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6_1206_화요일_06:00pm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_문래예술공장
관람시간 / 02:00pm~07:30pm / 월요일,12월25일 휴관
스페이스 XX SPACE XX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B1 www.facebook.com/spacexx
불가능한 불로장생 ● 겨울이 왔다. 몸이 오그라든다. 살갗의 세포가 수분을 날려 보내고, 온기를 잃었을 때, 우리는 추위에서 따가운 감촉을 느낀다. 살갗은 추위에 긁힌다. 자연히 예민해지고 내 몸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적당히 따뜻할 때 살갗은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무감각해진다. 나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어려서 기억도 없는 그 때, 모든 것을 만지고 입에 가져가던 그 때의 느낌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익숙함은 감각을 점차 무뎌지게 되고 특히나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몸속의 에너지를 분출하느라 외부를 향한 감각에는 무신경해진다. 젊고 건강하다는 것은 몸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서 추위가 온 것처럼 살이 오그라들기 시작하면 감각은 다시 살아난다. 몸이 여기저기 쑤실 때 '감각'은 아주 강렬해진다. ● 김홍빈은 지금 아주 예민해지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늙는 중이다. 심경의 변화는 신경의 변화를 통해 찾아온다. 작년에는 중년이 된 그가 다시 살아나는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한 '페호'를 만들어 착용했다. 페호는 자양강장을 위한 언더웨어였다. 그의 야리꾸리한 팬티는 그야말로 중년 남성들의 몸에 영양을 주고 기운을 북돋았다. 페호를 입고 있는 자신의 온 감각을 한 곳으로 몰아 별다른 약물 없이 에너지가 솟아나도록 했다. 이렇게 자양강장은 되었으니(자양강장 개인전은 했으니) 그는 더 어려지고 싶었다. 자꾸 어려져서 삶을 더 연장하고 싶었다. 이제 불로장생을 꿈꾼다. 불로장생을 위한 첫 프로젝트는 중요부위만 간질이던 페호를 온 몸을 위한 '온더웨어'로 꺼내는 것이다.
김홍빈이 생각하는 나이 드는 것은 사회의 구조 안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다는 것은 사회 구조가 우리의 감각을 모두 형성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젊어지는 샘물을 너무 많이 마셔 아기가 된 노인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순수해진다. 앞, 뒤야 어찌되었던 아예 아기가 되는 것은 젊음 자체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김홍빈도 '감각' 자체를 누리기 위해 우리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좋은' 것은 내가 사심 없이 좋은 것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 의해 형성된 '좋은' 것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비쌀수록 좋은 것이다. 작가는 사회적인 기준을 알기 전의 순수했던 감각을 상기하기 위한 '헤어진 옷 비즈니스'에 착수했다. ● 그에겐 어린 시절 정말 좋아하던 옷이 있다. 몸에 꼭 맞았고 입으면 감촉도 좋았다. 그야말로 사회적인 가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 몸이 좋아해서 좋아한 옷이었다. 그는 그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찾았다. 팔에 빨간 띠가 있는 하늘색 맨투맨이다. 지금은 없는 그 옷을 어른 사이즈로 만들어서 입기로 했다. 어린 시절 순수한 감각을 되찾기 위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40대 남자 네 명으로부터 '헤어진 옷' 의뢰를 받았다. 그는 작업에 들어갔다. 재봉틀을 들여와 드르르르륵 돌렸다. 그리고 입었다. 작가를 비롯해 헤어졌던 옷을 받아든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과연 어릴 때로 돌아간 느낌, 아니 '잠시' '어려진 느낌'을 만끽했다. 그 옷을 사주던(만들어주던) 부모님의 애정도 곁들여서. 순간이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의식을 치른 그들은 옛날을 회상하는 몇 마디를 던졌다. 아이 같은 웃음을 머금고.
그렇지만 애초에 기획했던 프로젝트에 오류가 있었다. 작가가 자신의 맨투맨 추억을 재단하던 중에 발견한 사실은 기억처럼 옷의 빨간 띠가 팔 한 쪽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기억의 오류, 불안한 시작. 그리고 그는 그 옷을 내 몸이 좋아해서 입었던 것이 아니라 '미제'여서 좋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약간 좌절했다. 국산을 입던 아이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자랑할 수 있던 '미제'. 기껏 돌아갔던 어린 시절도 '순수'하지가 않았다. 결국 김홍빈이 원하는 젊음도 세속적이고 권력적인 욕망은 아닌지, 샘물을 더 마셔서 아예 태아가 되어버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거기에도 욕망의 DNA, 새겨있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가 헤어진 옷들을 만들고 다시 작업한 '그림자 옷'은 젊음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어린 시절 회상 자체가 우습게 비틀려졌다는 것을 의식한 부산물들이다. 현실과 기억이 다른 만큼 단추는 점점 커지고 팔은 점점 가늘어진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들은 김홍빈의 작품에서 항상 있던 일이다. 그는 남성의 섬세함을 말하려다 성생활에 집착(?)하는 마초가 되고(Orgasm-Penisism), 페호로만 자양강장을 시켜주겠다고 하더니 모델들에게 스스로의 벗은 모습을 보게 해서 더 '작아'지게 만들기도 했다(페호). 작가의 순수한 욕망 혹은 순수에 대한 욕망은 자꾸 세속적인 욕망으로 흡수된다. 몸의 감각 운운하던 그의 작품 설명에 장-뤽 낭시의 코르푸스에 대한 구절 몇 개 꿰매놓았는데, 그의 비끄러진 작업물을 보고 다 떼어냈다. 헤어진 옷 프로젝트는 순수한 감각을 찾기 위해 감행한 모험이었지만 역시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까발려 보여준다. 늙어가는 그의 몸은 예민해졌지만 그가 원하는 반사회, 탈사회적 감각을 찾기에 그 몸엔 때가 너무 많이 쌓였다. 아무리 불리고 밀어내도 이제 깨끗한 하얀 속살을 다시금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는 어쩌면 '매개'를 선택할 때부터 잘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페호나 살 혹은 살의 감각은 본능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욕망이 하나인지 분리 가능한 것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어렵고 모호한 것들이니 말이다. 그 안의 감각이라는 것은 저 멀리 달음질친다. 김홍빈이 그것을 잡아 아무리 꿰매고 박으려 해도 만들어지는 건 왜곡된 그림자 같은 옷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불로장생 프로젝트의 또 다른 작업인 팟캐스트는 성공일까. 김홍빈은 불로장생의 비법을 전수해 줄 사람을 모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자주 새나간다. 전시장에서 팟캐스트를 듣는다면 당신은 소리 따라 움직이는 조명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재밌는 건 그 새나감이야말로 본질을 향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개 이렇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몸을 어떻게 늙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젊음을 추구한다는 것. 곡성의 죽염장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땅에 화학비료를 써서 온갖 병을 불러들이고 다시 화학 농약으로 그 병을 낫게 하는 판국이다. 지금도 제대로 못 사는데 불로장생을 이야기하자고 하다니,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작업한다고 낮밤을 바꿔 사는 작가는 앞서가도 너무 앞서간다. 불가능한 불로장생. ● 그래도 작가의 기획은 반은 성공이다. 세속적인 젊음에 대한 추구, 주사와 각종 휘트니스, 수술 등이 시각을 뺀 모든 감각을 철저히 배제한 가짜 젊음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보여준다. 이 전시는 그것만은 간파했다. 아무리 섞여도 세속적인 욕망과는 다른 어떤 욕망이 있으며, 그것은 '살의 감각'을 통해 결국엔 분리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비록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온전한 감각 찾기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순수'라고밖에 이름붙이지 못할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땐 낭시의 구절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내가 틀렸다. 감각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게 바로 낭시가 말하는 거다. 불로장생 프로젝트가 모든 것을 박아낸 완전한 티셔츠가 되었다면 그거야말로 입을 구멍 없는 실패된 옷이 되었을 것이다. ■ 우리
Vol.20161211j | 김홍빈展 / KIMHONGBIN / 金弘斌 / installation.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