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이원철展 / LEEWONCHUL / 李源喆 / photography   2016_1119 ▶ 2016_1203 / 월요일 휴관

이원철_Praha, Czech_C 프린트_96.4×75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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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토스트 GALLERY TOAST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46(방배동 796-4번지) 3층 Tel. +82.(0)2.532.6460 www.gallerytoast.com

시간의 시각화 : 이미지 없는 사유 ● 「TIME」에서 다뤄지는 시계들은 시간의 공간인 동시에 관계에 대한 반응적 공간이다. 즉 막연히 짐작하는 인정해버리는 보편적 가치관과 학습된 기억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새로운 개념의 대상과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이중적 가치를 지닌 장소로 묘사한다. 이 미묘한 상황은 다분히 사유적이며 개념적 방식이다. 시간을 두고 촬영된 장소엔 과거의 존재처럼 보이는 흐려진 이전의 시간과 뚜렷한 현재의 공간이 공존하고 있다. 모두 사실이지만 과학적으로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작가가 설정해 놓은 공유된 공간 속에 기존의 스펙트럼을 무시한 채 존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집중되는 목표물은 보이는 것이 아닌 공간과 시간의 찰라가 되고 계량의 법칙을 무시한 유기적 관계들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 가치로 변이되는 기묘한 현상을 느끼게 된다. 이원철의 풍경들은 '드러내는' 사진의 속성을 뛰어 넘어 '선포하는' 듯 명제화 된 대상을 보여준다. 익숙한 대상 속 미처 감지할 수 없었던 개념의 흔적이 탐미적 작가의 시점을 통해 새로운 영역의 풍경으로 제시된다. 제시된 영역과 암묵적 결과를 유도시키는 대상들은 기표가 되는 조명들로 내러티브가 생성되며, 자연적 시간성을 존재론적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때문에 선택적 대상인 시계는 인식을 위해 필요한 보조장치 역할 이상의 상징체계처럼 보이며 감정적 의미로 전이되는 코드로 선택된다. 이는 시간이라는 환경을 선택적으로 사용한 이원철의 미감이 발현된 것이다. 학습된 시간성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색감과 빛의 흔들림은 작가가 설정한 셔터타이밍의 장노출이라는 시간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게다가 작가가 부여한 화면 속 구도와 색감은 사실의 풍경을 너머 현실에 대한 불안, 고착된 개념에 대한 현대의 불신 등 동시대인으로 공감 가능한 요소를 실존하도록 유도하며 이것이 사유를 너머 감정선까지 투여된 창조적 사진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이원철_London, United Kingdom_C 프린트_75×93.3cm_2014
이원철_Praha, Czech_C 프린트_120×154.2cm_2016
이원철_Wien, Austria_C 프린트_75×96.4cm_2016

사진 속에 선명히 들어난 시계는 가시적 세계에 대한 정확성과 충실함을 객관적 사실로 드러내지만 사라진 시계바늘은 카메라의 다른 속도의 눈을 통해 바라본 현실에 대한 차이를 예술적으로 잘 잡아내고 있다. 사실적이라 불릴 수 있는 시간들은 어쩌면 분류하기 쉬운 평이함에 의해 선택된 시각일 뿐이며 보편적으로 기대했던 사실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카메라의 빛을 담아내는 시간이 주는 미세한 차이에서 작가가 몰입한 대상은 보다 밀도 있고 세밀하게 담겨지며 그 외의 것은 배경처럼 분산시킨다. 시각적 대상을 선택하는 것 이 후 인화의 과정까지 섬세하게 개입한 작가의 흔적이며 멀었던 풍경(인식하지 못하는 익숙한 광경)을 당기기도 하고, 가까운 풍경(심리적 관심에 의한 거리감)을 밀어내기도 한 인공적 간섭이 어려울 것 같은 시간이라는 소재에 대한 확고한 작가의 자신감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것은 실존하는 것들에 대한 이원철의 시각적 반응은 단순한 '보기'의 문제를 넘어 심미적 본체까지 관통했으며, 동시에 그가 포착한 현상은 심미에 의한 광경까지 포괄한 예술적 직감을 의미한다. (중략)

이원철_Praha, Czech_C 프린트_120×149.3cm_2016
이원철_Praha, Czech_C 프린트_75×96.4cm_2014

이원철은 「TIME」시리즈를 통해 시간이 내포하는 차이와 반복적 요소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시간은 다양한 형태를 통해 그 실존을 증명한다. 그 실존 증명의 방식으로 이원철이 채택한 시계바늘이 사라진 시계들의 이미지는 존재론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표징된 일종의 작가적 기호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바늘이 사라진 시계, 이것은 자연적 시간, 즉 관습적 시간에서 벗어난 시간이자, 운동과 맺었던 관계를 전복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일반적 사상에서 볼 수 있는 대립되는 시간개념이다. 따라서 결국 이 시간은 고전적 시간 개념을 바꾸어 놓는 시간이자, 새로운 철학적 시간이다. ■ 김최은영

이원철_Yangon, Myamar_C 프린트_75×91cm_2016

TIME - 시계 밖의 시간 ●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계가 완공되었다. 시계의 지름이 43m이고 수십km 밖에서도 시계바늘이 보일 정도의 규모이다. 이슬람 성지가 있는 메카에서 가장 큰 시계를 완공하면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를 메카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지 시계의 물리적 규모가 큰 것뿐인데 표준시를 옮기려고 하는 이유치곤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왜 굳이 메카의 시간을 세계의 시간에 기준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메카의 시간이 기준이 되면 마치 세계의 중심이 된 거 같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고건물들에 시계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시계가 있는 건물들은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이 있는 것들이 많다. 인간이 높은 건물을 짓고 그 위에 시계를 설치하는 데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기능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시간을 품고 싶은, 좀 과장되게 말하면 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일 것이다. 그것이 군주나 종교에겐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특히 대도시에서의 시간은 어떠한가? 현대인들은 시계바늘의 지침에 따라 생활한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퇴근하고, 잠을 잔다. 시계 속 시간에 맞춰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시계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권력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계 속에 시간이 존재할까? 농촌의 생활을 예로 들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시계 속의 시간은 무의미하다. 계절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연의 시간이다. 동지와 하지의 해가 떠 있는 시간을 비교해 보면 6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6시간의 차이는 도시에선 오차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시간의 폭이다. 이처럼 시간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장소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번 작업에서의주제는'시간'이다. 촬영하는 소재, 대상은 '시계'다. 시계를 통해 시간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며, 시계 속에서 시간의 존재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이미지로 설명하자면, 시계 속에서 시간을 지시하는 시계 바늘을 사라지게 하고, 주변의 변화 (사람들의 움직임, 나뭇가지의 흔들림, 구름의 흐름)를 통해 시간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 속에 시계는, 눈금만 존재하고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바늘은 사라지게 된다. 그런 이미지는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되고 시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매체의 특성상) 시계에 대한 기록으로도 의미를 갖는다. ■ 이원철

Vol.20161122f | 이원철展 / LEEWONCHUL / 李源喆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