 실험하고 구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층성과 복잡성이란 결국 프랙탈적 세계의 무한한 분화를 의미하며 한 개인의 정체성이나 한 사회의 정체성이 전체주의적 단일성으로 수렴하지 않은 채 긴장과 떨림을 유지하며 단순성과 복잡성 사이를 왕복하는 운동을 상상할 수 있다. 수학적 세계에서 펼져지는 무한 수렴과 무한 확산의 운동처럼, 정수 1과 2 사이를 분할하는 무한한 분수(分數)의 세계처럼 무수한 이미지와 사건들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에서 다섯으로 다섯에서 무한으로 점차 펼쳐진다.
2. 오원소(五元素)와 관계 ● 배수영 작가의 오원소를 보며 프랑스 영화감독 뤽베송의 SF영화 '제5원소(The Fifth Element)'를 떠올려도 좋다. 둘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SF의 기술적 환타지의 표면을 걷어내고 그 내부를 보면 결국 오원소란 자연(自然)의 다른 이름이고 자연을 이루는 기본 구조이며 구성요소이니 동어반복이거나 자연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이해를 반영한다. 뤽베송의 '제5원소'가 불, 바람, 물, 흙의 자연계의 요소와 만나 세상의 악을 일소하는 최종요소로서 인간의 '사랑'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점은 배수영작가의 '오원소'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배수영 작가의 '오원소'는 자연과 인간, 자연과 문화가 만나 전쟁이나 환경파괴 등 세상을 파괴하는 문제거리들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작업의 중심에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인륜성(人倫性)'이 자리한다. ● 그런데 이 '인륜성'이라는 공통의 사유에도 불구하고 '오원소'에 대한 해석에서 뤽베송과 배수영은 다른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다수의 요소가 관계를 맺고 각각의 요소로 독립되었을 때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관계, 힘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보편적 통찰이다. 일(一)과 다(多)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물론,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서구적 합리주의와 인문주의 전통과 동아시아의 사유의 차이인데, 뤽베송은 서구적 휴머니즘의 전통에 서서 다른 자연계의 요소들 보다 특별히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배수영 작가의 '오원소'는 수평적 관계를 보여준다. 한 요소가 특별히 특권적 위치에 있지 않는다. 다만 각각의 요소들이 제 나름의 타고난 본성을 잘 끌어내어 보다 '좋은' 사건와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배수영 작가에게는 그것을 위한 아주 특별한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 이렇게 관계의 문제가 중심인 작업은 하나의 조형적 효과나 그 완벽성을 향하지 않는다. 관계는 조형의 문제를 넘어선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매우 이상적인 관계란 본디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이나 현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현실 속에서 그 이상적 관계를 한 단초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이럴 경우 작가나 관객은 결코 작품의 조형적 요소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면의 정신적 또는 정서적 차원을 바라보게 된다.
3. 회로도(回路圖)와 자연 ● 작품 가운데 하나는 회로도 설계도의 중심에 마치 르네상스시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닮은 팔과 다리를 벌린 형태의 인간이 자리한다. 전자정보시대, 과학기술이 사람의 손을 대신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의 심장에는 이상적 인간이 자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통찰과 모색은 작가가 전통적인 화이트큐브에 머물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전시기획와 작품활동을 펼쳐나가는 인식적 토대인 것이다. ● 회로도는 기계장치의 두뇌에 해당한다. 또한 인간의 신경계를 모방하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전자정보기술의 핵심적 부품이며 과학과 기술의 상징적 이미지로 회로도를 해석해왔다. 배수영 작가는 회로도를 자연계의 오원소로 연결하며 환경생태계(자연)를 은유하는데 쓰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회로도를 현대의 건축적 풍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아가 거대한 도시로 비약하기도 한다. 작가들에 회로도의 이미지는 독립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설계도인 것이다. ● 무엇보다 회로도는 전자적 기능, 전자적 운동, 전자적 관계를 보여준다. 현대의 재료과학의 성취로서 작동하는 회로도는 작가의 작업과 전시를 통해 새로운 맥락에 놓이게 된다. 회로도는 자연의 삶을 벗어난 물질문명, 산업사회, 첨단 전자정보사회의 산물인데 배수영의 회로도는 거꾸로 자연을 지향한다. 나무와 꽃과 나비 등 자연의 형상을 닮으려는 회로도는 인류의 실종된 원형적 정서를 재현하려 한다.
4. 현실을 넘어서 ● 환경오염으로 파괴된 숲의 기울어진 나무를 형상화해 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마이크로 정원', 산업화의 산물인 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 파이프가 관객참여형 사운드 설치로 변모한다. 자연생태와 현재와 미래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산업사회의 위협을 미적 대상으로 순화시키거나 전치시킨다. ● 배수영 작가의 주제의식과 실천전략은 보다 사회적이며 보다 대중적으로 보인다. 내표하는 의미 이상으로 그것을 확산하고 공유하는 외연의 형식이 중요해 보인다. 조형예술가로서의 시각이 투사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회로도는 그 해석된 의미 이상으로 조형적 실험의 대상이며 감각적 경험의 장일 수밖에 없다. ● 전시 작품에 대해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매우 자세하게 작품의 의미와 메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시민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경험과 기획자로서의 경험의 영향일 것이다. 물론 관객은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와 다른 의미를 독해해낼 수 있을 것이고 또 매우 유쾌하고 따듯한 감성적 오브제나 이미지의 경험으로 전통적인 조형예술의 경험에 몰입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배수영작가 스스로의 작품의 이해와 설명은 매우 구체적이고 동시에 매우 시사적이다. 환경문제를 직접 언급하며 물질문명과 산업사회의 폐해에 대한 주목하고, 산업기술과 그 산물을 관객참여형 작품으로 재행하는 일종의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의 문화를 접목시키고 있다. ● 그런 방식으로 작가에게 현대예술의 다양한 조형적 형식을 활용해 산업사회의 산물을 그 기능이나 기술적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의 시각적 경험으로서 또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의 대상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 현실의 근본적인 구조적 위험과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 한다. 작가의 오브제와 이미지는 현실과 문명고발적 메시지를 넘어서 보편적인 조형원리와 채색, 미적 오브제로서의 대상으로 도약한다. 동시에 현대 예술이 사회적 예술로서 시민들이 창작과정이나 창작경험에 함께 참여하고 전 과정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한다는 작가의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 예술이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숙명을 껴안고 가기는 쉽지 않다. 우리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죽어가는 현실에 대해 따듯하고 희망을 주는 것들을 만드는 것은 미적이자 도덕적이다. 메시지가 있는 예술은 그 자리와 방향이 다르며 따라서 관계의 방식도 다르다. ■ 김노암
Vol.20170105e | 배수영展 / BAESOOYOUNG / 裵秀英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