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FORMS

이강소展 / LEEKANGSO / 李康昭 / ceramic.painting   2016_1117 ▶ 2016_1215 / 일요일 휴관

이강소_Becoming-09-C-048_세라믹_41×35×5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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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홈페이지_www.leekangso.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송아트갤러리 SONG ART GALLERY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 B-133호 Tel. +82.2.3482.7096 www.songartgallery.co.kr blog.naver.com/haksoosong

몸을 실어 하나의 획을 긋는다. 굵은 붓과 몸은 하나가 되어 굵은 획을 그어내린다. 무심의 상태에서 여백과 관계한 공간은 물기를 품은 대기나 강이 되고, 그어지거나 뿌려진 선은 세계를 만들어가는 순간처럼 흐리지만 강하게 무언가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진다. 몸과 일체가 되어온 굵은 붓은 이제 하나의 흙덩어리가 되었다. 순수한 물성인 붉은 흙덩어리는 하나의 굵은 획이 되어 흙을 만지고 있는 손과 함께 모호한 무언가를 형성한다. ● 캔버스에 획을 긋는 이강소의 제스처와 흙덩이를 형상화하는 제스처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 안에서의 동어반복인 것이다. 생성과 소멸 사이, 생겨나고, 자라고, 피고, 맺으며, 지는 시간 사이에서 충만한 삶의 순환, 생동하는 기운, 아우라가 표면으로 남는 화폭의 획이 그러하듯이, 비정형의 모호한 흙덩이를 집적시킨 정지된 형상 안에도 움직이고 생동하는 자연이 있다. ● 이강소의 테라코타, 세라믹 오브제들은 '삶과 자연의 토르소'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Coming-to-be)'이며, 시선 안에서 되어가는 형태이다. 무작위, 무심의 소산으로써 'BECOMING FORMS 되어가는 형태'는 감각적 공백을 남긴다. 보는 이의 응시 안에서 형상화 되어가는 세라믹 오브제는 질료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으로 회귀하고 있으며, 형태적인 면에서는 거침없는 단순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강소_Becoming-09-C-048_세라믹_41×35×52cm_2008

질료를 다루는 감각에 있어서, 거칠게, 담담하게 흙의 물성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순수의 표면에 닿아 있다. 순수의 표면에서 삶의 내면이 지닌 감수성에 다다를 때, 우리는 생이 시작되는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덮고 있는 흙을 만날 수 있다. 흙은 생의 무상함과 살아 있는 것들의 가변성을 환기시키는 매체이면서, 소성 과정에서 우연성의 개입이 많으며, 부드러우면서 거칠고, 매끈한 양감 안에서도 곡면을 이루며 터져 있는 거친 마티에르, 원초적이면서 기하하적일 수 있는, 디테일이 풍부하고, 대립적인 재질감을 표현해주는 매체이다. 역설적이지만 흙은 자연으로 회귀하는 감각인 동시에 가장 현대적인 표면감각을 가진 질료이다. 흙덩이가 하나의 면으로, 덩어리로, 기하하적 입체로, 다른 표면의 촉감과 양감, 질감과 중량감을 가지며 손으로 구축되어갈 때, 단순한 덩어리 안에 내재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오브제'가 지닌 현대적 미감을 만날 수 있다. 부르델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들 중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하고, 무엇보다도 어떠한 혼란스러운 세부가 없는 커다란 덩어리로 된 사유이다.'라고 한 것처럼 풍부한 흙의 텍스처를 표면으로 하고 있는 흙덩어리로 구현된 단순화된 조각, 세라믹 오브제는 내면을 향하고 있다.

이강소_Becoming-10-C-141_세라믹_37×45×43cm_2010 이강소_Becoming-15-C-008_세라믹_46×33×41cm_2015

흙의 마티에르와 함께 비정형의 집적으로 쌓아 올린 단순화된 형태는 자연스러운 무작위적 형태와 인위적인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부르델의 '조각의 생명에서 표면적인 것은 우발적인 것이다. 그러나 깊고 구축적인 면은 운명이다.'는 표현처럼 마티에르는 순간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만, 형태는 보다 구축적인 면을 요구한다. 무심한 듯 툭툭 덩어리를 떼어내어 구축한 형태처럼 보이게 하기까지는 지난한 눈과 손의 단련이 필요하다. BECOMING FORMS는 카오스를 품고 시작하되, 공간 속에서 모든 면에서 바라볼 때, 수직 혹은 수평으로 안정된 형태 안에서, 변화가 있는 내재율이 있어야 한다. 움직이는 시선 안에서 다른 형태적 조형감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정형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덩어리 하나를 놓고 멈추고 숨 죽이며 응시하고, 다시 덩어리를 쌓아야 한다. 형태가 형태를 강요하는 숨고르기가 없다면 생동하는 형태가 형성될 수 없다. 숨고르기 시간이 짧든 길든 그것은 단지 형태에 달린 것이다.

이강소_Becoming-15-C-027_세라믹_27×64×21cm_2015
이강소_Becoming-13157_세라믹_30.5×87.5×16cm_2013 이강소_淸明 Serenity-1604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7cm_2016

섬세하고 지난한 과정을 통해 하나의 형태, 하나의 테라코타, 세라믹 오브제가 생성된다. 추상적 세계의 단편 같은 이강소의 세라믹 오브제는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성(Becoming)되는 것이다. 흙이라는 순수한 질료의 마티에르 속에 추상적 형태가 살고 있다. 침묵하는 오브제는 순간과 영원 속에서 고요히 생성되는 '추상적 세계의 토르소'처럼 시적 언어로 존재한다. 다만, 회화적 감각이 공간으로 전이된 횡적인 세라믹 오브제의 형태만이 공간 안에서 하나의 획으로 소실되어 간다. 설명될 수 없는, 무언의 형태는 비록 침묵하지만, 침묵 자체가 묵직한 관념적 무게를 실어준다. ■ 이지연

Vol.20161117e | 이강소展 / LEEKANGSO / 李康昭 / ceramic.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