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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진 블로그_blog.naver.com/hahavvv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키스갤러리 KISS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31길 8 2층 Tel. +82.(0)2.745.0180 www.kissgallery.co.kr
이정입경移情入景의 '가인佳人'과 '미완(未完)의 미' ● 위대함은 작은 몸짓이 쌓이면서 태어난다. 작은 물방울이 큰 바위를 뚫는다. 바로 '수적천석水滴石穿'의 진리이다. 박미진은 실로 수적천석에 어울리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백옥같이 아름다운 여인상은 오랜 시간 동안 수백 번 색을 쌓아올려 완성한 작품이다. 이것은 작은 변화가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든다는 작가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녀의 중채법은 맑고 옅은 색채를 사용하기에 언뜻 보면, 그 인고의 시간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하지만 박미진은 타인이 작업과정을 인식하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색이 발색 될 때 까지 끊임없이 색을 쌓는 반복적 행위를 하며 그 색을 기다린다. 그녀는 효과적인 기법이나 안료를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진실한 화가에 닿아 있다. 작가는 맑은 색을 한 겹 한 겹 쌓으면서 동시에 삶의 한순간 한순간을 작품에 쌓아간다.
박미진의 작업 과정과 그 사유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시선은 그녀의 작업을 단순히 '예쁜 작품'으로 폄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작가의 미적 탐구는 힘을 잃는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진행해온 인간에 대한 탐구와 사유가 일순간 증발해버린다. 우리는 박미진의 작업이 그 외양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대학 때부터 인물화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2002년에 큰 상을 받았고, 이후 인간 탐색을 지속하며 '주변인', '익명인' 등의 외형外形을 묘사하여 인격과 내면까지 보려주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표현법에 깊이 천착하였다. 그래서 2006년까지 전통적 기법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젊은 작가라 평가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통적 기법으로 형상에 핍진하여 묘사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쏟아졌다. 그때까지의 작업 방향으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는 정서를 담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작품화된 한 개인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들 사이에 감정적 거리의 천차만별은 박미진이 드러내고자 했던 인간의 동일한 감정, 즉 칼 융C. G. Jung의 '원형(집단무의식)'과 같은 정서를 수렴하지 못하고 파편화시켜버렸다. 그래서 작가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주변인'이나 '익명인' 작업을 잠시 뒤로 미루고, 2008년 『Free as wind』 전시에서 모든 사람이 아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감정적 거리가 유사한 '슈퍼맨'이나 'ET', '메릴린 먼로' 등의 유명인물을 작품에 끌어와 집단무의식적 정서의 동일성을 경험하도록 유도하였다. 불가에서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사벌등안舍筏登岸)'라는 말이 있듯이, 박미진은 유명인물 작업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한국화 기법과 규율에서 과감히 탈피해 자신에게 맞는 변용된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작가의 불안정한 정서는 박제된 아름다움(나비)을 작품 안에 고정하는 표현을 통해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기의 나비는 현재의 나비와 의미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나비는 아름다움의 대언자代言者로 기능이 훨씬 확대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순一瞬 작가는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Free as wind』 전시 이후 박미진은 유명인물 작업을 폐기하고 '이정입경移情入景'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정情'을 머금어 '경景'에 투사하는, 의미(情)을 내재하여 경관(景)을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작가는 굳이 유명인물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원형적 인물이 있다고 믿고 그 인물을 현실 세상에 드러내길 간절히 원했다. 현실(景)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내면(情)에 존재하는 미의식을 현실화하여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에 대한 원형의 정서를 공유하길 희망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보는 사람의 어두운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이 담겨 있길 기원하며 한 겹 한 겹 색채와 시간을 작품에 중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박미진의 작품은 '선화禪畵'와 닮았다. 선화는 그림 속에서 나를 비움을 통해 무념과 무아를 드러내는 그림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질 때 생명력을 얻게 된다. 박미진이 작품으로 도달하려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그림을 통한 평정심. 따라서 그녀의 작품을 '현대적 선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하지만 작가의 바람과 달리 감상자는 늘 작품에서 서사를 읽기 원한다. 감정을 느끼기보다 정보를 찾으려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것은 박미진이 작품에서 느끼길 원했던 정서가 아니었다. 2014년 『Magic Moment』 전시에서 인상이 옅은 얼굴 측면 작업을 선보인 것은 이런 연유와 관계 깊다. 감상자가 감정의 흐름을 읽으려하기보다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대상의 정보를 읽기 위해 급급한 상황에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박미진은 지금도 '정'이 '경'에 와 닿게 하기 위해 작품을 다듬듯 사유를 다듬는다.
2016년 『Awaken』 전시에서 박미진은 자신의 틀을 깨려는 또 다른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작품 이미지를 견고하게 감싸고 있던 선들을 지워버리고(생략하고) 갇혔던 이미지를 놓아주는 표현법이다, 선에서 자유를 얻은 표현 대상들은 억압된 화면을 넘어설 듯 생동감이 느껴진다. 마치 추상적으로 보이는 식물과 나비의 표현, 물에 잠긴 듯 부분적으로 생략된 인물의 '미완(未完)의 미'는 작품에서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편안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실 완벽주의는 깨기 힘든 틀이며 벗어나기 힘든 무대이다. 미완의 미를 상실이나 미달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너무 과한 묘사나 표현으로 이끌 때가 종종 있다. 그렇기에 『Awaken』 전시에서 보여준 박미진의 틀 깨기는 대단한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표현 대상을 자유롭게 해방함으로써 작가의 사유는 감상자의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것은 한 단계 높은 '이정입경'의 차원으로 진입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의 틀 깨기는 시작되었다. 박미진의 작업은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다. 그렇기에 작가의 앞으로 작업을 가슴 벅차게 기다리게 된다. 작가의 작업 변천은 실로 지금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벌써 미래에 그려질 작품을 떠올려본다. 박미진은 지금 자신의 작업의 한 시기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기를 열었다. 벌써 조급해진다. 그녀의 미래 작품을 빨리 만나보고 싶다. ■ 안진국
Vol.20161127g | 박미진展 / PARKMIJIN / 朴美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