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CROSS

이광기展 / LEEKWANGKEE / 李光基 / video.installation   2016_1220 ▶ 2016_1230 / 일요일 휴관

이광기_판사보다 교활한 범죄자_네온사인_2m 이내 벽면 설치_2016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530i | 이광기展으로 갑니다.

이광기 홈페이지_www.NewRemake.com

초대일시 / 2016_1220_화요일_06:30pm

후원 / 부산문화재단 협찬 / 데자뷰영상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폼 GALLERY FORM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1로 9 롯데갤러리움 E동 309호 Tel. +82.(0)51.747.5301 www.galleryform.com

리얼한, 더 리얼한, 보다 더 리얼한 - 게으른 작가에 대한 변(辨) ● 『1+1 & Cross』는 삼 년 만에 열리는 이광기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의 나이가 불혹이 훨씬 넘어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으니 중견작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중견작가라고 하기에 여섯 번에 불과한 개인전 숫자는 다소 적은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이를 두고 본인이 게을렀기 때문이라 이야기하는데, 그를 옆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전혀 그것이 아니었음을, 아니 오히려 성실하게 작업에 임하는 작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머피의 법칙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게으름뱅이한테 시켜라. 그러면 그가 아주 제일 쉬운 방법을 제시해줄 것이다.' 그것처럼 저한테 작업도 머릿속으로,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으로 가지고 놀다 가지고 놀다, 다르게 말하면 구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다가 전시 기회가 닿으면 계속 뱉어내는 그런 패턴으로 계속 작업을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가 본인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지 이젤 앞에 앉아 캔버스를 채워나가거나 작업실에 앉아 돌, 나무를 깎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대는 예술가에게 그런 장인 같은 자세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자세 외에도 이광기 작가의 방식 또한 현대예술에서 설득력을 가진다. 현재 그의 작업노트에는 250여 개가 넘는 여러 구상들이 있고, 그 250여 개가 넘는 구상들에는 수정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그의 말을 빌려) 머릿속에서 얼마만큼 가지고 놀았는지 알 수 있는 흔적들이다.

이광기_아디다스 수녀복 그리고, 나이키 승복_ 오브제(수녀복, 승복)_2m 이내 벽면 설치_2016

우리는 이제 이광기를 작가로 받아들이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몇몇 단체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물을 만들어주는 속히 업자로 더 인식되었다. 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선택한 업에 시간을 많이 할애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광기가 사람들에게 작가로 알려지게 된 것은 37살의 뒤늦은 나이로 2008년 제30회 『중앙미술대전』에 선정되고 나서부터이다. 이광기는 김아영을 비롯 노세환, 박은하, 이원철, 정승, 한석현 등 현재도 미술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쟁쟁한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중앙미술대전』에 지구에 가운데 손가락을 반복해서 쑤셔 넣는 영상작품인 「지구는 여러분 모두의 것이에요」(2008)와 자동차로 도로 위를 달리면서 인식되는 것들을 영상으로 구현한 「인식(認識)_버릇없는 쇳덩이들」(2008)로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정헌이 교수는 "이번 심사기준은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정한지, 그리고 얼마나 소통 가능한지였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라 어렵게 이야기하는지, 어려운 말도 쉽게 하고 있는지,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지, 정말 쉬운 말이라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어려운 말도 쉽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는데, 실제 그의 작품은 이 상을 받기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도 누구든지 쉽게 접근을 할 수 있는 친절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물론 작품들이 친절하다고 그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충분히 사회학적이고 정치적인데다 더 나아가 철학적인 내용까지 작품에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념이니 개념이니 하는 저기 어딘가 먼 곳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작가로 그리고 또 업자로 살아가면서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의 삶이 바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경남도립미술관 김재환 학예사는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 『대극장 영상미술전_세상의 빈틈』(2013)의 서문에 이광기의 작품은 일상에서 시작한다며 "철학자들처럼 거창한 개념으로 세상을 분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설프게 만들어진 문화와 전통을 날 것의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적고 있는데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광기_개입할 수 없는 영역_단채널 영상, HD_00:05:57_2016

이광기는 이제까지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면서 『중앙미술대전』의 결과보고전 성격을 띈 『REWIND』(2008, 채스아트센터)를 제외하고는 모두 프로젝트 형식의 전시를 열어왔기에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작가에 대한 글 역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품 개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글이 많다. 물론 이번 전시 『1+1 & Cross』 역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작 일곱 점을 비롯하여 1회 노출에 그친 전작 두 점까지 총 아홉 작품이 발표되어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광기_진실을 보증하는 비디오_단채널 영상, 오브제, HD_00:03:30_2016

더하고 섞이고 교차하는 것들 ● 전시에는 아홉 작품들이 어떤 특정한 시나리오 없이 배치된 듯 보여 진다. 각각의 작품들은 형식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기 때문에 자칫 한 작가의 전시가 아니라 여러 명의 기획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집중해서 보면 각기 다른 작품들은 카테고리로 묶이게 되고 결국에는 한 주제로 읽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 우선 전시제목인 '1+1 & Cross'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자. 「아디다스 수녀복 그리고 나이키 승복」(2016)과 3분30초의 단채널 영상「황금심장」(2013), 그리고 UHD TV에 정지화면을 띄운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거북이」(2016)가 그것인데, 「아디다스 수녀복 그리고 나이키 승복」은 수녀복과 승복을 전문 의상점에서 맞춘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 로고를 새겼고, 「황금심장」에서는 3D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황금색 심장이 박동을 하며,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거북이」는 서로 같이 활동하며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현대예술의 두 거장,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를 한 작품에서 만나게 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작품에 활용된 것들이 그것이 동시대이든 중세이든 가까운 과거이든 모두 각 시대를 상징하는 일정의 기호들이라는 점이다.

이광기_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_ 프로젝터 8대, 다채널 영상_2m 이내 가변설치_2016

신작이지만 이전 다른 전시에서도 봤을 법한 '연작'에 해당되는 작품들도 있다. 우선 각 몇 백만원이 넘는 프로젝터 8대가 쓰였지만 고작 히터 역할밖에 하지 않는 「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2016)는 이전 2009년 제9회 『송은미술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인 「세상은 생각보다 허술하게 돌아간다」(2009)라든지 2013년 『대극장 영상미술전_세상의 빈틈』에서 발표한 동명의 「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2011)와 오버랩 된다. 『송은미술대상』에서 작가는 고작 바람개비 하나를 돌리기 위해 다섯 대의 트랜스를 연결하여 구형 110v 선풍기를 돌리는 작품을 선보이며 겉으로는 잘 짜여 있는 듯 하지만 속내는 비합리적이고 모순이 가득 찬 사회를 빗대어 표현했고, 『대극장 영상미술전_세상의 빈틈』에서는 정성스럽게 회를 준비한 후 상으로 내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는 영상을 제작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풍토를 과장해서 보여주었다. 이번 작품도 사천만원이 웃도는 히터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꼬집고 비틀고 있을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이어 단채널 영상 「인식(認識)-신문을 보다」(2011)는 『중앙미술대전』 이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인식」 시리즈 중 하나로 보인다. 각각의 「인식」 작품들은 다른 소재와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작가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화면에 문자로 보여주는 방식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같다. 이전 작품들은 운전을 하며 드는 생각들을 읽게 하였다면, 이번 작품은 작가가 신문을 읽어가며 하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시리즈로 네온사인으로 문장을 쓴 작품 「판사보다 교활한 범죄자」(2016)도 있다. 작가는 네 번째 개인전 『내가 니를 어찌 키웠는데』(2010, 대안공간반디)를 시작으로 네온사인으로 간단한 문장을 쓰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해왔는데, 이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네온사인이라는 화려한 시각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을 뒀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방식을 하나 추가하였다. 네온사인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을 색으로 구분해 아래를 먼저 읽고 위를 읽으면 '판사보다 교활한 범죄자'로 읽혀지겠지만, 왼쪽부터 세로로 읽으면 '범죄자보다 교활한 판사'로 읽혀진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읽어내고 인식할 때, 우리의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는 개념에 의존해 읽어내곤 한다. 그것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 작품은 사람들의 이런 상태를 잘 인지하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누군가의 개념에 판사가 범죄자보다 더 교활하다면 '범죄자보다 교활한 판사'로 작품은 읽어질 것이고, 범죄자가 판사보다 더 교활하다고 생각한다면 작품제목처럼 '판사보다 교활한 범죄자'로 읽힐 것이다.

이광기_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_ 프로젝터 8대, 다채널 영상_2m 이내 가변설치_2016

이 외 전혀 새로운 작품들도 있다. 5분57초의 단채널 영상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을 위한 에스키스」(2016)는 세면대의 물을 24시간동안 틀어놓는 것을 촬영한 영상으로 계속 소비되는 물을 잠그고 싶은 관람객의 욕망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잘못된 것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고, 그것들을 우리가 인지는 하고 있지만 관여할 수 없거나 혹은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은유한다. 순금이 들어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석고 오브제와 그 석고 오브제에 순금을 담는 과정을 촬영한 3분30초의 단채널 영상이 함께 설치된 「진실을 보증하는 비디오」(2016)는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실인지 묻는 작품이다. 뒤에 언급을 하겠지만, 작가는 미디어의 지배에 의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실'이란 아니 '실재'란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묻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작품에 비해 비교적 러닝타임이 긴 8분41초의 단채널 영상 「개미나 사람이나」(2016)가 있다. 부산의 한 대형 유통업체의 옥상 주차장을 오전부터 밤까지 하루의 영업시간 동안 촬영한 영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차량들은 하나하나 각기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라인을 따라 주차하고 나갈 수밖에 없음 그리고 그 모습이 개미떼를 닮아있음을 이 영상은 보여주고 있다. ● 이상이 이광기 작가가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품들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 인식의 문제, 기호의 문제 등 각기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어 전시가 다소 산만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작품에 풀어진 여러 문제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작가가 이 사회를 살아가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작가로 대처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큰 주제로 종합된다.

이광기_개미나 사람이나_단채널 영상, HD_00:08:41_2016

보다 더 리얼한 삶을 위하여 ●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이미지로 둘러싸인 '이미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을 위시하여 TV, 컴퓨터, 인터넷, 거대광고판 등은 우리가 이미지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도래한 이 이미지 사회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기에 그것이 문제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의 진지한 학자들은 이미지 사회가 도래한 음흉한 원인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병폐들을 지적하며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것도 어언 50여년 전부터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기 드보르(Guy Ernest Debord, 1931~1994)가 있다. 기 드보르는 이미지로 둘러싸이게 될, 아니 이미지로 둘러싸인 사회를 '스펙터클의 사회'을 가져올 것이라 얘기하며,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인간은 능동적 주체가 되기보다 이미지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인간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이광기_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거북이_UHD TV에 사진_2016

이광기 작가는 명확히 우리가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여러 작품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인지하여 그 속에 파고들어 실재를 구출해내는 일, 그리하여 우리의 리얼한 삶을 다시금 인식하게끔 하는 일을 작품들을 통해서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진실을 보증하는 비디오」는 실제 오브제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이미지(여기서는 영상) 없이는 그것이 진짜라고 믿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재 과연 실재는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또 「인식-신문을 보다」는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안의 내용보다는 단지 이미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에 우리가 개입하는 정도가 매우 수동적임을 또한 지적한다.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을 위한 에스키스」 역시 바라보기만 하는 스펙터클 사회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잘못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인지는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볼뿐 어디에서부터 그것을 고쳐나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라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드보르가 지적한 스펙터클 사회 인간의 전형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어이없이 돌아간다」와 그 이전에 제작되었던 시리즈들 역시 외형만 그럴싸한 스펙터클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광기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스펙터클 사회를 지적하고 반영하고 개입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민중미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과 다르다. 전자의 작가들이 역사적인 특정한 사건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면, 이광기는 사회의 모순점은 어디인지, 무엇으로부터 그 모순이 시작되었는지 우리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큰 틀을 짚어낸다. 작품의 어설픈(?) 외형 역시 스펙터클에 저항하는 작가의 제스처로 보인다. 이광기는 아트센터 나비와 전시를 앞두고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 전시장을 자동차 모터쇼라고 가정을 했을 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아우디니 벤츠니 가령 그런 류의 아주 고급스러운 작품들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반면에 이제 제 작품이 있는 부스를 딱 갔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면 활어차, 횟감을 싣고 다니는 그런 트럭, 그런 느낌처럼 어찌 보면 날 것처럼 보여지더라고요. 그게 제가 작업하던 유형하고 좀 닮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광기_1+1 & CROSS展_갤러리 폼_2016

'활어차'에 비할 정도로 거친 작품의 마감은 굳이 치장하지 않는 작가의 성격이 제작에 반영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외에도 이미지의 폭력 앞에 이미지를 축소하고 간소화시킴으로써 스펙터클 사회에 저항하는 태도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주요미술비평지인 『옥토버』의 필진 부흘로(Benjamin H. D. Buchloh)는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를 보고 비디오 아트가 강세였다고 말하면서 모더니즘에 반(反)해 나온 비디오 아트가 강력한 시각적 효과와 함께 과거 모더니즘의 제의적인 성격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광기는 영상작가이고 또 설치작가이지만 특유의 마감으로 이런 비판에서 비껴가 있는 작가이다. ● 전시제목에 쓰인 '1+1'은 우리가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로 판매상품에 '덤'으로 하나를 더 준다고 소비자를 유혹해 수익을 올리려는 마케팅 전략이다. 우리는 대개 필요에 의해 마트나 편의점에 가서 상품을 구매하지만, 이 마케팅 전략에 속아 필요 없는 상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 '덤'이라는 것이 우리의 합리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과 작가의 작품세계를 연결해서 살펴보면, 우리의 삶에 이미지가 덤으로 왔다는 사실과 그 이미지가 리얼한 삶을 대신해 우리의 눈앞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라는 굴지의 브랜드가 광고를 할 때, 상품의 품질보다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을 내세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주목해보자. 우리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지 실제 상품을 소비하고 있지 않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새겨진 수녀복과 승복의 의미, 자본을 상징하는 황금으로 뒤덮어진 생명의 상징인 심장이 가지는 의미, 그것이 섞이고 교차하며 공유되는 것의 의미 이 모든 것은 그렇기에 스펙터클 사회와 관계되어 있다.

이광기_1+1 & CROSS展_갤러리 폼_2016

이런 스펙터클 사회에서 우리가 이미지 속에 갇혀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고,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하는 리얼한 우리의 삶을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무의식적으로 길들어져서 이미 익숙해진 우리들을 그 속에서 빼내어 보다 더 리얼한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 과연 있기는 한가?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보다 더 리얼한' 삶은 과연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고 가긴 하는 것인가? 작가 이광기는 이에 대한 답을 주진 않는다. 단지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인지하고 마주할 것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 이보성

Vol.20161225e | 이광기展 / LEEKWANGKEE / 李光基 / video.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