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최정미
관람시간 / 10:00am~10:00pm
대담미술관 ARTCENTER DAEDAM 전남 담양군 담양읍 언골길 5-4(향교리 352번지) Tel. +82.(0)61.381.0081~2 www.daedam.kr
이번 전시는 '침묵의 땅' 이라는 주제로 사진에 가까운 유화기법을 이용해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 있는 문인환의 회화전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갯벌과 하늘은 그 색상과 느낌만으로도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지만 특히 '침묵'이라는 단어와 '땅'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갯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침묵'은 '말'의 하나의 존재양식으로서 사람들이 어떤 사항에 대해 타자를 향해 정확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며, 침묵하는 자는 끝없이 이야기하는 자보다도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있다. 또한 '침묵'은 하이데거 철학 사유 전체의 기반이기도 할 정도로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크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갯벌을 감상하며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자리에 회색빛 흙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벌판과 같은 외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과 그 역할들을, 그리고 그런 갯벌들을 수없이 찾아다니며 그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내려고 한 작가의 무한한 노력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갯벌은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시작되는 곳이자 대부분의 어류 및 무척추동물의 산란장이며 생육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종류의 물새와 조류들도 먹이와 휴식, 산란과 번식의 장소로 갯벌을 이용하는데 그 무엇보다도 갯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물에서 흘러드는 오염 물질을 걸러 내어 바다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는 자연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갯벌이 바다의 종착지이지만 정화를 통해 또 다른 시작이 반복되는 것을 생각할 때 작가는 갯벌 안에서의 모든 것들이 정화되어 소생하는 것처럼 그 안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메시지와 동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갯벌의 속성과도 같이 묵묵히 그려낸 자신의 그림들이 보는 이들에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그 소중함이 간접적으로 전달되어 어떤 치유의 힘이 되길 바랄 수도 있겠다. 'One's Reason for Being은 매순간 자연의 대상들을 바라보며 사유했을 작가 문인환의 삶과 정신에 주목하고 자연과 인간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해 성찰하며 기획하게 된 전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만화가를 꿈꾸다 그림에 빠져 영남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황토길, 논길, 산길을 그려오던 작가 문인환은 3회 개인전 이후 작가로서의 물음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다 우연히 떠난 여행길에서 하늘 아래 넓게 펼쳐져있는 갯벌을 발견한다. 순간 작가는 갯벌이라는 존재의 내면을 응시하게 되고 감추어진 것들 안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힘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 후 강화도 동막 갯벌을 시작으로 서해안의 섬들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며 '침묵의 땅'이라는 주제로 갯벌을 그리기 시작한다. 작가가 인간이란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 숙고하게 된 시점 또한 이 때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햇살이 구름 사이로 비치고, 먼 지평선에 길게 뻗어있는 갯벌사이로 물길이 보였다. 군데군데 놓인 돌덩어리들과 얽혀진 진흙들이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일 수가..., 물위에 투영된 모습의 반짝이는 갯벌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져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 아름다움에 심취되어 오랜 시간 자리를 뜰 수 없었다.(작가 노트中)"
헤겔은 철학적 사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존재'로 보았다. 이는 모든 것의 바탕에 있는 본질 또는 형상이라고 표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도 멀지 않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참된 존재이며 물리적 대상은 이 이데아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다. 문인환의 그림과 그의 사유를 미루어 보면서 나는 '침묵의 땅'이라는 주제를 작가의 이데아로 그리고 갯벌과 하늘을 그려놓은 그의 작업들을 이데아의 그림자로 보게 된다.
'갯벌'이란 단어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것의 존재와 부재를. 비움과 채움을. 비현실적 요소와 현실적 요소들의 경계를 그리고 끝없는 재생의 노력과 순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그림들은 그 어떤 주제보다도 많은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해주는 힘이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갯벌이 주는 외형적인 이미지의 재현을 넘어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자연과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실제적 이미지의 구체적 표현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 작가의 말이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문인환 작가에게 자연은 존재의 의미, 또는 생명의 근원에 대한 경외감과 같은 정서를 갖게 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지만 한없이 열려있는 그 무엇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 최정미
Vol.20170104f | 문인환展 / MOONINHWAN / 文仁煥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