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이는 파편들

주변을 혹은 다른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풍경을 쌓았다. 들깨밭을 지나던 어느 볕 좋은 날, 혹은 집안 한구석에 자란 무화과 나무,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내 방의 그늘진 모습, 풀이나 나무가 잔뜩 엉켜있는 콘크리트 다리 밑. 그 안에서 나의 깊은 곳을 건들였던 이미지들을 물을 긷듯 천천히 끌어올렸다.

이유정_전진하는 여자_종이에 아크릴채색_147×77.5cm_2016

이유정_연구 Study_에칭, 아쿼틴트_26×39cm_2015

뉘앙스로 존재하는 이러한 풍경들이 어떤 식으로 모습을 드러낼지 보통은 작업을 완성하기까지는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수집한 풍경들은 건져 올리기 전까지 불확실한 상태로 종이 혹은 커다란 판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것만 같다. 운이 좋으면 가끔 그들 중 몇 개를 주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은 공격적이거나 혹은 주저하는 눈을 지닌 사람들, 혹은 '무엇'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물들이 되어 새로운 풍경으로 재조립된다. 의미를 찾기 전 이미 존재하는 그들은 낯선 눈으로 다시 나에게로 향하는 질문이 된다.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감정과 상태들이 난무하지만, 이런 단절성이 나의 진실과 가장 가깝다. ■ 이유정

Vol.20161114k | 이유정展 / LEEYUJEONG / 李唯禎 / mixed media