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과 기억

송재진의 영주·경북미술 순례기   지은이_송재진

지은이_송재진 || 펴낸이_김진하 || 판형_24×19cm, 반양장 || 펴낸날_2016년 12월26일 ISBN_978-89-966435-8-6 || 가격_25,000원 || 펴낸곳_도서출판 나무아트

도서출판 나무아트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번지 4층 Tel. +82.(0)2.722.7760

에필로그 지방미술사는 한국미술사의 저변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미술사가 '관심 밖'으로 치부했던 지방미술사가 한국미술사와 별개로 존립했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미술사에 거론되는 대다수 화가들이 지방(지역) 출신들임을 감안한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그중엔 태생지에 대한 호의를 가진 분도 있고, 화업과의 인과를 부정했던 분도 있을 것이다. 노구를 이끌고 귀향하여 여생을 맡긴 작가도 있으며, 자신의 태생지와의 교감을 한 번도 이뤄내지 못하고 고인이 된 작가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작가들의 출신지는 지금도 예술 환경이 불모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출신이라는 의미만으로 '반사적 광영'을 누리려는 지방단체들도 없지 않다. 유족측은 무감한데 출신지역의 호들갑만 요란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막연한 흐름에 편승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유행심리가 빚어낸 풍속화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전시될 곳을 기웃거리는 중에 있다.

한국미술사가 배척했거나 외면했던 지방의 작가들, 그들의 활동 역시 한국미술사의 보이지 않는 한 축, 한 면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미술사가 존재하는 소도시라면, 그 대상과 근거는 어디에 두는 것인가. '지금, 여기'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만나게 되는 선배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살피는 일에서부터 지역미술사는 시작될 것이다. 그 민낯은 '자생'이라는 표정일 수도 '유입'이라는 몸짓일 수도 있다. '출신'이라는 그림자도 발견될 것이다. 이 모든 게 지역의 역사요, 스토리들이다. 그들은 지방미술사라는 시큰둥한 기록물 속에 첨가되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중앙의 이야기가 지방의 이야기와 동시에 흥미로운, 그러한 서사구조에 얽혀있기도 하다. ●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결국, 현재를 담금질하기 위함일 것이다. 현재란 '지금, 여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로컬이란 상황은 신 토착민과 출향인 모두에게서 각광받지 못할 때가 많다. 출향인들은 자신들 역시 신 토착민으로의 정착의지를 시험받고 있으며, 신 토착민들은 정주지역의 뿌리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지방(지역)사는 무심코 관심 밖의 일이 되고 있다. 지역은, 정주인의 삶이 더 드라마틱할 것을 원한다. 출신이라는 것은 상징에 머물 때가 많다. 한국미술사는 정주와 출신의 경계를 애초에 두지 않고 있지만, 지방의 미술사는 정주와 출신이 혼재되어 있다. 또한, 유명과 무명이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의 향기란 숨어있다고 해서 감춰지는 게 아니다. 향기의 원천이 곧 중심이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분권의식이다. 소도시라는 무풍지대엔 안주라는 풍토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를 의미하는 로컬의 상황은 진정성과 리얼리티가 부족해 보인다. 진정성이란 작가의식을 말한다. 경북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자연주의적 구상화풍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미감의 유전자로 이해될 만치 보편성을 갖춘 양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에 대해 시대정신이나 지역적 정체성, 표현의 토착성 등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직시하게 되는 것이 작가의 진정성 문제이고, 그 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만큼 아마추어리즘에 익숙해져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 화풍과 풍토를 '전통'의 연장으로 보는 이도 있을 수 있지만, 전통 또한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치열한 접점 속에서 진정한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구상 화단을 이끌고 있는 작가들 대부분이 대구ㆍ경북지역 출신 작가들이라고 하지만, 경북의 경우 정주작가를 중심으로 그 위상을 재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향토적 소재주의, 그리고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를 계승한 작품경향이 해방 이후 구상미술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면서 "목우회는 사실주의, 자연주의 경향이고, '구상전' 그룹과 같이 구상성을 띤 작가협회는 구상주의로 묶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경북의 구상미술은 여전히 '목우회'나 '신미술회' 풍의 작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지나, '구상전'과 같은 다양한 작업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보편적 경향성을 시대정신이나 정체성으로 환기시키려는 고민은 더디기만 하다. 미술평론가 김영동은 한 지역의 미술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격을 그 지역의 정체성으로 보고 거기서 당대의 시대정신과 로컬리티의 독자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지역민의 삶과 공동체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무풍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 송재진

중략… 이 책엔 대략 100여 년에 걸친 영주·경북미술의 줄기와 연관성이, 또 그 안팎의 뼈와 살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이합과 집산을 통한 다른 지역과의 교류, '정주'와 '이주'를 통해서 구축된 영주미술의 흔적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저자가 규명하고자 한, 중앙의 상대로서'지방미술'이 아닌 주체적 '지역미술'의 궤적과 특색에의 접근은 새롭다. 묻혀있다시피 한 지역미술의 생태적 독자성을 발굴하고 그 개념에 가까이 접근했기에 더 그렇다. 근대 이후 중앙 집중으로 인해 지독한 패권성을 노정해 온 한국현대미술의 기형적 진행 과정을 보면, 이 연구의 시점과 지향성의 가치가 더 돋보인다. ● 가치…. 사실 미술이란 그런 거다. 한 사회에 감성적·이성적·추상적 생산성으로 기능하는 거. 자신으로부터 바깥으로 또 외부와 내부를 왕래하며, 느끼고 상상하고 탐문하고 말하면서 말이다. 동시대를 대면하면서 과거의 흔적과 기억으로부터 미래의 시제를 지향하는 삶을 표현함으로, 타자의 생각과 자신의 내면이 부대끼고 교감하고 애정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엔 담장도 경계도 중심도 지방도 없다. 살아가면서 체험한 모든 것이 농축되고 기화되어서 그만큼의 언어로 배출되는 거니까. 그런 시공간을 더듬으며 헤매고 깨닫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작업이다. 이 책도 그림처럼 자기실존을 증명하는 재진의 작업 중 하나라고 하겠다.…중략 ■ 김진하

Vol.20161231a | 흔적과 기억-송재진의 영주·경북미술 순례기 / 지은이_송재진 / 도서출판 나무아트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