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양승규 블로그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6_1223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갤러리 세인 GALLERY SEIN 서울 강남구 학동로 503(청담동 76-6번지) 한성빌딩 2층 204호 Tel. +82.(0)2.3474.7290 www.gallerysein.com
기억이란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것은 아마도 망각일 것이다. 망각을 중요시하고 기억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니체에 의하면 기억은 수동적 능력으로 보았고 망각은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인 힘, 기억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투쟁으로 보았다. 그러나 해체주의 철학자 데리다는 '수동적 망각'과 '능동적 망각'으로 구분했다. '수동적 망각'이 무조건 잊는 체념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능동적 망각'은 기억과의 소통을 통한 창조적인 능력이다. 우리가 시공간이 똑같은 과거를 회상할 때면 동일하게 기억을 하지 못하고 언제나 다르게 기억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상황과 연관되어 항상 끊임없이 재배열되고 갱신되기 때문이다. 기억 자체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이어서 분절되고 파편화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의 갱신은 기존의 에피스테메(epistēmē)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기억에 주목을 했던 베르그송은 기억을 '습관기억'과 '이미지기억'으로 분류했다. 습관기억은 운동능력이나 언어능력과 같이 반복적인 노력이나 훈련이 필요한 몸의 기억인 반면 이미지기억은 어떤 노력 없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이다. 즉, 습관기억은 외부환경의 자극에 반응하기 위한 목적과 필요성을 가지고 보존되고 있기 때문에 유용성과 관련이 있고 이미지기억은 그 자체의 본질적 필연성에 의한 무의식과 관련을 맺고 있다. 따라서 습관기억은 신체에 종속되어 있는 기억이고 이미지는 정신적 기억이다. ● 이러한 이미지기억은 시간과 지속의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이때의 시간은 누구나가 측정하고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과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주관적 시간으로 나뉜다. 주관적 시간은 기억에 의해 과거와 현재를 매개함으로써 현재로 소환된 과거가 나란히 공존하면서 현재가 생성된다. 즉, 현재는 과거의 연속적인 질적 변화인 지속이며, 창조적인 생성의 순간이다.
순간적인 찰나의 흔적인 이미지는 지각을 통해 기억으로 남는다. 이러한 기억은 파편화된 이미지로 남지만 무의식적으로 상기되었다가 재생성 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편린(片鱗)을 현재로 소환하여 다시금 생성의 과정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그것은 주관적 시간의 찰나의 흔적에 가감(加減)함으로서 형성되는 창조적 행위이자 자기성찰이요, 소통의 과정이다. 즉, 이러한 기억의 재생성 과정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며 타자와 연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나와의 소통은 새로운 주체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자아의 정체성을 정제하고 새로운 세계, 즉 타자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 역량을 발휘하도록 한다. ●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기억의 잔상(혹은 편린)을 통한 재생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 불완전과 불확실은 질적 변화를 야기하는 초석이다. 찰나의 순간에 흔적으로 남은 과거의 이미지가 기억을 매개로 현재로 소환될 때마다 연속적인 변화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억을 매개로 현재로 소환된 과거의 이미지는 나의 작업에서 색채적인 측면과 형태적인 측면에서 표출된다. 색채의 조형성은 내 자신과 끊임없는 소통의 과정을 거친다. 과거 경험에 의한 찰나의 흔적으로 남아 부유하던 색채는 지금 이 순간 소환됨으로써 새로운 경험의 흔적으로 색채가 덧씌워진다. 미묘한 차이를 가진 개별적인 각각의 색채들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서 고유한 특성을 발현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각각의 색채는 정교화된 사각의 형태에서 동일한 넓이를 갖는 반면 서로 다른 톤을 갖는다. 이는 하얀색의 띠로 인해 더욱더 견고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그러나 독립된 색채의 넓이와 톤은 단일성의 성격을 부여받은 부분을 벗어나 전체로 통합될 때면 음악적 리듬과 문학적 운율을 가져다준다.
또한 곡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각의 형태를 밀도 있게 구성한 새로운 조형미의 재현은 단절과 소통을 드러낸다. 엄격한 규격의 사각의 형태는 자신의 주변과 소통하지 않은 채 외롭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조각난 기억의 편린은 상호간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야만 유동적 표현의 구조가 완성된다. 부분을 벗어나 전체로의 통합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각각의 색채들이 녹아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해지는 융합(融合, Convergence)의 과정이다. 그럼으로써 곡선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곡선의 형태문제를 다양한 색채의 평면으로 대체함과 동시에 거리와 공간에 따른 이미지의 변주는 다양한 지점들을 심미적으로 형상화한다.
우리는 눈앞에 나타난 현실을 각기 다른 색채로 남긴다. 이는 그 당시 내부의 감성과 외부의 상황에 따라 어떻게 현실을 바라보는가에 의한 순간적인 찰나의 흔적이다. 마주친 현재의 경험은 구체적인 사실인 반면 기억으로 남은 과거의 경험은 추상적인 감성이다. 책꽂이에서 책을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축적된 경험을 선택하여 현재로 소환하는 행위는 내 자신과의 부단한 대화를 시도한 노력의 결과인 interactive한 소통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소환된 과거의 이미지는 사각의 형태인 단순한 구조와 직관적으로 선택한 색채의 조합으로 재생성 된다. 이는 내 자신의 소통에 의해 재탄생한 기억의 잔상(편린)이 타자의 경험과 기억 등과 소통하는 관계를 통해서 미완성된 의식의 존재성이 열리는 열린 공간을 제공한다. 이로써 작품은 내 자신의 의식과 타자의 의식 간의 경계에 존재한다. (2016. 12.) ■ 양승규
Vol.20161223d | 양승규展 / YANGSEUNGKYU / 梁承珪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