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1216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해성_전우현_노혜인_박소라_이희진 정재원_조혜림_김민경_강희찬_공규배
기획 / THE BRIDGE PROJECT TEAM
관람시간 / 10:00am~07:00pm
남서울대학교 아트센터 갤러리 이앙 NAMSEOUL UNIVERSITY ART CENTER GALLERY IANG 서울 종로구 대학로 146(혜화동 90-18번지) 뉴씨티빌딩 B2 Tel. +82.(0)2.3672.0201 www.galleryiang.com
'더 브릿지' 테마로 진행할 예정인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젋은 작가들이 한데 어울러져서 소통하는 전시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가족구성원 간의 갈등, 인정받지 못한 심리, 시의성 있는 사회적 맥락의 문제 등의 불안요소를 안은 채 현대 사회를 살고 있다. 불안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인 만큼 끝없이 개인적이여서, 메뉴얼을 만들어 대처해내지 못한다. 본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김해성,전우현,노혜인,박소라,이희진,정재원,조혜림,김민경,강희찬,공규배)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각자의 삶속에서 느꼈던 불안, 그것이 발생한 시점에 주목하여 내밀한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4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불안이라는 심리를 보여주고 드러내고자 한다. 전시는 불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불안을 마주하고 응시하며, 또 고백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각자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모든 불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법을 제안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나 어떠한 힐링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안한 심리를 더 드러내며 반복 노출함으로써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불안 심리가 우리에게 '가교' 역할을 하여 삶의 동력이 되길 바란다. ■ THE BRIDGE PROJECT TEAM
시대미술: 불안을 서술하는 방식 ● 시대정신은 특정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공통적으로, 혹은 보편적으로 인간들이 보이는 정신적 태도나 자세, 이념 등을 의미한다. 미술에 있어서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해당 시대에 전반적으로 목격되는 양식적 흐름이나 성향만을 의미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가나 예술작품이 지녀야 할 다양한 덕목 중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대정신'을 첫 번째로 꼽는다.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당대성'이라는 다른 표현과 혼용 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18세기 유럽에서 미술의 흐름이라는 것이 더 이상 양식의 변화에 의지하지 않고 이즘의 차이에 주목하게 된 이후부터 작품 안에 작가가 목격한 당대성을 삽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쿠르베에 의해 근대적인 의미로서의 당대성 개념을 확립하게 된 서양의 미술은 20세기 중반 개념미술의 등장으로 좀 더 진보한 패러다임으로 성장한다. 이를테면 결과물 자체의 시각적 심미성이나 완성도보다도 오히려 해당 작품을 제작하게 된 작가의 철학이나 동기, 제작 과정 자체에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미술의 발전은 시대를 함축하는 행위 보다는 작가 개인의 주관에만 집중하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예술적 표현 가능성의 저변 확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결국 실험미술의 성격을 띠게 된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에 있어서는 「악튀엘 그룹」이나 「아방가르드 협회」 등에서 추진했던 이른바 단색조 회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미술들이 당시의 격동적 시대상을 반영했다는 입장에 대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양식의 출현에 불과했다는 비판적 견해도 상당하다.
우리나라 근대 미술에 있어서 시대정신이라는 테제에 좀 더 명확하게 근접한 예를 들자면 바로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태동하여 폭발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온 민중미술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민중미술을 시대정신을 함축한 미술, 즉 시대미술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세부 미술 중 하나로 본다.) 1979년 창립한 「현실과 발언」,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등을 소위 1세대 민중미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는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비롯된 정치적 사회운동과 그 궤를 나란히 하고 있다. 시위에 사용되는 걸개그림이나 벽화, 바닥화의 형태로 시작된 민중미술의 조짐은 당시의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 모임을 통해 미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의 독립적인 아이콘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1세대 민중미술은 그것의 뜨거운 출발과는 달리 예술적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현실참여의 한 형태 정도로 축소포장 되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는 당시의 민중미술이 그것의 기본 틀을 미술에 둔 것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위한 정치적 노선의 연장선에 두고 예술가들이 현실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만 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2세대 민중미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1세대 민중미술이 정치미술이라고 본다면 2세대 민중미술은 노동자 운동 중심 미술이었다. 2세대 민중미술가들의 극단적 자기 주장은 대중과의 소통 부재로 생긴 온도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다시 한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들이 보여준 국지적 운동의 결과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그것은 바로 정치와 미술, 노동운동과 미술은 서로 떨어져 지낼 때야 만 비로소 서로의 존재가 더욱 빛나는 것이며, 그때에야 비로소 미학적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결론뿐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대가 천착하고 있는 예술적 아젠다는 무엇인가. 사회나 집단 보다는 나 자신이 우선시 되는 만연한 개인주의적 현실 속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부패한 사회에 대해 광장에 모여 항거하기 보다는 인터넷 토론방을 이용하고, 실체가 보이지 않는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상황을 운운하기 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더 고민하며 '미래' 보다는 '내일'을 걱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주체의 달라진 관점에서 보자면 시대미술이라 함은 더 이상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거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간극 격차의 해소를 위해 현실 참여로서의 예술이 아닌 자기고백적 예술의 형태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대중이 시대의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방식의 하나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 입장에서 시대미술을 정의 내려 보았을 때 지금 시대의 시대미술이라 함은 무엇을 예로 들 수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은 후기 식민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과 자본에 의해 정의되는 사회, 서구문화에 대한 무절제한 수용, 그리고 그로 인해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결핍을 우려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종용하는 목소리들은 근래에 들어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꽤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다. 이들은 이러한 폐단이 자본가와 정치가, 언론 그리고 미디어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1%의 권력자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이 1%를 차지하는 권력자들이 과거 미술가들에게는 정치권력으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비단 이념에 따른 정치권력뿐 만 아니라 경제권력, 문화권력, 종교권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의 형태가 출몰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제 그들은 억압과 폭력의 정치를 통해 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효율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대중들의 사이를 파고든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 것이다.
일찍이 기 드보르는 1960년대에 이미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항하여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는 그저 현실이 특정 세력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큰 향상을 가져 올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최근 현장의 젊은 예술가들은 바로 이 지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인지하고 그것을 가감 없이 화면에 풀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거창한 주제를 내비치지도 않고 크게 비판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기 드보르의 요구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삶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상대적 약자인 예술가들은 사회 전반에 배치되어 있는 권력들을 인지하고 그것들에 의해 핍박 받고 억압 받는 현실을 서술한 뒤 대중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끔 기회를 던져준 채 기다리는 단순한 전달자의 역할만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이 근래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이며 사회상을 반영하는 미술이다. 초기 민중미술의 표현 방식에 비해 최근의 방식은 상당히 완곡하고 양순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자칫 소극적으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실제로 예술가가 현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작품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방식에 대해 예전 선배들의 형태를 선호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단순히 정치적 활동에만 동참하던 민중미술의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흐름에 예술적 관점을 삽입시켜 극소수의 지식인들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이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양적, 질적인 확장을 꾀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영민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인 젊은 예술가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 암담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암담한 현실을 살아 간다는 것은 밝은 현실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표현 가능한 어휘이다. 밝은 현실 없이 오로지 암담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암담한 현실이 아닌 그저 현실일 뿐인 것이다. 동트기 직전의 새벽녘이 가장 어둡고 춥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만 지나면 따뜻한 아침 해가 솟아 오를 것이라는 확신에서이다. 혹시 나의 삶이 너무도 암담하여 시대를 목격해야 할 눈동자가 자꾸 흐려져만 가는가. 그렇다면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말을 기억하자.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이 대상에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이다.' 이것이 시대를 기록하는 예술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 윤상훈
Vol.20161214h | THE BRIDGE-Artist Matching Proje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