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김중일展 / KIMJOONGIL / 金仲逸 / media   2016_1207 ▶ 2016_1228 / 월요일,성탄절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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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6_1207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성탄절 휴관

갤러리 조선 GALLERYCHOSUN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4(소격동 125번지) Tel. +82.2.723.7133~4 www.gallerychosun.com

아주 오래전의 누군가가 동굴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그것으로 부터 미디어가 시작되었다. 메시지의 '매개'에 불과하던 것이 '시간'을 초월하게 되었다. 실제 세계와는 다르게 묘사될 수 밖에 없는 기술적한계와 특성때문에 세상에 물리적으로 표현된 인류의 미술사는 실제의 세계, 내면의 세계와도 비슷한듯 또 다른 제3의 공간을 열어두게 되었다. 이미지는 그 세계속의 유일한 화폐로서 기능하며 양쪽의 가치를 저울질하게 되었다. 도시를 살아가는 한 개인에게 있어 기술이 극단으로 치닫고, 동시성을 확보한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에서 '세계의 상'이 '내적 심상'이 되기까지에는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 본래 이미지라는 것은 고정적일 수 없다. 생물학적 뇌의 특성에 의해 그것을 인지하고, 기억하고, 회상하는 매 과정마다 자의적인 변화와 연상작용, 융합이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미디어를 통과할 때마다 정치적인 입장과 편집자의 자의적인 작업, 상업적인 이유와 자본주의 효율성, 제한된 자원의 문제, 물질에 대한 노화현상과 우발적인 사고들로 인하여 이미지는 재구성되거나 파괴되고, 다른 맥락에 놓여지거나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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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작금의 시대는 특이점의 시대일 수 있다. 반드시 머리에 칩을 삽입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미 아마존 웹서비스(AWS)를 비롯한 클라우드 시스템, SNS, 3D프린터와 같은 것들은 이런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철과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던 근대의 시대에는 '설계도'라는 원본이 있었지만 언제나 구현에 있어서 '오차'가 발생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갈라놓기도한 이 골칫덩어리는 근대의 인간사를 그 '오차'와의 싸움을 위해 각기 나뉘어진 전기, 증기기관, 파이프등으로 각개전투를 벌여온 시기로 만들었다. 0과 1로 대표되는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인간 인지의 한계점을 찾아 효율적으로 해당 지점까지 모든 것을 'true(참)' 또는 'false(거짓)'로 미분하여 세분화한 후 재조직화하였다. ● 이제는 모든 것이 '정보'가 되어서 시공간을 교차하여 흐름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디지털 정보의 특성상 수많은 '복사'가 이루어져도 원본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의 예술작품들이 가졌던 '아우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앤디워홀과 아서단토는 그것을 간파하고 '브릴로 박스' 매개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예술의 종말, 그리고 그 이후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백남준의 작업이 가지는 핵심은 그가 물리적으로 전시장에 쌓아올린 거대한 TV 덩어리들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가 네트워킹하는 과정, 인간이 그것을 인지하고 이해한 후 다시 재생산하는 과정을 주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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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 바라보았던 네트워킹의 시대는 '빅브라더'로 이야기되는 디스토피아적인 시대의 도래였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일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video killed radio star'라는 가사의 구절처럼 '은유'의 종말, 더 나아가 '차이'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나 문화가 바라본 어떤 것은 베토벤 9번 교향곡처럼 무언가를 향해 강력하게 나아간다고 여겼고, 그렇게 되면 무엇인가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 물론 컨템포러리 아트는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모든 예술분야의 모든 예술 운동이 각자의 방향대로 흩어져서 기수를 들고 아방가르드하게 달려가는 시대, 닐 암스트롱이 가장 먼저 발에 미국 깃발을 꼽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어떤 곳에 깃발을 꼽는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런 시대의 예술은 어렵고 혼란스러운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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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라는 회사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세상에 내놓으며 그들의 광고에서 빅브라더를 깨부수는 영상을 내보냈고, 그 광고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자유'를 개개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초기의 설계대로 컴퓨터라는 것은 '중앙집중형' 시스템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것은 공학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스템설계에서는 '마스터키', 혹은 'root권한', 'controller'는 필수적인 중앙집중적인 제어시스템이기 때문이다. ● World Wide Web이 나오고, http 통신 프로토콜, 스마트폰과 SNS서비스같은 것들이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가게 되면서 세계는 조금 더 자유로워 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자유'였다. 계산가능한 상태에서의 '자유란' 우발성을 제거한 자유로서,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지에 의하여 선택한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이제 선택은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과 같아지고 있다. 한병철의 저서들은 현재의 시대상황에 대해 '동일자'들의 세계라는 표현을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로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는 '개인화' 시스템이라는 알고리즘에 의해서 '내가 더 선호할 법한' 컨텐츠들을 우선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다시 나를 강화시키는 과정- 어떤 사건에 대한 객관적 사실이 기억을 회상할때마다 주관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나의 주관에 의해 다시 내가 강화되고 내가 웹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정보, 메시지들은 사실 나와 같은 성향의 그 무엇일 뿐이다. 한병철은 그것이 '타자의 부재'라고 진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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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별개로 그 다음 움직임들, 빅데이터- 머신러닝- 사물인터넷과 같은 키워드 들은 또 다른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작년에 한국인들에게 다가왔던 인공지능에 대한 이세돌의 패배는 상징적이였다. 그것은 재편을 의미한다. 한병철이 이야기했던, 동일자들의 세계- 타자의 부재- 와 같은 일련의 거세된 매끄러운 객체들은 프로그래밍 세계에서의 객체지향 원리에 따라 얼마든지 재편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남녀평등은 '감정과 인체의 차이를 거세한'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똑같은' 평등이다. 과거에는 그것을 똑같이 볼 수 없다고 보았고, 뉴턴이 이야기한 미분에서는 그것을 잘게 쪼개어 극한으로 개념을 밀어붙인다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차이들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의 전제에는 그것을 통합된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쪼갤 수 있는 덩어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제가 반드시 '참'이라고 증명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루어지는 많은 예측 가능한 패턴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것은 거대한 통합체로 발현될 수도 있고, 훨씬더 미세한 조직들로 분화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의 시대는 그 특이점에 와있다. ● 09. 나는 그런 흐름을 부정하거나 긍정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변화의 시대에서 작지만 누군가는 아직 그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모두가 완전히 동일자가 되지 못해 고통스러운 이 시대에, 다른 국면으로 이내 넘어갈 것 같은 시점의 인간으로서 이 전시는 그저 무심한 매끄러운 이미지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제 이미지들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시대가 왔다. ■ 김중일

Vol.20161207b | 김중일展 / KIMJOONGIL / 金仲逸 /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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