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1208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YellowOchre(김승회_이인희_서자유_허동욱) 송봉화_김만수_김성미_김해리_이홍원_최규락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충청북도_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5:30pm / 월요일 휴관
쉐마미술관 SCHEMA ART MUSEUM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로 241 Tel. +82.(0)43.221.3269 schemaart.net
미호천-현산어보 Part2 『낙토』는 충북의 젖줄인 미호천을 중심으로 자생문화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리서치 기반으로 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팀 YellowOchre(김승회, 이인희, 서자유, 허동욱)는 2014년부터 미호천 유역에 형성된 마을모습들을 비보(裨補;마을의 안위와 관련된)들의 관점으로 자생문화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도심의 확장과 개발위주의 정책으로 변해가는 지역의 문화유산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라져가는 봉산리 옹기가마터의 기록과 현장중심의 전시를 통해 자생문화의 가치를 재논의해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옹기가마터에서 진행하였던 두 차례의 전시와 YellowOchre의 기록(사진&영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습니다. ■ 쉐마미술관
"무형문화재 박재환 옹기장의 소유 점촌마을 전통옹기 가마와 공장이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문화재청으로부터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가 요청되므로 박성일을 문화재 지킴이로 위촉합니다." (2009년 7월 1일, 문화재청장 이건무) ● 이 내용은 썰렁한 가마 옆에 문화재청장으로부터 문화재지킴이로 위촉받은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총괄하고 있는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문화재 지킴이 대상지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다머에 의하면, 미적인 것의 시간성의 문제는 변화 속의 지속이라는 예술작품의 의미연속성이다. 그는 변화 속의 지속을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예로 축제를 든다. 축제는 과거의 사실로 머무는 어떤 역사학적인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규적으로 거행되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축제의 거행은 축제의 회귀와 축제의 생성을 의미한다. 거행이 바로 축제의 존재방식이고, 이 존재방식의 시간성은 회귀와 생성이다. 예술작품은 축제와 같이 오직 반복(해석, 표현) 속에서만 존재한다. 문화유산은 우리 앞에 현재적으로 존재할 때만이 그 가치를 갖는 것이다. 없어진 유물은 없어지는 순간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부분) ■ 김재관
200-12-344 밤하늘 담그기 ●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은 과거의 빛이라고 한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태양은 실제로 몇 분 전의 태양이고, 북극성은 수백년 전의 북극성일 수 있다. 오늘 본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참고=카오스 강연 '우주의 기원'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옹기터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 옹기터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옹기장인의 땀과 마음이 아련한 빛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을 잡아놓는다.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는 과거 옹기터가 남겨 놓은 빛을 쫒아 이자리에 모였을 수도...이제 곧 사라지지만 별빛처럼 남아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 김해리
BongSanri Island ● 6.25 전쟁이후 급속도로 발전된 경제와 고양된 민주의식은 한국의 현재 모습이다. 성과위주의 획일적 사업들과 무분별한 선진국들의 문화수용은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되짚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성장은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기초가 변질되어 지나친 이기주의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문화재가 제 위치에 존재해야 되는 당위성에도 그것은 부정 당한다. 외부의 모습만 화려하게 포장하고 진실은 감추려 한다. 오랫동안 지켜온 우리의 전통과 관련된 것들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상황은 한국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 김승회 반가사유상 ● 전통적인 매체에 의한 표현과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캐릭터의 모습이다. 200년 역사의 봉산리의 옹기가마터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온 전통적인 감수성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장소이다. 지금 이 곳은 곧 사라지게 될 운명에 대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부서진 건물들, 건설장비로 파헤쳐진 땅들의 흔적 속에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져오게 한다. 오랫동안 있었고 계승되어온 봉산리의 옹기가마는 전통과 현재의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작업은 개인의 생각들에 의해 대상을 인식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종교의 색채를 떠나 개인의 기억, 경험속에서 대상을 인식하게 된다는 측면은 이곳 봉산리를 개인의 기억에 남기고 경험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되어진다. ■ 최규락
버려진 옹기골 '봉산리' ● 한 마을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나 하나? 도시개발로 오랜 세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터전을 내어 놓아야 하는 현실 앞에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봉산리(벌뫼) 충북무형 문화재 제12호 옹기장 박재환옹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향에 돌아와 충북 전역의 무형문화재 분들을 만나 기록하며 한분한분 그들의 속살을 보게 되면서 부터이다.(생략) 사회의 극심한 변화에 그 쓰임은 뒷전으로 물러난 것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외톨박이 인생으로 살아온 삶은 이제 피폐하기까지 하다. 현실적이지 못하니 가난의 굴레는 명함이며, 병든 몸에 하루하루 목구멍에 풀칠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터전에서 쫓겨나야 하는 옹기장의 "가난해도 이곳에서 남은 인생 살다 죽게 해 달라"는 하소연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승과 보존'이 옹기장의 임무라면 가마 없는 그가 무슨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작업장이 오래전 그곳에 들어선 이유는 낮은 구릉이 가마의 위치로는 최적지이며, 주변에는 옹기재료로 쓰이는 점토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생략) 소통 없는 현실에 이웃들은 모두 떠나고, 포크레인이 지나간 땅에는 시멘트 잔해만 이 쓸쓸히 뒹굴고 질그릇으로 가득하던 벌뫼 마을은 이제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도시로 변하고 있다.(생략) 공동체를 이루던 마을이 갖고 있는 전통적 역사와 가치는 버려져도 무관한 것일까? 봉산리 마을형성은 조선시대 1760년으로 확인된다. 옹기마을로는 1920년 현재 옹기장의 그 선대로부터 옹기를 굽고 살아 온 곳이기도 하다. (생략) ■ 송봉화
Vol.20161216j | 낙토 樂土-미호천-현산어보 Part 2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