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민展 / 뜻밖의 관계 정혜민의 회화 ● 작가 정혜민 그림이 지니는 표면적 특성은 태양광이 작렬함이 색을 머금어버려 물질적 속성의 물체는 색을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에 그의 그림은 그림 속 물체가 지녀야 할 물체의 중량감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그런 만큼 그의 그림 속 물체의 물질적 구조는 어딘지 모르게 그 잔여하는 구조조차도 어느 순간에 분해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릴 것 같은 현상을 자아낸다. 작가 스스로가 언급하듯이 그의 작업 의도는 '사유의 공간'을 확립하는 데 있다. 이는 그의 작업의 의도이자 작품제작의 목적을 통해 '사유의 공간'이라는 명제를 확립해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간에 대한 사유를 음미할 수 있도록 의도한데 기인하고 있다.

정혜민_뜻밖의 관계 2_캔버스에 유채_116.8×91cm, 145.5×97cm_2016

전제한 점에서 작가의 작품은 너무나 현학적이다. 이러한 명제 때문에 그의 그림은 대상의 구체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은폐되어 있는 회화적 성격을 띤다. 그의 그림은 작가 본인이 의도하는 '사유의 공간'이 '허공'과 일치하는 속성을 띠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표현대로 그의 그림은 일루젼이라는 환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의 작품은 당연히 물질적 구성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성립된 공간이란 개념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은 실질적인 측면에서 조형예술을 통해 성립시켜야만 할 의식적 공간개념의 확립을 제대로 외현화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혜민_뜻밖의 관계 3_캔버스에 유채_91×116.8cm, 116.8×91cm_2016

이러한 점에 대해 작가 스스로 역시 '환영'이란 개념을 끌어 들이고 있다. 그의 그림은 환영개념을 동반한 물질적 구조물로서 인간형상이 등장할 뿐임을 표명하고 있다. 작가는 이들 환영적 속성의 인물형상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시각적 공간의 생성'을 인물형상과 관계한 그림자의 구성을 통해 구체화시키려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 속 인간의 형상은 빛의 효과에 의한 백색광이 화면 전체를 뒤덮어 버려, 이에 의해 물체의 시각적 효과는 정형화 되어 있어야 할 인물상의 전체 이미지를 파괴하고 있다. 또한 그림 속 그림자는 인물을 절반쯤 뒤덮어 버리거나 인물 형상과 나란히 하면서 실재형상과 가상의 그림자 간의 경쟁을 유도해 내고 있다.

정혜민_뜻밖의 관계 4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6

정혜민_뜻밖의 관계 5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6

이렇듯 작가의 회화적 관념은 작가 자신 속 내재하는 공간이란 관념을 작가적 인식을 통해 차례로 현상화 되어 순수한 의미에서의 회화적 가상성을 만들어 내고 그럼으로써 결국에는 작가 자신이 추종하고 있는 회화적 이념으로서 '사유의 공간'을 착실히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회화적 이념과 이미지의 현상화를 도모하면서... ■ 홍준화

김수진_Arranged Candies No.15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6

김수진_Arranged Candies No.16_캔버스에 유채_120×120cm_2016

□ 김수진展 / SUGAR TRAIL 자아의 표상이 새로운 예술로 발아되길 ● 지난해 영천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선정을 위한 심사장에서 처음 만난 작가 김수진은 그녀의 포트폴리오에서 전해 받은 범상치 않은 인상만큼이나 인터뷰과정에서 범인(凡人)의 사고를 뛰어넘는 예술적 감각과 평범함을 거부하려는 광끼(?) 어린 에너지를 어렴풋하게 전해 받을 수 있었다. 미술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다보니,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각 계층의 사람들의 만남 속에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미묘한 에너지를 느껴보곤 한다. 인터뷰에서 느낄 수도 있고 말없이 걸려 있는 작품에서도 감지되는 묘한 느낌을 일단 에너지(氣)로 가정해 보면 그녀의 그림과 삶속에 뒤섞여 있는 자아의 에너지가 과연 무엇인가에 한동안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9월 입주 작가 1:1 매칭을 통한 원고청탁을 받아 보고는 잊고 있었던 김수진의 작품과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에 빠져본다.

김수진_Blue Candies No.1-5_종이에 수채_36×26cm×4_2016

김수진_Red Candies No.1-4_종이에 수채_36×26cm×4_2016

레지던십 입주 작가의 전시회 서문에는 길지 않은 원고 량과 함께 무겁지 않은 비평문이 어울릴 것 같은데, 좀처럼 원고지를 채워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작가 노트에 적혀 있는 "사물에는 시간과 공간, 문화와 세대를 거슬러 기억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그 기억은 주관적인 것일 수도,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물에 나의 기억을 담는다. 나의 기억은 표현이란 행위로 재해석되어 사물에 입혀지고 나는 그렇게 표현된 사물을 통해서 타인과 소통한다."를 반복해 되새기며 그녀의 자아에 담겨있는 미의식의 근원이 과연 기억이 담긴 사물로 모두 표출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을 수 없이 해본다.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소중하게 여겨왔던 대상과 기억에 대한 연민이 새로운 조형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타인과 소통하려는 예술가의 제한된 노력만으로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국내 명문대학 전자공학 졸업과 보스턴 대학의 석·박사과정 그리고 미술로 전공 전환, 미술대학 교수생활과 또 다시 국·내외 레지던시십 생활을 통한 자아탐구의 과정 속에서 과연 그녀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원고지 위를 맴돌게 한다. 수입과자에 담겨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조형작업으로 표출되는 그림만이 작가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세계적인 과학자를 꿈꾸었던 공학박사를 포기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그녀의 진정한 삶의 방식인지 다시금 반문해본다. 그녀에게 느껴졌던 에너지는 화가로서의 느낌뿐 아니라 무언가 새롭게 창조하려는 예술가의 섬세한 에너지였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김수진_Chocolate Chip Cookie_종이에 수채_28×28cm_2016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사르트르가 남긴 말 중 "실존은 본질을 선행한다."를 여러 번 되새기며 작가의 도판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 보았다. 30여 년간 노력하고 일구어온 과학자는 이제 그녀의 삶에 본질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병마와 싸우며 그녀의 뒷바라지를 위해 길지 않은 삶을 쓸쓸히 마감해야 했던 아버지와 그의 트라우마의 상징인 수입과자와 작품 역시 본질로 정의할 수 없다. 그녀가 원했던 원하질 않았던 무관하게 삶의 깊숙한 곳엔 이미 미술이라는 학문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으며, 화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예술적 끼를 키워오고 있었던 덧이다. 현실에서 부딪치며 경험하는 화가로서의 수많은 체험과 창작활동은 실존의 자아를 생성하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 누구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기보다 현재 자신을 위한 표출과 조형 이미지를 형상화 시키는 노력을 경주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내면 속에 내재된 진정한 자아의 표상이 새로운 예술로 발아되기를 기대해 본다. ■ 김태곤

Vol.20161214f |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8기 입주작가 릴레이展 & 오픈스튜디오 Part2-정혜민_김수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