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가족 2016 PERSONS IN LANDSCAPE - THE FAMILY 2016

서기환展 / SEOGIHWAN / 徐起煥 / painting   2016_1214 ▶ 2016_1220

서기환_사람풍경-go!go!/고!고!_비단에 채색_76×120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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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30pm

갤러리 바이올렛 Gallery VIOLET 서울 종로구 종로구 인사동길 54-1 Tel. +82.(0)2.722.9655 blog.naver.com/2010violet

서기환, 가족의 일상과 판타지가 공유하는 사람풍경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 (박목월의 「가정」 중에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누군가의 가족이다"로 시작하는 서기환의 작가노트를 보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존재의 무게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제 몸 하나를 온전히 챙기며 다른 사람의 삶을 오롯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에 내던져진 하나의 존재에서 가장 작지만 온전한 한 세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기환의 그림 속에 펼쳐지는 '가족'이라는 작은 세계는 이제는 어른이 된 작가의 판타지가 펼쳐지고 있다.

서기환_사람풍경-go!go!/고!고!_부분

서기환이 그리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듯 생생하다. 화면의 구도는 카메라를 들이대어 스냅샷을 찍은 것처럼 잘린 프레임 밖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화면 속에는 우리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놓은 듯 널어놓은 빨래들과 청소를 해야 할 것들, 그리고 여러 먹거리, 입을 거리, 놀 거리 등 일상용품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런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남루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하는 판타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서기환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이자 환상이 결합된 모습이다. 전쟁 같은 현실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창 밖에서 폭격기가 날아다니고 연기가 흩날리는 모습으로 펼쳐지고, 온 집 안은 정글이 되어 현실과 환상이 겹친다. 가족들의 산책길에는 거대한 동물들이 함께 하며, 가족들은 분홍 고래와 두둥실 하늘을 떠다니기도 하고 반은 물고기 반은 자동차인 탈 것을 타고 보름달을 담뿍 받으며 여행을 가기도 한다.

서기환_사람풍경-Take A Walk Around The Earth/지구를 산책하다_비단에 채색_112×145.5cm_2016

일견 초현실주의적인 이러한 풍경의 모습에서 우리는 작가가 '가족'을 통하여 꿈꾸는 욕망을 엿볼 수 있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수퍼맨이 되는 아빠, 가정을 부지런히 꾸려가는 엄마,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아이들이 그리는 가족의 풍경은 작가 본인의 가족이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전체 가족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며 언제나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좌절한다. 그럼에도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우리의 모습, 그 욕망이 투영된 모습을 서기환은 행복한 가족과 함께 그려낸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 속 욕망은 밝고 건강하며 사랑스럽다. 5만원권 지폐 위에서 헤엄치는 가족들은 오히려 돈에 무신경한 표정이고, 책가도 앞에서 화장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 순간을 최대한 집중하는 듯하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음직한 육아와 살림의 혼돈, 그 속에서 아빠와 엄마는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가며 때로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일상에 매몰되어 힘겹게 살아가지만 때로는 차 한 잔, 술 한 잔, 배우자와의 담소로 고된 삶에서 잠시 벗어난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과 현실을 벗어난 욕망과 환영은 작가와 그 가족이 매일 사용하는 공간 속에서 이질적으로 펼쳐짐으로써 현실공간과 환상공간은 겹쳐지고 중첩되어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고 여기에 가족의 일상적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의 꿈이라는 시간 또한 중첩된다.

서기환_사람풍경-Hide and seek/숨바꼭질_비단에 채색_91×72.7cm_2016

작가가 그리는 시간과 공간이 중첩된 풍경은 비단에 채색이라는 비교적 전통적인 동양화의 화법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세밀한 묘사와 밝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일러스트 같은 요소 또한 강하다. 일상의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모습은 초현실주의적인 조형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높게 쌓아놓은 책더미와 여러 가지 사물들을 갖추어 놓은 책가도풍의 책장과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은 정물화적인 요소를 보이고 있으며, 오랫동안 인물에 대한 연구로 빼어난 인물묘사를 보이는 작가는 작가 본인을 포함, 가족들의 얼굴을 인물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정글의 모습과 도시의 모습에서는 풍경화적인 요소가 있다. 동양화, 일러스트, 초현실주의,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 등 다양한 조형성을 한 화면에 구현하고 있는 서기환의 작품은 결국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풍경'이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서기환_사람풍경-Family Of Four/네 식구_비단에 채색_116.7×91cm_2016

작가는 기존 작품에서는 어둡고 강한 색조를 썼지만 결혼과 동시에 스스로의 가정을 꾸리면서 작품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사람풍경'이라는 주제로 작업한 기존 작업들은 소외된 도시인의 외로운 일상과 도시풍경을 거친 선과 회색을 주조로 한 어두운 색조로 그려져 쓸쓸함을 더한다. 그러나 결혼 이 후 서기환이 그리는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풍경'은 오방색에서 가까운 색에서 시작해 다양한 파스텔 색조로 가족이 가지는 사랑과 유대감, 정겨운 느낌을 밝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집, 창문, 가구, TV, 마리오네트의 줄 등 직선적인 표현과 동물, 꽃, 나무 등 유기적인 생명체들의 대조는 현실과 환상의 대조처럼 화면에 다양성을 불어넣어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기환_사람풍경-Pink killer whale/핑크 범고래_비단에 채색_112×145.5cm_2016

특히 가족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꽃은 화면에 신선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동시에 꽃말로 그 상징성을 더한다. '설레임'이라는 꽃말을 가진 작약을 부부의 얼굴 가득 그려 넣음으로써 작가는 남녀관계의 설렘을 다시금 느끼고픈 바람을 투영하고 있으며, 가족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분홍색 장미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고 있다. 결국 '사랑'이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사랑예찬(Éloge de l'amour)』에서 "욕망이 즉각적인 힘이라면, 사랑은 정성과 재연(再演)을 요구한다"고 썼다. 바디우의 설명처럼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것은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다. 서기환이 그리는 사랑은 대표적 타인이자 자아의 확장인 '가족 간의 사랑'이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은 그러나 그 사랑 속에 나의 꿈이 매몰되지 않고 같이 꿈꿀 수 있도록 한 화면에 구현되는 것이다. 본인의 자전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견고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작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자신의 가족들을 등장시킴으로써 특정 가족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고글과 선글라스, 꽃으로 얼굴을 가려도 작가의 가족들은 화면 속에서 완전한 익명성을 획득하긴 힘들다. 그러나 가족의 사랑과 그 속에서의 일상의 행복은 작가의 가족임을 알아보는 그 순간에도 그 자체로 보편성을 띤다. 왜냐하면, 작가가 그려내는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일상의 위대성을 "지속성"이라고 설명했다. 즉 "삶은 땅 위에 뿌리를 박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서기환이 그리는 일상,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 삶에 뿌리를 박고 지속된다. 유쾌하고도 밝은 이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그 행복한 판타지가 펼쳐지는 곳, 바로 '가족의 사람풍경'이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어느새 우리는 소소한 일상의 위대함, 가족이 행복과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있다. ■ 전혜정

Vol.20161214g | 서기환展 / SEOGIHWAN / 徐起煥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