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 오픈스튜디오 Part4

조미향_송미진展   2016_1228 ▶ 2017_0101

조미향_Layers of Moments_캔버스에 먹, 아크릴채색_72.7×60.6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전展 & 오픈스튜디오 The 8th Artists-in-Residence of Yeongcheon Art Studio Relay Exhibition & Open Studio Part1-허지안_노기훈展 / 2016_1208 ▶ 2016_1212 Part2-정혜민_김수진展 / 2016_1214 ▶ 2016_1218 Part3-최경진_김교진展 / 2016_1220 ▶ 2016_1224 Part4-조미향_송미진展 / 2016_1228 ▶ 2017_0101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YEONGCHEON ART STUDIO 경북 영천시 왕평길 38(교촌동 298-9번지) Tel. +82.(0)54.330.6062 bbmisulmaeul.yc.go.kr

조미향 : Figure Origin 形의 기원 우연적 필연 _ 지도를 던지다내 작업은 마치 지도를 던져 버린 여행자의 여행과 같이 진행된다. 빈 화면 앞에서 나는 첫발을 용감하게, 무모하게 내딛는다. 거기서 비로소 사건은 시작된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 조미향의 작업은 예기치 않은 일을 맞닥뜨려 당황하고 방황하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가는 여행과 같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알 수 없는 여정이다. 때문에 작가는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의 매 단계에서 즉흥적이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캔버스에 밑작업을 하는 순간부터 붓의 크기를 생각하고, 색을 더하는 과정마다 어떠한 색을 어느 정도의 농도로 할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그러나 캔버스에 붓을 터치하는 순간 작가라는 주체적 존재가 강하게 자리하게 된다. 몸이 향하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붓을 옮겨가며 계획된 곳이 아닌 자유로운 공간에 신체의 움직임을 담는다. ● 작가의 작업에서 무엇을 그리겠다는 문제는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빠르게 건조되는 아크릴물감의 특성과 작가의 신체적 행위라는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작가는 자신의 함축적 감정과 직관적 태도를 그리는 행위로 옮기고, 행위와 의식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에 따라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 강렬한 색면 위의 경쾌하고 유연한 선, 혹은 묵직하고 힘찬 붓질에서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고 거침없이 공간을 채우는 일필휘지의 힘이 느껴진다. 그렇게 수많은 선과 면, 색이 얽혀 예상치 못했던 조화로움을 발견하는 순간 붓을 멈춘다. 신체와 재료, 작업 과정의 우연성이 필연적으로 맺어지는 찰나, 이때가 작업의 완성이다.

조미향_Layers of Mome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_193×130cm_2016
조미향_Layers of Mome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_193×130cm_2016
조미향_Layers of Mome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_193×130cm_2016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수히 반복되는 작가의 행위와 겹겹이 쌓아올린 물감의 흔적이 지난한 과정의 결과물로 화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러나 캔버스에는 어떠한 구체적인 형상도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한 형상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여러 층의 색면, 혹은 선의 흐름은 상호 작용하고, 각각의 층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정교하게 결합되어 예기치 않았던 조형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리드미컬한 붓 터치와 다채롭고 화려한 색채, 역동적인 움직임은 작가의 무의식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의식화하는 과정으로 작가는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듯 보인다. 몸을 움직여 대상과 소통하는 행위는 본능적이며 감각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일종의 유희적인 행위로써 그 자체의 즐거움이 작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조미향_Layers of Moment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먹_193×130cm_2016

작가는 물감과 붓이라는 재료와 직접적으로 교감하며 재료의 물성과 작가의 육체가 하나가 된 노동집약적인 작업을 완성한다. 작업의 개념과 기교가 넘쳐나고, 예술 장르 간의 경계가 해체되어 회화의 순수성이 상실된 오늘날, 조미향 작가는 시대의 흐름을 좇기보다는 자신만의 미감을 완성하기 위한 회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작가의 작업은 구상화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써 형상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있고, 점, 선, 면, 색채 등의 표현을 목표로 하는 듯 보여 '추상화'라고 칭해진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분히 추상화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것만으로 그녀의 작업을 추상화로 한정하기에는 작가의 조형 언어와 내적 감성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작가의 작업에는 의도되지 않은 우연에 의한 필연이 존재하고, 자유로운 신체적 행위와 본능적 감정의 절제된 표현이 한 화면에서 긴밀하게 상호 작용한다. 화면에 존재하는 대립적 에너지들은 전적으로 오랜 기간 숙련을 쌓아온 작가에 의해 생동감이 부여되는 동시에 긴장감을 자아낸다. 작가는 "지층 아래의 두더지의 몸짓과 공중의 독수리의 궤적처럼 서로 무심하게 그러나 크게는 함께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고 언급한다. 대립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화면에 농밀하게 구성되는 지점이 작가의 작업을 아우르는 고유한 속성이라 할 것이다. ■ 이민정

송미진_Dial_캔버스에 유채_27.3×22cm_2016
송미진_기억의 방식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6
송미진_숨_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16

송미진展 / 그림자의 숲 세상에는 누구나 바라는 행복한 광경이 있다. 그게 흘러간 시간 속에 자리 잡은 추억 속 한 장면일 수도 있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날에 관한 소망일 수도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라면 그것은 현재로부터 벗어나려는 이상향일 수도 있다. 젊은 화가 송미진이 화폭에 담는 상황도 바로 그런 탈현실성의 시공간이다. 이 그림들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건 그냥 내 느낌이다. 이 작가가 그려가고 있는 작업은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 왕자의 여성 버전 같다. ● 하나씩 살펴보자. 그녀가 선보인 거의 모든 작품들은 그 자체가 공통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것도 여러 정황이나 대상을 묘사하면서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작가는 그림이 일종의 독백이라는 형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어쩌면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불안으로 격상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화면은 캔버스의 결이 도드라진 것처럼 가로세로의 짜임이 거친 경우가 많다. 또 한 편으로 그것은 붓질을 통하여 몽롱하면서도 부드러운 묘사가 이루어진다. ●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아이가 혹시 본인을 투영한 게 아닌가라고 작가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그녀는 꼭 그렇진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작가는 본인을 넘어선 여성 일반의, 그 세대 일반의 보편성을 그려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송미진 작가 본인은 그림 속에 나타난 특정한 존재 속으로 슬그머니 동일시하는 태도를 함께 취한다. 이런 특징은 그녀가 회화를 자기 삶의 불안으로부터 방패막이로 삼아왔을 것이라는 추측된 이력을 보여준다.

송미진_숲의 의미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6
송미진_파편_캔버스에 유채_각 15.8×22.7cm_2016

우리는 작가가 녹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숲과 나무와 풀의 색, 그리고 결코 밝지 않은 그 색조의 무게. 그 녹색의 어두움 속에서 발하는 빛은 우리가 가진 희로애락의 메타포를 전부 빨아들여 침잠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녹색의 숲에 드리워진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이 어둠의 숲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퇴행적인 취향으로 비춰질 만큼 동화에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본인이 거쳐 온 삶을 뭔가 신비롭게 꾸미려 하진 않는다. 또한 그녀는 일상의 현실, 그러니까 경상북도 영천에서 일 년 동안 머물면서 창작활동을 벌이는 생활 속에서 스스로가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좀 더 진전된 발상을 하는 과정을 곧장 그림 속에 묘사하진 않는다.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 어쩌면 관객은 그가 들려주는 어두운 숲에 관한 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녀의 그림은 모호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름 지을 수 없는 모호한 감정들은 어디에서 근원하는가?" 내가 볼 때 이름 붙여 확정되는 그 순간에 그것은 확증되는 게 아니라 죄다 없어지고 만다. 그녀는 항상 모호함의 문턱에서 머물려고 한다. 이 회화의 형태는 예컨대 고독한 소녀를 중심으로 구축되었지만, 논리성이 결여하고 있다. 송미진은 예컨대 현실 속에 주재하는 숱한 인물이나 사건을 직시하여 묘사하는 데는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또 동시대 미술이 가리키는 여러 가지 개념의 확장이나 매체 실험을 행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가 아니라, 그렇다. 하지만 지금 본격적인 단계를 시작하는 작가 송미진에게 처음부터 또 다른 무엇을 바랄 것인가? 작가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눈에 보이는 세계 뒤에 숨겨진 것은 무엇인가?" 이 말은 미술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많은 작가들이 품은 물음이며, 결국 숨겨진 무엇을 찾아내는 예술의 과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한 원점이다. ● 이 짧은 글에서 내가 내리는 결론은, 모든 예술가가 결국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이 세계를 관찰하고 있고, 작가도 좁게는 이 예술의 세계 속에 포함된 이상, 자신이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본인은 굉장히 주관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늘 그래왔다. 이제 남은 숙제는 같은 의지를 다른 방법으로 보이는 일이다. 레지던시 결과보고 전시회에 해당하는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가 공개한 연작들은 모든 형상이 아직은 여린 작가 내면의 삶에서 비롯된 몽상일 뿐이란 점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꿈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우리에게 권유하는 가장 매혹적인 '기억의 방식'인 셈이다. ■ 윤규홍

Vol.20161228b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 오픈스튜디오 Part4-조미향_송미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