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성(城)

김은영展 / KIMEUNYOUNG / 金恩暎 / painting   2016_1114 ▶ 2017_0204

김은영_집으로_캔버스에 유채, 피그먼트_162×227cm_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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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스페이스 이끼 SPACE IKKI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164 www.spaceikki.com

창문에서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갔다. 또 지나간다. 지나갔다. ● 기차는 매일 이곳으로 지나간다. 오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으며, 어제 전에도 그랬다. 아마도 내일도 그럴 것이다. 기차는 내가 잠을 잘 때도 지나간다. 꿈속에서도 지나가고 실제로 내 머리 위에서도 지나간다. 한번은 자다가 손을 뻗어 이마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잡은 적이 있었다. 그래봤자 어제다. 갑작스럽게 눈물이 고인다. 이럴 땐 눈을 크게 뜨고 코피가 났을 적처럼 재빨리 하늘을 봐야 한다. 그러면 눈물은 큰 샘을 이루다 고개를 떨어뜨렸을 때 거대한 방울로 무겁게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개미를 가두고 싶었다. 왈칵 눈물이 고이는 날이면 그렇게 눈물폭탄을 아래로 떨어뜨려 작은 개미를 맞추고 싶어지는 것이다. 작지만 그 녀석에겐 무지막지한 눈물세례는 아마도 홍수와 다름없을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개미를 보고 있으면 왈칵 쏟아지는 눈물 또한 잊게 된다. 왜 눈물이 났던 것일까. 왈칵거리는 뜨겁고 속이 메슥거리고 얼굴이 더워지는 그런 기분 따위는 아마도 개미가 다 뒤집어썼을 것이다. 미안해, 개미. 고마워, 개미. 기차가 지나간다. 기차가 지나갔다. ●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지금보다 더 꼬마였던 시절, 엄마가 자꾸만 책을 가져와 내게 읽어주던 나의 옛날 시절, 기차가 한 참 전에, 내가 기차를 몰랐을 아주 한 참 전에 지나갔던 시절, 물고기는 물에서 산다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녀석들을 물고기라고 부르는 거구나. 그렇다면 불고기는 불에서 살까? 불고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뜨겁지 않을까? 왈칵 샘솟는 눈물보다 더. 뜨거워지는 볼보다 더. 불을 만져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것은 그리 뜨거운 것은 아닐 것이다. 불은 따뜻하고 나의 꽁꽁 언 발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가끔은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덥고 냄새나고 자꾸만 불을 보고 있으면 불은 없어진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앞의 불은 불이 아니었다. 불은 기차로 변해 지나갔다. 그리고 엄마로 변해 말했다. "불고기? 호호호."라고.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불고기를 만난 적이 없다. ● 불이 엄마로 변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쪼그려 앉은 나를 앉은 그대로 힘겹게 들어 한 발짝 뒤로 옮겨 놓았다. 어쩐지 불이 엄마로 변하면 나는 할아버지를 기다린다. 왜냐면 그때쯤은 나는 많이 덥고 더운 것보다 더 더워서 볼이 붉어지는 것이 내가 더워서 그런 것인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고, 속은 울렁거리고 갑자기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그만 사라지고 다시 불이 불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쩜 할아버지는 그런 때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어른들은 정말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가끔은 모르는 것투성이 일 때도 있다. 할아버지는 내 머리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모른다. 어젯밤에도 내 이마로 지나갔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큰 소리로 요란하게 지나가는 데도 할아버지는 잠도 쿨쿨 잘 잔다. 이러다 할아버지 말대로 밤새 안녕일지도.

김은영_나의 작은 성_캔버스에 유채, 피그먼트_22×22cm_2016

나는 일곱 살인데 한글을 다 알지 못한다. 요즘 세상에 일곱 살에 한글을 다 알지 못하면……, 아이구. 이게 어른들 말이다. 하지만 난 다 모르는 게 아니니까 괜찮다. 대신에 나는 한글을 다 아는 일곱 살 친구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 우리의 몸엔 물고기가 산다는 것을. 눈물샘에서 콧물샘에서 녀석은 지느러미를 흔들며 자유자재로 수영을 한다. 간혹 나는 녀석이 보고 싶어 콧물을 흘리기도 한다. 눈물은 엄청 많이 흘린다. 그러나 약아 빠진 녀석은 한 번도 내게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어떤 날은 거울을 보며 운 적이 있다. 기어코 녀석을 보리라 마음먹고 거울을 보며 울고 있는데, 그만 나는 진짜로 울어 버렸다. 그건 언젠가 엄마가 우는 나를 보고 같이 크게 울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진짜로 우는 내 모습은 슬펐다. 우는 엄마 얼굴만큼이나 슬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같이 따라 울었다. 그것은 진짜 울음이었다. 물고기 따윈 잊은 지 오래였지만 울고 있는 거울 속의 모습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도 기차가 지나갔다. ● 나는 가끔 불이 불인 것도 잊고 눈물샘 속의 물고기를 찾는 것도 잊지만 도대체 저 기차만큼은 잊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꾸만 잊었다. "기차가 지나갔어, 할아버지." 말해도 "그랬냐~?" 하신다. 어떻게 저렇게 크게 울어대는 기차를 잊을 수 있을까? 내가 소리 없이 눈물을 떨어뜨릴 때도 어디선가 나타나 와락 나를 끌어안으면서. 이상하다. 조용하고 눈도 안 떠지는 새벽엔 벌떡 잘도 일어나면서, 내 이마위로 소리 지르며 기차가 지나가는 데도 할아버지는 죽은 듯이 잠을 잘도 잔다. 밤새 안녕 하는 것이다. 엄마는 말했다. "그러다가 아버지, 밤새 안녕이에요, 네!"라고.

김은영_지키고 싶은 성(城)展_스페이스 이끼_2016

엄마랑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나는 개집에 개가 없어 실망했다. 개를 개라고 한다고 엄마는 나를 나무랐다. 강아지라고 하라면서. 개를 개라고 하는데, 나를 왜 혼내는 것일까? 처음 보는 흙이 내 발아래 있었다. 할아버지 집에는 마당이 있었고, 나는 마당 흙을 처음 보았다. 아주 딱딱했지만 만져보면 엄마가 수시로 얼굴에 두들겨 대는 파우더처럼 고운 가루가 묻어났다. 해님이 한 창 나와 있을 때면 그것은 엄마 살결처럼 희고 고운 빛이었다. 그러다 내가 왈칵 눈물이 쏟아낼 때는 붉은 빛으로 변했다. 처음엔 내가 눈에서 코피를 쏟는 줄 알았다. 눈에서 코피가 난다며 엉엉 우는 내게 할아버지는 그것이 황토라고 일러 주었다. 나는 황토에 눈물을 쏟아낸 것이다. 엄마는 황토가 붉은 빛으로 변한 어느 날, 내가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어느 날, 황토가 밀가루 반죽처럼 말랑해진 어느 날 떠났다. 또각또각 소리도 없이 콕콕 뾰족한 발자국으로 황토를 찌르고 도망갔다. 엄마는 도망갔다 나에게서! ● 엄마는 저 놈의 기차를 타고 도망갔을 것이다. 아니 확실하다. 내가 이마로 지나가는 기차를 잡은 어젯밤, 거기 작은 창문 하나에 엄마 얼굴이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엄청 놀라 기차를 그만 내팽개치고 말았다. 엄마는 그렇게 오지 않았다. 어젯밤을 지나 오늘까지도. 그리고 방금 기차가 지나간다. 지나갔다. ● 기차는 잠도 없고 불고 끄지 않고, 오밤중에 소리를 빽빽 지르며 쿵쾅거린다. 우리는 같은 땅에 같은 층에 있는 데도 녀석이 어찌나 방정을 떠는지 내가 누운 자리까지 쿵쾅거린다. 엄마가 있었다면 기차를 혼냈을 텐데. 칫, 엄마는 기차를 타고 도망갔잖아. 둘이 분명 같은 편일 거야. 절대로 엄마를 만나면 안아주지 않을 거야. 거울 속의 우는 나를 보여 줄 거야. 진짜 우는 얼굴로 바꾸고 엄마한테 안길거야. 아니야. 안기지 않을 거야. 엄마를 개미처럼 눈물폭탄 안에 가둬 둘 거야. 꼼짝 못하게, 거기서 허우적거리게. 콕콕 황토를 찌르고 도망 못 가게. 기차가 지나간다. 이마 위에서 기차가 도망간다. 할아버지는 잠도 잘 잔다. 밤새 안녕처럼. ● 이불에서 메주 냄새가 난다. 이건 메주 냄새라 했다. 메주라서 괜찮다고. 코를 잡고 있는 나를 보고 하는 할아버지 말이다. 메주가 덮던 것은 괜찮은가 보다. 엄마는 포미가 덮던 이불은 안 된다고 했는데. 포미는 내 개다. 포미는 포미냄새가 난다고 엄마가 포미라고 불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포미는 포미냄새라는 것이다. 포미는 이제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리고 진짜 내 개 포미는 이제 없다. 엄마랑 도망갔다. 나만 빼고. 근데 엄마는 왜 도망간 것일까? 내가 무서워서? 난 괴물일까? 그렇다면 괜찮다, 난 가끔 괴물이 돼보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진짜 비밀이다.

김은영_지키고 싶은 성(城)展_스페이스 이끼_2016

기찻길과 우리 집, 그러니까 할아버지집인데 이제 우리 집에 못가니 우리 집이 된 할아버지 집은 아주 가깝다. 할아버지가 대문에서 기찻길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방 작은 창문으로 몰래 본 적이 있는데, 세어보니 백걸음이 안되었다. 다행히 나는 한글을 다 알진 못하지만 숫자는 다 안다. 백은 숫자의 끝이다. 백걸음 정도면 엄청 가까운 편일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와 할아버지 집에 오기 전 학교를 두 군데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중 엄마는 백걸음이 조금 안 되는 곳으로 나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래, 집이랑 가까운 곳이 최고지 뭐."하면서 묻지도 않는 말에 대답을 했다. 아마도 저 기찻길은 학교보다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난 여기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 최고니까. ● 할아버지는 집을 두 개나 갖고 있다. 하나는 부엌이랑 붙은 집, 그리고 하나는 우리가 자는 아궁이만 붙은 집. 부엌이 붙은 조금 넓은 집은 메주가 한 가득이고, 우리는 예전에 막내 삼촌이 썼다는 아궁이만 붙은 집에서 잔다. 삼촌은 치과 선생님인데, 본 적은 별로 없다. 대신에 이 방엔 삼촌이 학교 다닐 때 썼다는 돌로 된 틀니 같은 것이 몇 개 있다. 난 그것들이 참 좋다. 특히 그중에서도 핑크색이랑 레몬색이. 할아버지도 틀니를 낀다. 잘 때 그것을 쑥 빼서 물이 담긴 컵에 담가 두는데, 그러면 거기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온다. 마치 사이다처럼 말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일어나면 메주 냄새나는 이불 하나만 바닥에 깔아 두고 나머지는 개서 한 쪽에 밀어두는데, 그러면 나는 그것을 힘껏 밀어 창문 앞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이불 계단을 올라 창문에 두 팔을 괴고 기차를 본다. 두 팔 양 옆으로 난 창틀 작은 자리엔 핑크 틀니 하나, 레몬 틀니 하나씩을 올려놓는다. 걔네들은 이제 내 친구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기가 막히게 웃긴 친구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더러 혼잣말을 한다고 가끔 야단을 친다. 기차소리도 못 듣고, 틀니소리도 못 듣다니, 쯧쯧. 할아버지는 이제 진짜 할아버지가 되나 보다. 기차가 지나간다.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그러다 "식는다, 창문 닫아라."라고 할아버지가 말한다. 그럴 때 또 기차가 지나간다. 지나갔다. ● 오늘밤은 꼭 이마로 지나가는 기차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불고기도 꼭 찾을 것이다. 둘 다 잡아서 엄마가 반성하고 돌아오면 내어 주어야지. 그래도 엄마는 매일 밤 내 이마위로 지나가니까. 또 보랏빛 밤이 되면 꽃비처럼 내 이마로 내려와 반짝이는 별이 된 무수히 많은 엄마가 나를 안아주니까. 엄마 품은 정말… 정말… 정말이다. 하나지만 여럿인 엄마가 나를 꼭 안으면 도망간 엄마도 그냥 '우리 엄마'가 된다. 엄마는 말했지, 너니까 안 미워한다고 사랑한다고. 나도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밤새 안녕이겠지. ■ 피서라

김은영_지키고 싶은 성(城)展_스페이스 이끼_2016

성북동 성곽아래에 위치한 스페이스 이끼와 마주한 순간, 그녀가 오롯이 쏟은 열정과 사랑, 그리고 숨결이 느껴졌다. 마치 그녀의 어릴 적 동화 속 작은 성을 보는 듯한. ● 처녀시절 나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불안이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 그리고 출산과 함께 나는 이 사회가 두렵고 불안하다. 이 불안한 사회로부터 나는 내 아이와 가정과 나의 성을 내모든 것을 쏟아 가꿔야하고 지켜야한다. ● 이를 표현하는 나의 그림에서 선택한 대표적인 기호는 사랑초이다. 사랑초는 어머니가 키우셔서 어릴 적부터 무심히 보아온 길고 가녀린 옅은 연둣빛 줄기 끝에 세장의 검은 보랏빛 혹은 자줏빛 잎이 달린 식물이다. 그 빛깔이 처음에는 검고 어두워 음산해보이나 그 빛깔 사이로 보이는 보랏빛 혹은 자줏빛은 매혹적이어서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햇빛의 여부에 따라 잎이 펼쳐지고 닫히니 마치 숨겨진 비밀이 있어보였다. 생명력 또한 강인한 이 식물의 꽃말은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아요.'이다. 나는 이 어원을 차용, 확장하여 '당신의 평온한 보호막이 되어줄게요.'라고 해석하며 마치 액을 막기 위한 부적처럼 수 만개의 사랑초를 화폭에 그리고 지키고 싶은 대상을 감싸 안는다. ● 이 세상이 서로를 지켜주고 안아주는 따뜻한 세상이길 그림을 통해 바래본다. ■ 김은영

Vol.20161118g | 김은영展 / KIMEUNYOUNG / 金恩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